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흥미로운 이중구조의 현실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공식적인’ 현실이다. 그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끊임없이 선을 보고 결혼 상대를 흥정하며 사회적 삶을 산다. 이 세계는 거래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다른 하나는 ‘은밀한’ 현실이다. 그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은밀히 서로의 매력에 이끌린다. 이 세계를 움직이는 힘은 ‘욕망’이다. 공식적인 현실은 겉으로 드러나 있는 세계이나 허위의 세계다. 은밀한 현실은 가려져 있지만 그 허위를 뒤집기하는 세계이다. 사람들은 이 영화에서 재미난 역전을 보는데, 정작 영화 속에서 공식적인 세계는 가려져 있고 은밀한 세계는 드러나 있다. 엄정화의 실제 남편인 의사는 코빼기도 안 보이고 계속 전화질만 하는 것이다. 그 일상적 ‘숨은 신’은 무기력하다. 그저 엄정화가 살아가는 알리바이일 뿐이다.
순하게 흐르는 내러티브 속에서 이처럼 은근한 도발을 꿈꾸는 이 멜로영화의 사운드트랙은 에서 조성우 음악감독의 스탭으로 활약한 바 있는 김준석 음악감독이 맡았다. 그가 데뷔작인 이 영화에서 선택한 리듬은 ‘라틴’. 거의 대부분의 음악이 느리건 빠르건, 보사노바나 살사풍의 리듬을 가지고 있다. 그 리듬 위에 얹어지는 악기들 중에서 귀에 확 들어오는 게 아코디언이다. 아코디언은 기본적으로 매우 통속적인 악기이다. 콘서트홀보다는 길에 더 잘 어울리는 이 악기에는 유럽 서민들의 삶의 애환이 깃들어 있다. 왼손으로는 화음과 리듬을, 오른손으로는 멜로디를 짚게 되어 있는 이 악기는 유럽의 민속 춤사위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러던 것이 스페인을 거쳐 남미로 건너가면서 또 다른 색채를 부여받는데, 피아졸라 같은 탱고 명인들을 만나면서 이 악기에 에로틱한 느낌이 덧붙여진다. 최근에는 프랑스의 갈리아노를 비롯, 전문 연주자들을 통해 수준 높은 콘서트홀 악기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중이다.
어쨌든 <결혼은…>에서 아코디언은 감상적이면서도 깊은 원래의 음색을 내줄 뿐만 아니라 라틴 리듬과 어우러져 에로틱한 색깔까지 함께 낸다. 아코디언 다음으로 귀에 들어오는 악기는 따뜻하면서 부드러운 나일론 기타. 고즈넉한 분위기가 필요할 때 나일론 줄을 낀 클래식 기타가 솔로로 등장하여 분위기를 살린다. O.S.T에는 타레가의 기타 독주곡이 하나 실려 있기도 하다. 오랜만에 마이크 앞에 선 이주원이 부른 주제가는 약간 평범하긴 하나 정성들여 부른 노래이다.
영화가 그렇듯, 음악도 쓸데없이 튀지 않는다. 이 영화는 ‘약간’ 들떠 있다. 아주 약간 말이다. 엄정화의 하이힐 높이 정도? 아니면 엄정화가 감우성과 눕는 침대 높이 정도? 그만큼의 일상과의 간극을 통해 우리에게 말을 거는 이 영화의 음악 역시 기본적으로는 잔잔하고 차분하지만, 약간 들떠 있다. 아주 약간 말이다. 무엇이 음악을 들뜨게 하나? 라틴 리듬과 생악기들의 음색이. 주제가를 제외하면, 영화 속에 그 흔하디 흔한 신시사이저 소리가 잘 안 들린다. 약간 밍밍하게 녹음되긴 했지만 베이스 역시 전기 베이스가 아니다. 음악의 거의 대부분을 연주하고 있는 어쿠스틱 악기들이, 생각보다, 그 약간의 ‘들뜸’을 위해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어쿠스틱 악기들에서는 감촉이 들린다. 그러니 우리의 귀는 반드시 소리만을 듣는 건 아니다.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사람’을 듣는 것이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