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콤 글래드웰의 <타인의 해석>은 우리가 타인을 이해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다룬다. 미국체조협회 여자 국가대표팀의 전담 의사였던 래리 나사르가 치료를 명목으 로 오랫동안 어린 10대 체조 선수들을 대상으로 성폭력을 저질렀던 사건은 왜 그렇게까지 오래 감춰질 수 있었는지, 왜 주변 어른들(특히 피해자의 코치와 보호자)은 알지 못했는지에 대해 말하며 인간이 타인을 대할 때 ‘신뢰’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라고 이 책은 주장한다. 세상 모두를 의심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자녀를 학교에 보낼 수도, 밤에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실비아 플라스의 자살도 다룬다. 말콤 글래드웰은 자살을 ‘결합’이라는 현상과 엮어 설명한다. 어떤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몇 가지 조건이 ‘결합’할 때 사건이 발생한다. 자살 역시 그런 사건 중 하나로, 특히 ‘방법’, ‘장소’와 잘 결합한다. (다른 다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에서 더 많은 사람이 자살한다. 실비아 플라스의 자살은 무엇과 결합되어 있는가. 1962년,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자살자는 5588명이었다. 그중 2469명(44.2%)이 실비아 플라스와 같은 방법(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자살했다. 전문 지식이나 별다른 준비가 없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참고로 영국에서 가스 기구를 개량하면서 1977년부터는 더이상 같은 방법을 쓸 수 없게 되었다. 플라스와 친했던 시인 앤 섹스턴은 1974년에 유사한 방법으로 자살했는데, 바로 자동차 배기가스였다. 이듬해부터 자동차는 배기 계통에 촉매 컨버터 설치가 의무화되어 같은 방법으로는 죽을 수 없었다.
나는 여러 자료를 동원해 타인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를 설명하는 말콤 글래드웰의 이 책에서, 그가 동원한 자료들을 살피며 책을 읽다가, 다른 결론에 다다랐다. 이 책에서는 금융사기꾼, 성폭력 가해자 등이 나온다. 그리고 살펴보면, 여성들이 죽이는 사람은 자기 자신뿐이고, 남성이 강간의 피해자일 때에도 가해자는 남성이다(쿠바 스파이였던 애나 몬테스가 드문 예외다). 실비아 플라스의 자살이 영국의 도시가스 때문이었을까, 남편의 그 유명한 불성실 때문이었을까? 이 책에서 살인사건 피의자로 유죄 판결을 받아 8년이나 징역을 산 아만다 녹스의 경우(이 사건은 매우 유명하므로 뉴스 검색만 해봐도 전말을 알 수 있다), 증거가 없는데도 행동거지가 수상하다(룸메이트가 살해당했는데도 슬퍼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젊은 여자)라는 이유가 유죄 판결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의 맨 처음에 등장하는 사건에서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흑인 여성인 샌드라 블랜드는 백인 남성인 교통경찰이 자신을 무작정 의심하고 몰아붙이는 데 저항하다가 체포되었고 유치장에서 자살했다. 책 속 실제 사건들에서 죽은 사람의 성별과 사기를 쳤든 폭행을 했든 가해자의 성별을 나누었을 때, 어떤 결과를 얻는가. 그래서 <타인의 해석>을 읽다보면 구경꾼의 차분함을 느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이 특히 범죄를 많이 다루어서 더 그런 듯하다. 자살이 수단 혹은 장소과 결합한다는 통찰은 값지다. “사기에 속아 넘어가려면 우선 사기에 노출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같은 말도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코치가 학생들에게 성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더 일찍 고발되지 않은 이유는, 이 책에서도 말하다시피 “선생님이 날 만졌어요”, “가기 싫어요”라고 말한 아이의 말을 부모가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코치를 믿고 아이를 믿지 않았던 것. 누군가의 말이 더 믿을 만한지, 사회적 지위를 두고 고하를 나눈 것이다. 권위 있는 성인 남성을 믿어서 문제고, 권위를 갖지 못한, 어린, 유색인종, 여성을 믿지 않아서 문제다. 신뢰 문제에서 사람들은 차등을 두고 있다. 언제나 사람을 잘 믿어서 문제인 건 아니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