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사파리>를 쓴 래퍼이자 활동가이자 작가인 대런 맥가비는 이 책을 마무리하던 즈음 2017년 6월 14일 런던 서쪽에 위치한 고층아파트 그렌펠 타워 화재사건을 접했다. 그는 그렌펠의 주민들이 꾸준히 화재위험을 경고했으며, 그들이 화재 후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에 대해 의문을 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렌펠의 모든 것이 너무나 익숙하다는 사실도. 빈곤의 풍경. 그는 “생각하고 말하고 글 쓰는 방식에서 나 자신에게 충실하면서 내 어휘, 내가 평생토록 수집해온 말들을 전방위로 사용하려 한다”면서, 책 한권을 끝까지 읽을 수 없다고 자신을 설명하고 있다. “교과 과정이 내가 사는 동네나 내 경험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 가식적인 상층계급의 허튼소리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첫 챕터는 스코틀랜드의 유일한 여성 전용 교도소 콘턴베일이다. 맥가비가 빈곤계층 백인 남성으로 느껴왔던 사회의 무관심에 더해 여성이라는 차별을 한겹 더 경험했을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가난 사파리>는 누군가에게는 ‘세상에 이런 일이’일 테고 누군가에게는 ‘경청의 경험’이 될 것이다. 어려서부터 폭력에 노출된다는 게 어떤 뜻인지, 가능성을 인정받으면 바로 부정적 자기평가로 돌아서는 일이 습관이 된다는 게 어떤 뜻인지. 맥가비는 자신의 경험과 다른 이들의 빈곤의 경험을 교차시킨다. 실제보다 가난하게 보이고 수치심을 감추기 위해 쇼핑센터에서 쓰는 돈과 계급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누구나 인지하고 있는 계급에 대한 편견 등을 하나씩 훑어간다. 맥가비는 “경험이 말한다”는 게 어떤 뜻인지 잘 알고있다. 같은 이슈를 다룬 수많은 책이 학자와 기자에 의해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쓰였다면, 맥가비는 ‘내부에서’ 확성기를 들고 외치는 중이다. 제대로 돌아가는 일은 하나도 없다. 그러니 진정할 수가 없다. 자세한 통계 수치나 관련 맥락을 제시하지 않기 때문에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꼼꼼하게 읽어보면 한국과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빈곤층 아동은 아동학대의 대상일 땐 무관심 속에 방치되다가, 그들이 범죄에 연루되는 순간 사회악의 근원 취급을 받는다. 힘 있는 자들로부터 얻어낸 큰 양보 대부분은 급진주의자들 덕분이었지만, 그럼에도 좌파의 안일함에 대해서는 분노한다. 책 말미에 실린 <시사IN> 장일호 기자의 발문은 한국의 가난을 안에서 경험한 기록으로,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이 책의 헌사 마지막 문장은 “추신: 마약은 하지 마라”이다. 한국에서라면 마약의 자리에 무엇이 들어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