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작가가 창가 앞에 앉아 보드라운 고양이의 털을 어루만진다. 고양이에게서는 ‘고롱고롱’ 기분 좋은 목울림 소리가 난다. 도리스 레싱이 쓴 고양이에 관한 산문집을 손에 들었을 때 나는 막연히 이런 평화로운 풍경을 상상했다. 하지만 <고양이에 대하여>는 ‘작가’와 ‘고양이’라는 총합이 가져오는 이미지를 산산조각내는 살풍경한 장면으로 시작된다. 어린 시절 아프리카 농가에서 동물들에게 둘러싸여 살았던 작가에게 고양이는 집 안팎에 늘 있는 존재였다. 야생에서 불임수술을 받지 않은 고양이들은 순식간에 불어나기 때문에 개체수 관리가 필요했고 집에서 그 역할은 어머니의 몫이었다. 새끼 고양이를 물에 빠뜨려 개체수를 조정하고, 외딴 농가에 끊임없이 나타나는 야생 뱀을 총으로 쏘는 등 자연이 부과하는 의무를 감당하던 어머니가 집을 비운 사이 고양이를 없애야 하는 미션이 아버지에게 떨어진다. 결국 고양이를 한방에 몰아넣고 무자비하게 엽총을 발사한 사건을 작가는 ‘고양이 홀로코스트 사건’이라 지칭한다. 물론 그외에는 작가와 함께 살았던 개성 넘치는 고양이들의 무수한 에피소드들이 마음을 녹이지만, 맨앞에 이 사건을 서술한 것이 이 책의 본질과도 같다. 고양이는 고양이다. 사랑을 퍼부었을 게 분명한 반려묘들과의 일상 역시 냉엄하고 신랄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토끼고기가 아니면 입에도 안 대는 특이식성과 털을 감싸고 도는 빛과 기기묘묘한 움직임까지 눈에 그리듯 묘사하는 문장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고양이들을 사랑하고 오래 지켜봤는지 알 수 있다. 반려 인간의 말 따위는 무시하는 고양이에게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구르다가도 이내 고양이님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일상은 웃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정원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암고양이를 키우면서도 중성화수술을 안 시켜 여러 번 출산을 반복하는 걸 보고 있으면 당장 책 속으로 들어가 “모두의 행복을 위해 제발 TNR(포획-중성화수술-방사)을 시킵시다”라고 설득하고 싶어지지만.
완벽한 자세
침대에 앉아 밖을 내다볼 때의 모습은 정말 최고였다. 연한 색의 막대 모양 무늬가 있는 크림색 앞다리는 나란히 쭉 뻗어 있고, 앞발은 은색을 띠었다. 은색처럼 보이는 하얀색이 가장자리에 가볍게 둘러진 귀는 앞뒤로 쫑긋거리며 이런저런 소리를 들었다. 새로운 것이 감지될 때마다 녀석은 한껏 집중하며 고개를 살짝 돌렸다. 꼬리의 움직임은 또 다른 차원을 보여주었다. 마치 다른 기관들은 감지하지 못하는 메시지를 꼬리 끝으로 감지하는 것 같았다.(8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