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멋과 흥, 문화
정성일 이 영화는 장승업이 그림 그리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자막이 떠오를 때 장승업이 그림 그리는 장면을 보여주는 대신에 차를 우려내는 과정을, 그 단아한 과정을 일일이 찍어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또 영화 중간중간 그림을 그리고 있는 동안에도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이별가>가 나오는 대목과 <흥타령>이 나오는 대목이 맞물려들어갈 때 그것이 갖고 있는 힘이 종종 그림을 압도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니까 사실 <취화선>의 관심은 장승업이라는 한 화가의 치열한 거듭나려는 노력과 동시에 그 시대의 멋과 흥, 즉 수많은 다른 문화들인 것 같습니다.
임권택 나는 거듭 얘기하지만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우리의 삶과 문화적 개성을 영화에 담고 싶은 거예요. <서편제>나 <춘향뎐>에서 어쩌면 트레이닝이 됐다고 할까,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이제는 어떻게든 폭넓게 수용해서, 환쟁이가 살아가고 있는 땅의 사람들의 총체적인 문화적 개성이나 정서랄지, 이런 것들을 이렇게 아우르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굉장히 포괄적이고 넓게 수용해간다는 인상을 받았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한다고. 실제로 그런 노력을 무진장 했으니까. 어쨌거나 그것 때문에 장승업을 쫓던 흐름이 잠시 좀 빛깔을 잃는다고 해도 넓게 봐서는 절대로 그럴 리 없다고 봐요. 오히려 강렬한 어떤 것을 심어냄으로써 우리 소리, 우리 문화, 그리고 그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정서가 크게 뭉뚱그려지면서, 그러니까 지엽적 단위로 꼬집어서 얘기할 수 없는 큰 감동이, 나는 반드시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고. 그런 걸 노린 거야, 그런 걸.
허문영 감독님이 처음 이 영화에 대한 구상을 말씀하셨을 때, 참 굉장한 야심을 갖고 시작하신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중 하나가 감독님이 90년대 들어서 계속해오시던, 근대화 과정에서의 한국인의 뿌리 뽑힌 삶에 관한 얘기를 또 다른 방식으로 하실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왜냐하면 시대상이 <개벽>이나 <서편제>와 인접하거나 겹쳐지는 시기이기 때문에. 제 방식대로 얘기하자면 근대와의 불화가 감독님 영화의 주된 모티브라고 봅니다. 장승업에게는 어떤 방식으로 근대적인 게 다가올까라는 점을 궁금하게 여겼어요. 그런데 뜻밖에 <취화선>에서는 이를테면 <개벽>이나 <서편제>에서처럼 근대적인 것이 장승업의 삶과 충돌한다기보다 약간 추상적인 수준에서 세상사의 번뇌의 하나처럼 그려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근대화의 불화라는 모티브를 이번엔 의도적으로 축소하고 있다는 느낌.
임권택 축소한 것은 아니에요. 장승업 선생의 드러난 행적을 보고 있으면 순탄치 않았던 역사적 격변과 맞닿아 있는 곳이 한 군데도 없어요. 그럼 배제시킬 것인가. 즉, 세상이야 어찌 됐던 그냥 그림 속에 빠져서 사는 인간으로 그럴 것인가. 이 문제에 부딪히는 거지요. 근데 절대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이 사람은 산에서 승려들 살 듯이 그렇게 산 게 아니고, 세속에서 상당히 깊이 들어와 살아왔단 말이에요. 더군다나 이 사람의 후원자들은 이른바 개화사상을 전파한 지식인들이란 말이에요. 장승업도 그런 세상 흐름에 대해서 전혀 뚝 떨어진 세월을 살 수가 없는 거예요, 듣는 게 있는데. 그런데 이런 건 그림에 전혀 드러나지 않았어요. 그러니 이 사람을 억지로 근대화되어가는 어떤 실제 역사 속에서 그런 조류와 만나, 개화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해가면서 살아가는 인간으로 해낼 수는 없는 거야. 그렇다고 이 큰 사건들로 점철된, 국가의 명운이 걸린 사건들과 물리는 시대를 아주 나 몰라라 하고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그려가지고는 또 말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저거죠. 동학 봉기와 얽히는 부분인데. 그걸로 봐서는 뭔가 바뀌어야 될 세상이라는 인상을 영화 전체가 담고 있는 거 아니겠어요. 장승업 자신도 신분적으로나 뭘로 봐서 그 안에 충분히 휘말릴 수 있는 인간이란 말요. 새로움을 추구하는 물결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사람인데도 그런 것이 없기 때문에 그림으로 해결하는 거예요. 매에 쫓기는 되새떼 그림으로.
정성일 그 대목 대해 저는 굉장히 토론할 부분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한편으로 <취화선>이라는 영화에 담겨 있는 많은 장면들이 근대에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하는 많은 대목이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이 영화 전체의 이야기 속에서 장승업이라는 사람이 초반부터 끝까지 만나는 사람은 두 사람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매향이었고 또 한 사람은 김병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두 사람은 모두 허구의 인물인데, 이미 근대에 들어선 사람이었습니다. 매향은 천주교 신도였고 또 김병문은 개화파 지식인이었습니다. 하여튼 이 허구로 만들어낸 이 인물을 의도적으로 김옥균의 개화파의 관점에 세워놓고 처음부터 영화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평생 만나는데 장승업은 천주교에도 전혀 영향받지 않고, 김병문에게도 끝내 영향받지 않는 사람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임권택 그것은 <개벽>을 거슬러서 얘기할 수밖에 없는데, <개벽>에서도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요. 동학의 봉기가 바람직한 것이었지만 외세를 불러들이는 빌미를 줌으로써 조선이 문 닫는 데 속도를 가속화시켰다는 거죠. 이것은 사실이요. 그때 아주 싫은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왜 농민전쟁에 대해서 포커스를 맞추지 않고 최시영을 다뤘냐 하는 얘기요. 나는 그때 어떤 얘기를 했냐면, 나는 농민전쟁에 대해서 찍으려고 한 게 아니고, 최시형 선생이 평생을 걸고 지키고자, 넓히고자 했던 동학에 관심을 맞췄다, 어찌보면 성급한 봉기가 조선을 닫는 것을 가속시킨 단점을 가진 데 비해서, 개벽이라는 것은 민주적 세계와 맞닿고 있는 것이었기에 훨씬 더 소중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찍었던 영화라고. <취화선>에서도 김병문이 개화를 통해서 나라를 바꾸고자 했던 것이 이제 다 일장춘몽이라고 자각하는 것은 <개벽>과 똑같은 시각으로 시대를 읽어내고 있는 거요. 패배주의자로서 어떤 늪에 빠져 있는 게 아니요.
정성일 한편으로는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역사적 시기가 조선 500년사에서 아주 특별한 시기이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장승업과 조선화에 대한 관심이 있겠지만, 또한 한편으로 이 영화는 역사적인 사건들을 함께 타고 가고 있습니다. 사실 제가 이러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던 가장 큰 까닭은 이 영화는 명백히 1897년에 끝나고 있다는 것 때문입니다. 언제 죽었는지 알 수 없는 사람인데도 1897년, 딱 못박아서 영화를 끝내고 있습니다. 1897년이면 조선이 끝나고 대한제국이 시작됐던 바로 그해라는 것과 영화의 끝이 딱 맞물려 떨어집니다. 그래서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겁니다.
임권택 그렇게 바라볼 수도 있겠으나, 나는 전혀 그런 쪽에 눈을 돌리지 않았다고. 이 영화는 그런 기울어진 시대를 중요하게는 다루고 있지만, 장승업이라는 한 환쟁이를 통해서 큰 동양화를 그린다는 데 더 큰 목적이 있었지. 나는 근자에 와서 그런 생각을 해요. 영화가, 무슨 우리의 아픔을 어떻게 드러내고 어떻게 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사회를 교화시킨다고 하는 데는 굉장히 미미한 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별것이 아니에요. 최근에는 영화라는 매체가 사람의 삶에 대해서, 이 고단한 삶에 대해서 조금 정서적으로 풍요로움쪽으로 기여해주는 그런 편한 영화가 더 바람직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요. 내가 나이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서편제>, 그리고 10년
정성일 지금 하신 말씀이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 <서편제> 찍고 나서 했던 말씀과 반대네요. 그때 기억나는 얘기가, 영화가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고며 만들었는데 이렇게 사회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정말 무겁다는 것이었죠.
임권택 이 사람이 별걸 다 기억해가지고…. (웃음) 그때와 다른 것이 10년이라는 세월이 있는 거요. 그때로부터 한치도 변함이 없는 것을 진리인 양 끌어안고 살 리가 없잖아요. 변할 수밖에 없는 거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또 달라지고 또 거듭 달라지는 건데, 10년 전에 너 이런 얘기해놓고 지금 와서 또 무슨 딴소리하고 있냐는 질문은 그 질문 자체가 우스운 거요. 나이에 따라서 세상 보기가 끊임없이 달라진다고 생각해. 무슨 큰 덩어리의 이데올로기를 끌어안고 사는 사람들이면 몰라도 그런 것은 아니라고.
허문영 제겐 약간 충격적인 말씀으로 들립니다. 감독님 말씀을 듣고나니 확 풀리는 의문이 있습니다. 저는 김병문이라는 존재가 좀 애매하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장승업한테 좀더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김병문은 개화파였고, 계몽주의자였고, 그림이 민중의 삶을 그리고 교화시키는 데 일익을 담당해야 한다는 생각을 장승업에게 말합니다. 선경이 아닌 진경을 그리라는 말. 요즘식으로 말하면 판타지가 아닌 리얼리즘을 추구하라는 뜻이지요. 그러나 결국 장승업은 궁극적으로는 승복하지 않았지요. 어릴 때 생명을 구해준 은인이고 자기의 평생의 후원자이기는 한데, 결국 장승업한테 예술세계나 정신세계에나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사람으로 남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김병문조차도 결국 선경을 지지합니다. 감독님의 지금 말씀을 들으니까 김병문이 그런 인물이었던 이유가 좀 짐작이 되네요.
임권택 김병문은 말하자면 장승업이 살아가고 환쟁이로서 거듭나는 데 필요한 장치였지, 그걸 통해서 그림의 세계를 확 바꾸고, 그런 것은 아니었다니까. 왜 애매하냐 하면 김병문은 개화에 모든 것을 걸고 산 사람이었지, 장승업의 그림세계에 대해서 미친 영향은 미미한 거라고. 가령 김병문이 너 생활로 내려와라, 했을 때 장승업이 화내고 집을 나가는 것도, 장승업이 자기도 달라지고 싶은데 아는 소리를 자꾸 하고 있으니까 화가 나는 거지. 김병문이 달라져야 한다고 이야기하니까 그제서야 깨닫고 갔다고 한다면, 이것은 영화가 잘못된 거죠. 그것은 처음부터 짚고 있었단 말이요. ▶ 정성일 · 허문영, 임권택 감독을 만나다 (1)
▶ 정성일 · 허문영, 임권택 감독을 만나다 (2)
▶ 제2장 <취화선>, 그 열두폭 병풍 속으로
▶ 제3장 <취화선>, 임권택 영화 미학의 새로운 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