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아닌 이유로 이렇게까지 학교에 가지 못한 시기는 없었으리라. 초여름의 개학, 초등학교 1학년 자녀를 둔 지인 몇이 신기할 정도로 아이가 설레어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결연한 태도로 씩씩하게 학교로 가는 초등학교 1학년의 이야기를 SNS를 통해 볼 수 있었다. 그런 소식이 한창인 시기에 안녕달 작가의 그림책 <당근 유치원>이 출간되었다. <수박 수영장> <할머니의 여름휴가>를 비롯한 수작으로 많은 어린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안녕달 작가가 이번에는 유치원을 무대로 이야기를 펼쳐간다. 빨간애가 유치원에 새로 왔다. 선생님은 목소리만 크고 힘이 세다. “아… 유치원 가기 싫다.”
완행열차를 타고 부석사에 가던 날, 어느 역에선가 소풍을 가는 유치원 두 학급이 나와 같은 객차에 탑승한 적이 있었다. 몇 정거장 뒤에 선생님들이 원생들을 인솔해 내리자 나는 침묵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되었고, 그 객차에 타고 있던 어르신들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모두 웃음을 터뜨렸던 기억이 있다. 그 풍경이, <당근 유치원>에 있다. 그림으로 보기만 해도 혼이 나가는 기분이다. 어린이들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모두 동시에 말을 한다. 어수선하지만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한 풍경, 아이들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에서 튀어나오는 아무 말을 하는 모습이 여기 있다. 주인공이 있지만, 유치원 모두가 시야에 들어온다. 영화식으로 말하면 딥포커스다. <당근 유치원>을 재미있게 읽는 방법은 모두의 목소리에 하나하나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림책의 모든 구석에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당근 유치원의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고르게 눈길을 준다. “이거 흙이에요. 똥 아니에요”라는 어린이에게 “그래, 흙이야. 어서 이거 먹으면서 바지 갈아입자. 친구들이 똥이라고 생각하면 어떡해”라면서 당근을 내미는 선생님을 보면 소리를 내 “오오…” 하는 찬탄이 절로 흘러나온다. 어린이와 함께하는 어른의 사회생활이란 이런 것이다.
그리하여, 유치원에 가기 싫다던 원생은 이제 집에 가기 싫다고 떼를 쓴다. <당근 유치원>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하는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내 말을 듣는 어른을 만난다는 게 새 학기의 가장 좋은 뉴스였다. 내가 신통한 말을 했을 리는 없는데, 어른이 내 말에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짓거나 감탄사를 내뱉을 때 어깨가 으쓱 올라가는 기분. <당근 유치원>에 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