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학교에는 ‘순결캔디’를 나눠주는 사람이 종종 나타났었다. 대체 학생이 왜 사탕을 먹으며 순결을 맹세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고, 알고 보니 어느 종교의 성교육 행사였다는데, 아무튼 그런 시절이 있었다. 2020년이 된 지금, 학교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성교육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성 인권으로 한 걸음>을 읽어보면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이 책의 저자는 학교 성교육을 맡아온 보건교사이고, 그래서 현장의 상황을 풍부하게 제시한다. 어른들이 학생들의 성 자체를 여전히 쉬쉬하는 가운데, 학생들 특히 여학생들은 수치심과 죄책감을 느낀다. 한편 남자는 좀 폭력적이어도 된다는 관대한 분위기가 여전하니 남학생들의 괴롭힘은 진화하여 여성 교사의 치마 속을 거울로 보거나 사진을 찍고 단톡방에 여학생들 사진을 올리며 성희롱을 한다. 자신이 폭력을 저지른다는 사실 자체에 무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성에 대한 호기심을 막을 수도 없는 상황. 이성 교제 수업에서 관계를 진전할 때 서로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고 얘기하면, “분위기 깨진다” 같은 반응이 나온다고 한다. 이런 반응을 막고 서로의 동의하에 성적 친밀감을 표현하도록 가르치려면 제대로 된 성교육이 필요하다. 캐나다 고교 성교육 교과서에서는 동의가 없는 성관계는 폭력임을 분명히 밝힌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은 아직 성교육 커리큘럼이 들쑥날쑥한 상황이고 교육 시간을 제대로 배분받지 못하고 있다. 2018년 서울시여성가족재단에서 “학교생활 중 성차별적인 말을 듣거나 행동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라는 설문을 한 결과 초중고등학교 학생 86.7%가 성차별적 언어나 행동을 경험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2015년 대검찰청 통계자료에 따르면 성범죄 가해자 중 10대 아이들의 수는 성인 남성의 30%에 이른다고 한다. 과연 이 두 가지가 아무 상관이 없을까. 스쿨미투로 학내 성차별에 반기를 든 용감한 학생들을 생각한다면, 교사들부터 성인지 감수성 교육을 받아야 할 테고 성폭력의 근본에 성차별이 있음을 서둘러 교육해야 할 것이다.
학습할 권리
학교 상황에 따라 성교육의 양이나 내용이 달라진다면 학습할 권리를 빼앗는 것이다.(32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