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나는 예전부터 생각했던 일을 하나 해치웠다. 유언을 한 것이다. 꽤 예전부터 할 일 목록에 있었던 일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우선순위가 높지는 않았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의 세계적 대유행 이후, 내게 유언은 아주 중요한 일이 되었다. 변호사로서 내가 가진 몇 가지 믿음(?) 중 하나는 “죽은 사람은 산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망인과 상속인들간의 관계가 아주 원만했더라도, 사후의 일이 망인의 뜻대로 풀리기란 쉽지 않다. 산 사람들의 생각, 의지, 이해관계, 외부의 간섭이 발생한다. 망인이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죽은 사람한테 가서 물어볼 방법은 없다. 산 사람의 힘이 항상 더 세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직접 쓴 유언장을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이라고 하는데, 유효한 유언장을 쓰는 일은 쉽지 않다. 예를 들자면, 유언장에는 반드시 도장을 찍어야 한다. 사인만 하면 안된다. 주소도 정확히 써야 한다. ‘2020년 6월 관악산 아래에서’라고 쓰면 무효다. 산 사람들끼리 많이 싸운 덕분이다.
나는 배운 것이 이 일이니 유효한 유언장을 쓸 수는 있다. 그렇지만 죽은 나는 살아 있는 사람 누구보다도 힘이 없으리라 생각해 애당초 자필유언은 고려하지 않고, 서류로 남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형식인 공증유언(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을 하기로 했다. 나에게는 별다른 유형자산이 없다. 아이도 없다. 지금처럼 살면 둘 다 앞으로도 딱히 없을 것 같다. 내 재산 중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바로 이 칼럼을 포함한 글, 즉 지적재산권이다. 지적재산권은 공동소유하기가 상당히 번거로운 재산인데, 내가 죽으면 거의 반드시 공동상속이 발생한다. 내가 지금 죽으면 나의 유산은 부:모:남편이 1:1:1.5로 상속한다. 부모님 중 한분이 돌아가신 후 내가 이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망하면 내 재산은 생존비속과 남편이 1:1.5로 상속한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내가 이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망하면 내 재산은 동생과 남편이 1:1.5로 상속한다. 게다가 나한테는 사촌도 6명 있다. 한 사람이 깔끔하게 상속받는 경우의 수 자체가 너무 적다.
그래서 나는 유언을 썼다. 지적재산권을 픽션과 논픽션으로 나누고, 공동상속이 발생하지 않도록 픽션과 논픽션을 각각 한 사람에게로 완전히 귀속시키기로 했다. 유언집행자도 지정했다. 유언집행자는 이미지로는 애거사 크리스티 소설에서 유족들 앞에서 유언장을 공개하는 변호사고, 실무에서는 상속인들의 위임장과 인감을 받아 행정관청을 돌아다닐 사람이다. 20년 넘은 인연인 지금의 남편에게 그 정도는 신세를 지기로 했다.
공증유언을 하고, 나는 상속인들에게 “나를 최대한 오래, 널리 읽히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이 부탁에는 아무런 법적인 힘이 없다. 상속인들의 뜻대로 될 일도 아니다. 그러니 나는 이 말을 유언에 쓰지 않았다. 그래도 역시, 공정증서유언 원본을 책장에 꽂으며, 나는 어쩐지 더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어쩌면 팬데믹 이후의 시대에도 나는 살아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