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누가 뜰까요?” 영화계에서 늘 촉각을 곤두세우고 의견을 나누는 주제다. 제작자 입장에서는 신인이 라이징 스타로, 라이징 스타가 스타로 성장하며 창출하는 막대한 부가가치를 공유하려면 미리 ‘될 성싶은 떡잎’을 선점해야 하고, <씨네21> 같은 언론사 입장에서는 앞으로 10년, 20년 동안 꾸준히 만나게 될 배우의 시작과 성장 과정을 발견하고 기록한다는 점에서 각별하다. 물론 잠재성을 갖춘 이들이 좋은 작품을 만나 청년기 특유의 매력을 발산하는 것은 산업 전체의 건강함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그리고 관계자들 사이에서 언급되는 이름들은 대체로 겹친다. 흥미로운 것은, 지난해부터 자주 거론되는 이름 중에 OTT 플랫폼에서 이름을 알린 이들이 부쩍 늘었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관계자들에게 실제 들었던 말들이다. “박보검 그다음 타자는 누가 될까? 난 <좋아하면 울리는>의 송강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차세대 스타 1순위로 꼽는다.” “<에이틴>의 신예은이 10대들의 워너비라고 하지 않나. 그들이 나이를 먹고 구매력이 생길수록 이 친구는 더더욱 빛을 볼 거다. 분명 1~2년 안에 대중적으로 크게 성장하는 계기가 있을 텐데!” “<에이틴> <인간수업>의 김동희가 파격적으로 영화 <너와 나의 계절>에서 고 유재하 역으로 캐스팅됐는데, 이 배우가 같은 제작사가 성공시켰던 <늑대소년>의 송중기처럼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나이도 어리고 성장 가능성이 큰 친구다.” “혹시…. 박주현 소개시켜주실 수 있나요? 우리가 먼저 잡아야 하는데….”
채널도, 기회도 많아지니 장점과 단점이
예전에는 주말드라마 막내커플로 인기몰이를 한 후 트렌디드라마 조연에서 주조연, 주연으로 점차 자리 잡거나, ‘독립영화스타’가 된 후 점차 입지를 넓히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스타가 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가장 큰 이유는 글로벌 시장과 광고 업계의 변화로 점점 더 보수화되는 투자 분위기다. 한류스타를 기용해 해외 시장에서 성공하면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지만, 국내 시장은 디지털 등 새로운 광고 시장이 열리면서 기존 방식만으로 충분한 수익을 보장받을 수 없다. 익명의 배우 매니지먼트 관계자 A씨는 “전반적으로 캐릭터의 연령대보다 나이가 많은 배우가 연기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데, 이는 이미 검증된 배우를 계속 쓰려고 하기 때문이다. 20대 초반 역할을 20대 중후반, 심지어 30대 배우가 연기하기도 한다. 가능성 있는 신인배우들은 20대 초중반에 두각을 드러내야 하는데 그들에게 주어지는 역할은 학원물 정도이며 그마저도 거의 만들어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예전에 <학교> 시리즈를 통해 장혁·김민희·조인성·하지원 등이 발굴됐고 최근엔 <학교 2013>의 이종석·김우빈, <후아유-학교 2015>의 남주혁·육성재가 있었지만 이젠 시리즈 제작이 무산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익명의 영화·드라마 제작자 B씨는 “극장영화나 TV 콘텐츠는 관객수나 시청률의 영향을 받는다. 또한 해외 세일즈나 광고가 주요 수익처다. 기본적으로 배우들을 캐스팅할 때 대중에게 인지선호도가 높은 배우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며 현실의 한계를 짚었다. 제작 편수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오히려 개개인에게 가는 스포트라이트가 약해졌다는 분석도 있다. 과거 CJ E&M에서 캐스팅 업무를 담당하고 신인 연기자들을 위해 책 <배우를 찾습니다>를 냈던 양성민 비사이즈 대표는 “예전에는 스타가 나올 수 있는 게이트가 매우 좁았는데, 지금은 웹드라마부터 넷플릭스, 지상파부터 종편까지 작품 수가 많아지다 보니 그중에서 눈에 띄기가 아주 힘들어졌다”고 그 원인을 말했다. 과거 이제훈이나 변요한, 한예리의 사례처럼 독립영화계에서 기회를 얻어 입지를 다지는 일도 어려워졌다. 양성민 대표는 “영화판도 양극화가 두드러지면서 톱감독과 톱배우를 패키징한 작품 아니면 저예산영화로 양분된다. 그러다보니 기존 배우들도 저예산이나 독립영화로 눈을 돌린다. 예전에는 필름메이커스 같은 홈페이지만들어가도 괜찮은 작품들이 많이 보였는데, 지금은 그것조차 힘들어졌다더라.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지인이나 같이 작업했던 사람들 위주로 캐스팅하게 되어, 신인에게 접근성이 더 어려워진 것 같다”고 전했다.
대신 캐스팅 기준이 완전히 다른 OTT는 신인배우에게 새로운 기회다. 넷플릭스 드라마 <인간수업>의 제작자 윤신애 스튜디오329 대표는 “우리는 <루머의 루머의 루머>나 <빌어먹을 세상 따위>의 배우들의 현지 인지도가 어떤지 전혀 모르지 않나. 넷플릭스는 캐스팅한 배우들이 어느 정도 입지를 갖고 있어야 한다거나 판권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조건을 걸지 않았다. 배우 캐스팅에 있어 이미지에 가장 잘 맞는 배우를 찾으면 된다고만 했다. 자막이나 더빙이 있다는 것도 영향을 줬을 거다”라고 전했다. 때문에 <인간수업>팀은 매니지먼트협회에 공문을 보내고 소속사가 없는 배우에게도 기회를 열기 위해 온라인으로도 오디션 공고를 냈다. 양성민 대표는 “드라마 캐스팅을 할 때 정말 시간이 촉박한 경우가 있다. 신인배우를 뽑는 오디션 기간이 길어봤자 일주일도 안될 때가 있다. 낯선 친구에게 큰 역할을 주는 게 모험일 수 있어 안전하게 기존에 봤던 친구들을 뽑을 수밖에 없다”라며 준비 기간이 긴 프로젝트들이 과감하게 신인 캐스팅에 도전할 수 있는 이유를 역으로 설명했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신원호 감독님은 드라마 제작 구조에서는 매우 파격적으로 프리프로덕션 기간이 굉장히 길다. 그리고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OTT는 사전에 대본이 모두 나오기 때문에 일단 프리프로덕션을 여유롭게 할 수 있고 신인배우를 검토할 수 있는 기간 또한 길어진다.” 넷플릭스 드라마 <좋아하면 울리는>의 선오 역은 900명이 넘는 신인 연기자, 모델, 아이돌, 배우 지망생들이 지원한 공개 오디션을 통해 선발됐다.
시즌1을 연출한 이나정 감독은 “캐스팅 때만 해도 매니지먼트사에서 ‘근데 온에어가 되나요?’라고 묻곤 했다. 인지도를 더 올리기 위해 안정적인 작품을 찾는, TV드라마 주인공을 하려는 배우보다는 신인급으로 가게 됐다”라고 캐스팅 배경을 설명했다. B씨는 “OTT 플랫폼의 경우 시즌제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기존 레거시 미디어에서 선호되던 배우들은 스케줄 면에서 조율하기가 쉽지 않다. 프로덕션을 호율적으로 할수 있는 배우들을 찾다 보니 선택의 폭이 더욱 넓어진 것”이라고 또 다른 배경을 언급했다. 수년 전부터 신인배우들의 대표적인 등용문으로 떠오르는 웹드라마 시장은 그들이 배우를 발굴하고 드라마 관련 굿즈를 개발하며 출연배우들의 팬미팅까지 진행하는 일련의 시스템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 웹드라마의 영향력에 대해 B씨도 재미있는 일화를 들려줬다.“예전에는 자유 오디션을 보면 한국 기성배우들의 연기를 많이 선보였는데, 요즘엔 웹드라마 속 인기 캐릭터의 연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변화의 속도를 실감했다.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다. 모 웹드라마의 여자주인공이 오디션을 보러 온 적이있는데, 같은 오디션을 보는 신인배우들이 그 친구의 연기를 했다. 방금 보여준 게 어떤 작품의 캐릭터냐고 물어봤더니, 방금 전 이 오디션을 보고 간 친구의 연기였던 거다. (웃음)” 애플TV에서 제작하는 미국 드라마 중 한국인들이 주인공인 모 드라마 역시 ‘한국에서의 인지도나 스타성은 중요하지 않고 캐릭터에 맞는 사람’을 캐스팅 기준으로 삼고 오디션을 진행 중이다.
그리고 이렇게 선발된 배우들이 실제 호평받고 업계가 주목하는 라이징 스타로까지 떠오를 수 있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그들의 역량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환경이 받쳐줬기 때문이다. 윤신애 대표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캐릭터를 분석할 수 있었던 영화현장에서와 같은 일이 시리즈에서도 가능한 것이다. 더구나 짧은 시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시리즈 하나를 집중해 임하고 작품 전체를 책임지는 것을 경험해보는 것이기 때문에 배우 입장에서 얻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또한 글로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빠르게 한류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은 이들의 경쟁력이 된다. 배우 송강이 소속된 나무엑터스의 김종도 대표는 “전세계를 대상으로 넷플릭스가 꼽은 올해의 신인에 <좋아하면 울리는>의 송강이 꼽혔다. 예전에는 이런 신인이 해외 진출을 한다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었는데, 작품만 괜찮으면 신인도 스타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됐다”라고 전했다. 또한 “기존의 익숙한 것보다는 새로운 것에서 반응이 극대화될 수가 있다. 관객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줄 수 있으면 이것은 콘텐츠의 완성도까지 높인다”고 덧붙였다. B씨는 “지금 영화쪽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기성배우들은 웹콘텐츠 출연이 힘들 수 있다. 그런데 웹드라마부터 인지선호도를 쌓아온 친구들은 드라마, 영화를 하다가 다시 웹드라마를 하기도 하는 등 활동하는 플랫폼이 유연하다는 게 강점인 것 같다. 또한 많은 바이럴 효과를 낼 수 있는 10~20대 타깃층에게 인지선호도가 높다는 것도 그들이 가진 경쟁력”이라고 꼽았다. <건축학개론>의 수지, <카트>의 도경수 등 영화계에 새로운 신인을 데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해온 심재명 명필름 대표 역시 “기존 미디어만 고집하는 사람보다는 플랫폼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스타들일수록 콘텐츠의 화제성을 올리는 데 굉장히 필요한 것 같다. 그런 복잡다단한 시장이 되지 않았나 싶다”라고 전했다.
다만 일부 관계자들은 새로운 플랫폼에서 발굴돼 주인공 반열에 오르는 배우들이 충분한 준비가 돼 있는지, 확실한 보장이 없다며 우려를 표했다. 양성민 대표는 “웹드라마의 성격상 지금 어린 친구들이 가장 좋아할 만한 배우를 뽑으려고 한다. 하지만 웹드라마의 숙명 중 하나는 신인배우를 띄우고 그 베네핏을 제작사가 가져가고 싶어 한다는 데 있다. <에이틴>을 통해 신예은이 스타가 되고 막대한 부가수익을 창출하면서, 아예 플랫폼과 제작사, 소속사까지 협력해서 웹드라마를 통해 스타성 있는 친구를 키우려는 시도들이 있다. 이게 배우에게 좋은 일일 수도 있지만 배우로서 성장하는 데 충분한 시간이 될까. 그들이 준비가 되어 있는가가 숙제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심재명 대표는 “OTT 드라마로 빵 떴다고 특정 영화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됐을 때 바로 티켓파워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고전적인 매체에서도 신뢰를 쌓고 연기력을 키우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이 바꿔가는 것들
<에이틴> 등 드라마 관련 굿즈를 판매하는 플레이리스트 스토어.
하지만 “예전에는 실력파 영화배우들을 연극계에서 끌어왔다면, 아이돌 출신 배우들을 기용하는 분위기도 있었고, 지금은 또 새로운 흐름이 생긴 것”이라는 심재명 대표의 말처럼, 이미 변화는 시작됐고, 이제는 장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가치판단 이전에 당장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고민할 시점이다. 이미 이러한 뉴웨이브를 수용한 이들도 있다. 영화 투자·배급사 NEW의 콘텐츠제작사업 계열사 스튜디오앤뉴 매니지먼트 본부는 최근 웹드라마 제작사 치즈필름과 함께 합동 오디션을 진행하는데, 최종 합격자에게는 치즈필름 제작 웹드라마 출연 기회가 주어진다. 스튜디오앤뉴 매니지먼트본부의 이명진 차장은 “20대 초반의 신인배우들을 찾고 있다. 치즈필름의 웹드라마 타깃층이 10~20대라 나이대가 잘 맞아 함께 오디션을 진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요즘엔 관계자들이 괜찮은 신인배우를 물색할 때 웹드라마를 많이 보기도 하고, 남자배우들의 경우 이미 팬덤이 형성되어있기 때문”에 함께 컬래버레이션을 기획했다고 부연했다. 또한 이들이 스타가 될 미래는 아예 배우를 소비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져 있을 가능성도 높다. 김종도 대표는 “지금은 자기가 좋아하는 콘텐츠를 집중적으로 보는 시대다. 대중이 모두 좋아하는 배우와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가 나뉘면서 더 다양한 배우군이 형성되지 않을까”라고 점쳤다. 신예은과 김동희가 소속된 앤피오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유튜브를 주로 소비하는 10~20대 층에게 뚜렷한 반응을 얻었으니 이들과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 있다. 예전에는 보도자료 위주로 배우를 홍보했다면, 지금은 그들이 원하는 플랫폼에 맞춰 길지 않은 숏폼 콘텐츠 위주로 노출하고 있다”고 최근의매니지먼트 전략을 전했다. 앞으로 스타가 될 배우들은 선배들과 다른 루트로 시작해 새로운 방식으로 대중과 소통하며 스타가 될 것이고, 그들이 중심이 될 가까운 미래의 풍경은 예전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이어지는 기사에서 소개할 라이징 스타들의 얼굴을 하나씩 주목하면서 부정할 수 없는 뉴웨이브가 어떻게 판을 바꾸어갈지 가늠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