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과 사랑에 빠지는 데는 1분이면 충분하다. 만약 당신이 여름을 좋아하고 바다를 좋아한다면, 혹은 서핑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시간은 더욱 단축될 수 있다. 영화는 곧장 눈부신 한여름의 바닷가로 관객을 안내한다. 준비운동 없이 바다에 입수하는 건 위험하지만 오프닝부터 대책 없이 영화에 풍덩 빠지는 경험은 짜릿하다. 빛나는 바다와 중독적인 주제가가 눈과 귀를 사로잡는 오프닝을 통과하고 나면, 그곳에서 꿈을 꾸고 사랑하고 아파하는 청춘들을 본격적으로 만나게 된다.
히나코(가와에이 리나)는 바다를 사랑하고 서핑을 좋아해 바닷가 마을의 대학에 진학했다. 자취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불꽃놀이 화재로 집이 타버리는데, 히나코를 전부터 알고 있었던 듯한 소방관 미나토(가타요세 료타)가 히나코를 멋지게 구조한다.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이내 사랑을 시작한다. 함께 파도를 타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고, 생각을 공유하며 눈부신 날들을 보낸다. 야속하게도 이별은 급작스레 찾아온다. 평소보다 크고 멋진 파도를 볼 수 있다는 눈 내린 다음날. 황금빛 바다에서 멋지게 파도 타기에 성공한 미나토는 바다에 빠진 사람을 구하다 제 목숨을 잃는다. 연인을 잃어버린 히나코는 슬픔에 잠겨 미나토의 흔적을 밀어내려 하지만, 무심코 두 사람의 추억이 담긴 노래를 흥얼거렸다가 물속에서 되살아난 미나토를 만난다. 언제 어디서고- 물병, 변기, 욕조 가리지 않고- 노래의 첫 소절만 불러도 물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미나토 덕에 히나코는 다시 혼자가 아닌 둘이 된 기분을 느낀다.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은 <마인드 게임>(2004),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2017),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2017)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는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의 신작이다. 재패니메이션의 현재이자 미래로 얘기되는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의 특징은 자유분방한 그림체, 과감한 이야기 전개 방식, 엉뚱한 캐릭터와 한계 없는 상상력이다.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은 그러한 감독의 세계관이 대중적인 방향으로 유연하게 확장되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감독 본인도 말했듯 “본래의 작품과 비교하면 (이번 영화는) 굉장히 심플한 러브 스토리”라 할 수 있다. 하룻밤을 1년처럼 보내며 많은 것을 흡수하고 많은 사람을 상대했던 검은 머리 아가씨(<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나, 음악을 들으면 다리가 생겨나 쉬지 않고 춤을 추며 주변을 명랑운동회장으로 탈바꿈시켰던 인어 소녀(<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와 비교하면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의 캐릭터와 이야기는 명확하고 현실적이다. 또한 위험천만한 불꽃놀이가 로맨틱한 첫 만남의 배경이 된다거나 눈의 결정체를 관찰하듯 연인들의 감정을 섬세하게 전달하는 장면들은 전에 없이 로맨틱한 분위기로 피어난다. 서핑의 교훈이 곧 인생의 교훈으로 치환되는 대사들, 가령 나만의 파도를 타기까지 쉬지 않고 팔을 젓고 파도의 저항에 맞서야 한다거나 오늘은 실패했지만 다음 파도를 타면 된다는 말에선 특유의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기운이 묻어난다.
유아사 마사아키는 대구와 반복의 효과를 즐기는 감독이기도 한데,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음악의 반복이 부각된다. 에그자일(GENERATIONS from EXILE TRIBE)이 참여해 탄생한 영화의 주제가 <Brand New Story>는 히나코와 미나토의 추억의 노래이자 이야기 전개의 중요한 열쇠로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쉼 없이 플레이된다(에그자일의 멤버 가타요세 료타가 미나토의 목소리를 연기하며, 가타요세 료타와 가와에이 리나가 함께 부르는 달콤한 버전의 <Brand New Story>도 들을 수 있다). <Brand New Story>에 즉각 반응하는 미나토처럼 영화를 보는 관객 대부분이 노래의 첫 소절에 가슴이 몽글몽글해지는 반응을 하게 될 것이다. 음악의 힘과 반복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경험하게 하는 영화이자, 로맨스영화, 서핑영화, 성장영화로서 다양한 매력을 뽐내는 작품이다.
CHECK POINT
목소리 출연 배우들
일본의 인기 그룹 에그자일의 멤버 가타요세 료타가 미나토 역으로 생애 첫 목소리 연기에 도전했다. 히나코의 목소리는 AKB48 멤버이자 <철벽선생> <인어가 잠든 집> 등으로 필모그래피를 탄탄히 다지고 있는 가와에이 리나가 맡았다.
손발 척척 스탭들
<고양이의 보은> <목소리의 형태>의 각본가 요시다 레이코가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에 이어 다시금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과 협업했다. 음악감독은 <다다미 넉장 반 세계일주>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의 음악을 맡았던 오시마 미치루.
영화제 수상 경력
전작들로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오타와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은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으로 제52회 시체스국제영화제 최우수애니메이션상, 제23회 판타지아영화제 베스트애니메이션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