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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레이크' 이세영·박지영 - 두 사람이다
임수연 2020-08-20

사진제공 스마일이엔티

<호텔 레이크>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심리적 텐션을 밀어붙이는 호러영화다. 그만큼 배우들의 노련하고 집중력 있는 연기가 필요한 현장이었다. 연기 경력 도합 56년차에 이르는 이세영박지영은 작품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행동하는 베테랑들이다. 배우들은 평소 모습을 떠나 장르 연기에 필요한 긴장감을 유지했다고 입을 모아 전한다. “많은 분들이 알고있는 것처럼 원래 (이)세영이가 밝은 기운 그 자체이지만, 작품을 위해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로 촬영이 진행될 수 있도록 서로 도왔다.”(박지영) “표현은 굉장히 쿨한데 늘 배려와 정이 가득한 선배님이시다. 이번 작품은 어느 정도 마음의 거리를 뒀지만, 같은 현장에 있다는 것만으로 든든한 에너지를 받았다.”(이세영) 그 결과 “모든 배우가 자발적으로 고독함을 선택했던” (박지영) <호텔 레이크>는 배우들의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예민한 신경이 전해지는 공포물이 됐다. 작품을 준비하고 몸으로 직접 통과하며 느낀 고민을 엿볼 수 있는 두 사람과의 대화를 전한다.

스스로 해결하다

사진제공 스마일이엔티

<호텔 레이크> 이세영

전 국민이 성장과정을 알고 있는 배우. 아역으로 우리를 처음 만난 이세영은 자연스럽게 시청자와 함께 나이를 먹고, 아역배우 출신이 흔히 겪는다는 슬럼프도 없이 20대 여성의 얼굴로 완벽히 안착했다. <호텔 레이크>는 그가 장편영화로는 처음으로 호러 연기를 선보이는 작품이다, 이세영이 연기하는 유미는 피도 섞이지 않은 어린 동생을 돌볼 장소를 찾지 못해 오랜만에 내키지 않는 곳, 호텔 레이크에 들르게 된다. 취업 준비로 바쁘다며 무심하게 대응하는 유미는 탄탄한 기본기로 늘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이세영의 노련함을 느낄 수 있는 캐릭터다. 섬뜩한 상황에 처할수록, 공간에 대한 비밀이 드러날수록 그는 주인공이 보여줘야 할 리액션을 정확히 연기하며 설득력 있게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사진제공 스마일이엔티

-이번 작품은 어떻게 준비했나. 호러 연기는 <무서운 이야기2>에서 박성웅과 함께한 단편으로 경험한 적이 있는데 그때와는 어떤 점이 달랐나.

=참고할 만한 영화를 15편 정도 봤다. <겟 아웃> <바바둑> 등 공포영화 가운데 특정 장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나 자매끼리의 관계성, 예민한 정서가 도드라지는 작품들 위주로 찾아봤다. <무서운 이야기2>에서는 내가 관객의 이해를 돕는 스토리텔러였는데 <호텔 레이크>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 채 관객과 함께 사건들을 겪는다는 점에서 많이 달랐다. 이야기가 유미의 시선을 따라 진행되기 때문에 관객이 느낄 부분을 한번 더 생각하고 표현해야 했다.

-<호텔 레이크>에서 가장 도전적이었던 부분은 무엇이었는지. 이번 작업을 통해 새롭게 배운 것이 무엇인지도 궁금하다.

=본격적인 공포영화는 처음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대상을 향한 감정을 상상해서 표현하는 작업이 더 많은 상상과 몰입을 필요로 했다. 원래 나는 행동이 굉장히 빠른 편인데, 극 전체의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유미는 조심스럽고 천천히 행동해야 했다. 관객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하고 예측할 시간을 주기 위한 장치로서 조금은 느리게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동생 지유로 나오는 박소이를 보면서 아역배우로 활동했던 옛날 생각도 났겠다.

=성장하는 어린 친구들이 작품에 참여할 때 더 많이 배려받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었다. 개인적으론 그냥 자연스럽게 지나온 시간이라 스스로는 미처 체감하지 못했는데, 소이를 보면서 새삼 내가 어릴 때보다 작업 환경이 많이 개선됐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소이 자체가 굉장히 사랑스럽고 귀엽다. 경쾌할 수 없는 스토리여서 혹시 현장에서 너무 주눅 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본연의 밝음이 있는 친구였다. 현장에서 같이 놀아주기도 했다.

-<의사 요한>에서 의사, <메모리스트>에서 프로파일러 역할을 맡는 등 드라마에서는 주로 카리스마 있는 전문직 캐릭터를 소화한 반면 <수성못> <호텔 레이크> 등 영화에서는 적당히 무심하고 평범한 20대 초반 여성이 어떤 사건에 휘말리는 상황을 연기한 점이 눈에 띈다.

=맡았던 모든 캐릭터가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주변의 도움 없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캐릭터에 조금 더 마음이 간다. 지금 촬영 중인 드라마 <메모리스트>의 한선미도 그런 맥락에서 끌렸다. 지금까지 했던 작품 중엔 드라마 <화유기>의 ‘부자’가 여러 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좀비 소녀인 데다 전생에 아이돌을 꿈꾸던 인물이라 외적으로도 다양한 모습을 선보일 수 있었고, 캐릭터가 지닌 이면의 아픔 때문에 여운도 오래 남았다.

-몇년 전 예능 프로그램에서 소속사 내 '오피스라이프스타일팀 과장' 직책을 맡고 있다는 것을 봤다.

=회사에 아예 독서실 칸막이 책상으로 전용 자리도 만들었다. (웃음) 거기서 대본도 보고, 학부 때는 과제도 했다. 직원들이 사용하던 컵 설거지도 하고 사무실 미화에 신경 쓰는 편이라 회사 사람들이 ’오피스라이프스타일팀 과장‘이라는 별칭을 만들어준 거다. 본의 아니게 작품을 이어서 하게 되면서 사무실에 못 간 지 꽤 됐지만, 여유가 생길 때는 집에서 고양이를 돌보거나 사무실로 향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드라마 <메모리스트> 촬영을 끝내고 일단 휴식을 좀 취할 예정이다. 사무실 출근 도장도 찍고. (웃음) 차기작은 검토 중인데 조만간 소식을 들려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사로 잡히다

사진제공 스마일이엔티

<호텔 레이크> 박지영

박지영이 연기하는 중년 여성들은 클리셰를 뒤집는 쾌감이 있다. 드라마 <질투의 화신>의 방자영은 한 남자와 딸을 두고 같은 방송국 동료 계성숙(이미숙)과 신경전을 펼치지만, 정작 남자는 뒷전이고 두 여자가 묘한 커플기류를 뽐내면서 화제가 됐다. 사법고시 2차 시험을 앞둔 아들을 대신해 고시촌 수도세와 관련된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범죄의 여왕>의 미경은 ‘억척스런 아줌마’의 전형을 깨며 젊은 남자를 사이드킥으로 둔 히어로로 부상한다. 이번에 우리를 만날 호러영화 <호텔 레이크>의 경선은, 박지영의 말을 빌리자면 “고독한 인물이자 고독을 이겨내는 방식이 독특한” 캐릭터다. 호텔 레이크의 사장인 그는 우아하면서 단단하고, 살가우면서 의뭉스러운 모습으로 극의 호기심을 견인한다.

사진제공 스마일이엔티

-<질투의 화신>이나 <범죄의 여왕> 모두 의상이 인상적이었고, 캐릭터를 설명하는 데 큰 역할을 해서인지 이번 작품의 의상도 눈여겨보게 되더라.

=경선의 의상을 비롯해서 전체적으로 영화의 미술이 눈길을 끄는 것 같다. 아무래도 공간이 차지하는 의미가 크다. 경선은 공간 자체가 주는 독특한 분위기에 어우러져야 한다고 봤다. 유행과 무관하게 그곳에 어울리는 사람의 느낌을 주고 싶었다. 원래 거기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제작한 의상도 있었고, 경선이 취미로 만지는 죽은 꽃 등의 소품도 그 일환이다.

-경선은 기이한 사건이 벌어지는 호텔 레이크의 사장이다. 인물에 어떻게 접근해나갔나.

=어떤 캐릭터를 만나든 그 인물의 감정과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경선의 방식은 나의 삶과는 무관하지만 감독님과의 대화를 통해 최대한 경선을 이해하고 몰입하는 데 주력했다. 경선을 만들어낸 감독님의 의견을 많이 수렴했고, 장면에 따라서는 나도 의견을 더했다. 경선은 사실‘공감’하기는 어려운 캐릭터다. (웃음) 다만 경선의 내면에는 스스로에 대한 죄의식이 있다고, 자신을 원망하는 감정을 생각하며 연기했다. 홀로 남은 사람의 ‘사로잡힘’은 보편적인 생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워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했다.

-남편을 따라 베트남으로 거주지를 옮긴 후 한동안 활동을 하지 않은 시기도 있었다.

=지금은 두딸이 모두 성장했고, 매체를 통해 만날 수 있는 순간이 부쩍 잦아졌다고 시청자 입장에서 체감한다. 배우로서 좀더 부지런히, 자주 연기하고싶다는 의욕이 반영된 결과일까. 어떤 의욕이 반영됐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흘러온 것 같다. 눈앞에 있는 상황에 100% 집중하는 편이다. 베트남에 있을 때는 한국에 두고 온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한국에 있을 때는 지금 소화해야 하는 캐릭터에 거의 온전하게 집중한다. 가족과 오랜 시간 신뢰와 애정을 쌓아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 가족은 정말 끈끈한 ‘팀’이다. 공간을 초월한 팀워크가있다.

-팬들과 식사 자리도 갖는 등 열성 팬들과 관계가 끈끈하더라. 팬들이 <호텔 레이크> 현장에 커피차를 보내준 사진도 봤다.

=우리 팬들은 아주 작고 단단하다. 너무 고마운 일이다. 20, 30대 친구들이 박보검을 안 좋아하고 나를…. (웃음) 날 응원해주는 팬들의 존재를 안 후로는 역할을 선택할 때 그들에게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 친구들이 엄마 또래의 나를 좋아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려면 내가 멋있어야 하지 않겠나. 다양한 작품 속에서 다양한 연기로 보답하고 싶다.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나 캐릭터가 지금까지 보여준 것과 조금 다르면 한번 더 눈길이 간다. 누군가의 엄마, 혹은 직업이 의사, 이렇게 단순하게 받아들여지는 인물보다는, 엄마이지만 조금은 다른 엄마, 혹은 캐릭터의 성격이 선명하게 보이는 인물에 더욱 매력을 느낀다. <호텔 레이크>에서도 또 다른 얼굴을 보실 수 있을 거다.

-중년 여자배우들이 전면에 나서 연기할 수 있는 영화가 많지 않다. 그래서 여자배우들을 인터뷰 자리에서 만날 때마다 영화에 대한 갈증을 토로하더라.

=그래서 <범죄의 여왕>이라는 귀한 선물을 만났을 때 기뻤다. 그런 작품을 만났다는 것은 배우 인생에서 손꼽을 만한 행복이다. 하지만 기회가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좀더 다양한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무대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최근에 신선한 카메라워킹을 보여준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을 보고 저 안에 내가 있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다. <더 랍스터> 또한 미니멀하면서도 새로운 영상을 보며 그 안에 있고 싶다고 느꼈다. 아무래도 새로운 것, 신선한 것을 추구하는 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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