어느 신흥종교 지도자가 말한다. 이제 신은 인간에게 더 정의로울 것을 요구한다고. 그래서 마땅히 죽어야 할 자에게 사형선고를 내려 제 뜻을 전한다고. 그런데 이 망상 같은 예언이 정말로 실현된다. 도심 한복판에 지옥에서 온 듯한 괴물이 나타나, 죽음을 고지받은 사람을 때려죽이고 불태워버린다. “신은 너무나 직설적으로 지옥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죽음의 ‘시연’ 순간은 2020년이란 시점에 어울리게 휴대폰 영상으로 촬영되어 온갖 곳으로 퍼져나가고 사회는 혼란 속으로 빠져든다. 여느 사회파 장르물이 그러하듯 <지옥> 또한 사이비종교를 소재로 한국 사회를 압축적으로 담아낸다. 이제부터 세상이 완전히 달라질 거라고 굳게 믿는 광신자들이 나타나 대낮에 비판자들에게 테러를 저지르고 다니는 한편, 자금이 사이비종교로 몰려드는 모습. 여기에 죽음 예고를 받은 당사자의 개인정보가 바로 털리고 ‘시연’ 상황을 생방송으로 내보내겠다며 방송국이 몰려드는 상황까지 한국적 지옥의 풍경이, 흑백 대조가 뚜렷하고 날카로운 선이 돋보이는 그림으로 끈적하게 그려진다. <지옥>의 주인공들은 신의 계시를 믿는 대신 종교 지도자의 빈틈을, 인간적인 허점을 추적해나간다. 이야기는 빠르게, 멈춤 없이 진행된다. 이미 넷플릭스 드라마화가 결정된 작품답다.
그런데 신이 정의롭게 죄인을 단죄하는 존재일까. 정말 그런 존재였다면 애초에 사회가 이렇게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스스로 법을 만들어 집행해오지 않았던가. 물론 그 법이 정의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 때문에, <지옥> 같은 작품이 등장하는 것이리라. <지옥>에는 대낮에 여성을 살해했는데도 심신미약이라는 이유로 6년형밖에 받지 않은 사례가 등장한다. 아동성착취물 유통 사이트를 만들어 44억원이나 번 범죄자가 감옥에서 1년6개월만 살면 모든 일이 끝나버리는 현실의 ‘지옥’이 이곳이니.
죄와 벌
“오늘 우리 두 사람이 하는 일이 완전한 세상, 신의 법에 따라 누구도 죄 짓지 않는 세상을 불러올 거예요.”(142쪽)
“신이 무작위적으로 인간을 벌할 리가 없잖아요.”(28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