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의 클라브생. 시인 랭보는 풀을 그렇게 표현했다. 영어로 하프시코드, 프랑스어로 클라브생, 이탈리아어로 쳄발로라고 부르는 피아노가 있기 전의 건반악기 중 하나인데, 현을 쳐서 소리를 내는 피아노와 달리 현을 울려 소리를 내는 이 악기는 실제 연주를 들어보면 볼륨이 작으며 강약 조절이 되지 않는다. 숲을 헤치며 부는 바람 소리와 풀밭인 초원을 스치는 바람 소리의 차이. 알랭 코르뱅의 <풀의 향기>는 예술 작품과 풀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러니 랭보를 필두로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나 화가들이 풀을 생각해왔는지, 어떤 의미로 풀이 언급되는지를 책에서는 수시로 언급한다. 꽃이나 나무가 아닌 풀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자연의 상징이기도 하다. <풀의 향기>를 쓴 알랭 코르뱅은 <사생활의 역사>의 공저자이며 <날씨의 맛>을 쓰기도 했는데, 근대사와 미시사를 전문 분야로 한 역사학자답게 수많은 문헌들에 살아 생명력을 빛내는 온갖 풀의 이야기를 찾아 소개한다. 목가적인 감정들과 전원시를 다루는 ‘꿈결보다 감미로운 풀’에서는 아르카디아(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있는 지역 이름이지만 낙원을 상징한다)적인 상상의 필수품인 풀 이야기를 들려준다. 풀 위에서의 여름 콘서트는 아르카디아적인 행위다. 목가적 낙원에 대한 그림들에 자주 보이는 풍경… 풀밭의 양, 소, 염소. 그렇다면 평화뿐일까? 성적 욕망의 무대로서의 무성한 풀숲은 어떤가. 자연과학 에세이가 아니라 인문과학 에세이라는 점을 감안할 것. 풀의 생태가 아닌 인간의 머릿속 풀에 대한 이야기다.
<아무튼, 산>의 저자 장보영은 25살에 오른 지리산에 매료되어 지금까지 알프스, 아시아의 여러 산을 오르고 산악 잡지도 만들었던 경력의 소유자다. 시간이 날 때 산을 오르는 정도가 아니라 30여개 대회 1500km를 달린 ‘트레일러너’(걷는 등반도 힘든 산을 시작부터 달리기로 이동한다)라는 점이 특히 눈에 띄는데, 젊은 트레일러너의 등산학교의 사계절부터 각종 대회 참가기 이야기는 산에서 하는 경험이 얼마나 폭넓을 수 있는지 알려준다. 등산복과 등산화에 대한 이야기는, 브랜드가 만들어지게 된 산의 특성이 어떻게 물건에 반영되는지를 알려준다. “정상을 향한 마음만으로는 산에 오를 수 없다. 그렇게 절박하게 오른 산에서 내려와야만 우리는 다음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등산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이 책을 이렇게 재미있게 읽다니. 글로 등산을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