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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땡의 모험> 시리즈
2002-05-08

유럽연합 만화 대사 납시오!

시끌벅적한 영접 사절도, 요란스러운 퍼레이드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박수로 이 손님을 맞는다. 일찍이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이 “나의 유일한 라이벌”이라 불렀던 인물이며, 지난 수십년간 세계 곳곳에서 평화와 정의를 실천해온 불굴의 행동가, 그러면서도 조금도 그 젊음이 시들지 않은 영원한 소년. 다름 아닌 유럽연합의 만화 대사 ‘땡땡’이다.

이번에 솔출판사를 통해 정식으로 국내에 소개되는 <땡땡의 모험>(땡땡) 시리즈는 가히 유럽을 대표하는 만화라고 할 수 있다. 1929년 만화가 에르제가 벨기에의 어린이 잡지에 처음 연재를 시작해 1983년 그가 죽을 때까지 모두 24권의 단행본이 출간되었는데, 지금까지 모두 50개 언어, 60개국에서 3억부가 팔려나갔다고 한다. <아스테릭스>나 <스피루> 등의 만화 역시 프랑스어권을 대표하는 만화지만 국제적인 지명도 면에서는 <땡땡>을 따라갈 수 없다.

땡땡은 총명한 두뇌와 굽힐 줄 모르는 정의감을 지닌 소년 기자로, 명견 밀루와 함께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기묘한 사건들을 겪는다. 이번에 처음 출간된 <땡땡>의 세 에피소드에서도 이 만화의 분명한 성격을 알 수 있다. 땡땡은 항상 약간의 우연을 통해 국제적인 범죄와 모험의 세계로 빠져들어간다. <검은 섬>에서는 스코틀랜드의 외딴 섬에 본거지를 둔 위조 지폐범과의 대결이, <유니콘 호의 비밀>과 <라캄의 보물>에서는 해적이 숨겨둔 보물을 둘러싼 악한들과의 싸움이 펼쳐진다. 덜떨어진 뒤퐁과 뒤뽕 형사, 주정뱅이 아독 선장, 귀머거리 발명가 해바라기 박사 등이 그와 함께하지만 사실상 일을 복잡하게만 만들 뿐, 온갖 기지와 용맹함으로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것은 소년 땡땡이다.

프랑스 추리문학의 대를 잇다

<땡땡>은 20세기 초반 큰 인기를 모았던 프랑스 추리물의 미스터리 활극세계를 이어받고 있다. 셜록 홈스로 대변되는 영국식 추리문학이 사건의 논리적 해결에 중점을 둔다면, 뤼팽이 대표하는 프랑스 추리문학은 영웅의 두려움 없는 행동이 우선된다. 실제로 <검은 섬>은 기묘한 섬의 존재나 퍼즐의 구성 방식이 모리스 르블랑의 소설 <기암성>과 매우 흡사하다. 그러나 땡땡은 괴도 신사 뤼팽의 직계라기보다는 <기암성>의 소년 탐정 보트를레의 친구라고 할 수 있다. 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기 때문에 범죄의 세계는 부드러워지고,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기 때문에 좌충우돌의 유머를 쉽게 곁들일 수 있다. 그것이 <땡땡>이 어린이를 중심으로 모든 연령의 보편적인 사랑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입지 조건이다.

팝 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은 에르제의 초상 작업을 통해 이 유럽 만화계의 거물에 대해 깊은 경의를 표한 바 있다. 그것은 그가 흔히 해왔던 방식으로 <땡땡>이라는 만화의 ‘인기와 대중성이 가진 허상’을 그려낸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에르제라는 만화가가 20세기 초중반에 창조해낸 새로운 예술세계가 진정한 팝 아트의 선구였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작업이었다고 생각된다.

지난 세기 서구의 만화는 강한 외곽선에 원색의 컬러가 결합된 미국의 슈퍼영웅 만화와 화려한 색조로 다채로운 미술의 영역과 교류해온 유럽의 만화로 대별된다. 에르제의 <땡땡>은 이 두 영역의 중간에서 새로운 만화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분명하면서도 간략한 외곽선을 통해 인물을 묘사하면서도 사실적인 공간감을 명확히 표출해내는 클리어라인 리얼리즘은 바로 그에 의해 탄생해 오늘날까지 세계 만화의 가장 강력한 기법으로 존재해오고 있다. 자크 타르디나 오토모 가쓰히로처럼 그와는 정반대의 세계를 그리는 만화가들에게도 그의 기법은 훌륭한 도구가 되고 있다. 그리고 미국식의 강렬한 원색을 배제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명료한 색감으로 유럽적인 단순함을 만들어낸 그의 색채 감각은 만화뿐만 아니라 디자인계에도 큰 영향을 끼쳐왔다.

세계 문화의 섬세한 재현

<땡땡> 시리즈는 이미 수십년 전의 작품들로 그 설정 자체는 고전적이고 매력적이지만 구체적인 연출에서는 다소 진부함을 느낄 수 있다. <땡땡>은 플롯의 전개와 장면 구성에서는 많은 영화의 모범이 되었지만, 반대로 움직임의 묘사와 같은 영화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은 것 같다. 시종일관 좌충우돌하는 액션활극이지만 동작의 움직임이 다소 평면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는데, 그것은 좌우의 운동이 대부분이고 전후의 움직임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인물을 바라보는 거리와 앵글은 거의 일정하고, 과장된 클로즈업이나 줌인 줌아웃은 보이지 않는다. 극단에 극단을 더하는 일본 애니메이션과 게임에 익숙해진 우리의 독자들에게 이러한 상대적 평면성은 매우 낯선 것이고, 그것이 결국 이 만화가 가진 장점이자 단점이다. 그러나 그것이 설사 단점으로 작용하더라도, 세계 곳곳의 풍경과 문화를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게 재현한 소품과 배경 묘사, 처음 몇 페이지만으로도 모험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이야기는 정말로 놓치기 아까운 매력임에 분명하다.이명석/ 프로젝트 사탕발림 운영중 www.sugarspr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