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가 말하길 바야흐로 천하가 어지러워졌으니 아무래도 학문할 여가가 없을 듯하다고 했다. 이 말에, <채근담>에 나오는 말을 육세의의 <청유학안>에서 재인용해 답을 한다. “천하는 저절로 어지러워졌지만, 내 마음은 내 스스로 다잡는다. 사람은 세상에 난리가 나면 스스로 세상에 아무런 뜻이 없다고 말하면서, 혹은 할 일이 없음에 비분강개하면서 아무런 일도 하지 않거나 혹은 미친 척하면서 시를 짓고 술을 마시는 것을 즐기는데, 이는 모두가 중용을 행하는 방도가 아니다.”
2월에는, 3월에는 나아지겠지 믿었다. 3월이 되니 4월 기약이 없고, 4월이 되니 상반기를 포기하게 된다. 코로나19 시대에 어떻게 살면 좋을까. 그나마 ‘하던 대로’도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재택근무와 가정학습을 통해 모두가 알아간다. 세상의 돈은 많은 경우 사람들이 직접 만나야 돌고 도는 것이었다는 것을 끔찍할 정도로 확고하게 알게 된다.
중국의 출판사인 상무인서관에서 40여년을 재직하며 다양한 총서, 문고, 사전을 편찬했다는 왕윈우의 <학문에 관하여>는 동양 고전의 문장들을 뽑아 소개한 책이다. 지금과는 세상이 많이 달랐을 테니 아마 태반의 현대인이 이 책 속 문장이 말하는 공부하는 사람, 다스리는 사람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단적으로 이 책 속 글의 필자 중 여성 독자를 상상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오히려 그런 이유로 보통의 독자인 나는 책에서 백성이니 현자니 하는 말에 매이지 않고 읽었다(고전을 연구하는 학자가 이런 태도라면 곤란할 테지만). 문장을 짓고 그 가까이 살며 인정받고자 했던 희망과 의지를 담은 문장들이다. 사실 세상은 손과 발을 더럽히며 살아가는 곳이나, 그렇기에 중심을 확인하려는 노력의 문장들은 값지다. 어떤 문장은 흘려버린다. 이 글이 실리는 <씨네21>은 1250호로, 창간 25주년 기념 특대호다. 현재를 짚고, 미래를 내다보는 작업과 더불어 뒤를 돌아보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으려는 이 온갖 노력을 한권에 담는다. 여러 사람이 한권의 잡지를 만드는 이런 노력은 <학문에 관하여>가 인용하는 <중용> 속 학문에 대한 문장을 떠올리게 한다. “널리 배우고, 자세히 따지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분명하게 판단하고, 충실하게 행하라.” 포기하지 않는다면 발걸음은 반드시 미래에 닿는다. 그걸 믿어야 오늘의 중심을 지킨다. 내년 봄의 꽃놀이를 잃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