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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전쟁] OTT는 관객과 시청자를 어떻게 바꾸었나 ②
임수연 2020-03-18

OTT 플랫폼은 방송과 영화 시청 패턴을 어떻게 바꾸었는가... 플랫폼별 전략 차이와 한국 업체들의 해외 진출 가능성

‘웨이브는 지상파, 티빙은 CJ E&M’이란 식으로 경쟁력을 내세우기엔 엄밀한 독점 공개는 아니라는 반박이 있을 수 있다. SBS의 드라마 <배가본드>와 KBS의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을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것이 그 사례다. 이는 지상파 3사가 SKT의 웨이브와 계약을 할 때 ‘사별로 1년에 두 작품씩 글로벌 동영상 플랫폼에 공급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었기 때문이다. 이희주 콘텐츠웨이브 정책기획실장은 “지상파가 웨이브의 주주임에도 불구하고 대작 제작비를 충당하기 위해 넷플릭스에 드라마를 제공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일부 지상파와 종편 콘텐츠를 제공한다고 해도 웨이브에는 모든 콘텐츠가 다 있다. 그래서 국내 유저들도 지상파 콘텐츠에 한해서는 넷플릭스보다 웨이브를 선호한다. 오히려 웨이브가 지상파 콘텐츠를 다룬다는 이미지를 벗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이게 장점이기도 하지만 해외 드라마나 <미스터트롯> 같은 종편 콘텐츠도 있기 때문이다.” 유현중 KT 모바일미디어사업담당 상무는 IPTV 업계 1위의 올레TV가 각 방송사와 오래 맺었던 관계가 있기 때문에 전 채널을 아우르는 서비스는 지속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IPTV 초창기부터 다져온 협상력이 있다. TV와 함께 가기 때문에 CP쪽에서도 시너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향후 국내 진출 가능성이 있는 디즈니+나 애플TV+,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등과 제휴가 가능할 때 아주 빠르게 서비스를 론칭할 수 있도록 지니뮤직 같은 오픈 플랫폼 모듈을 구축했다. OTT 플랫폼마다 가져가는 영역이 다른 상황에서 국내 방송사는 대담하게 경쟁사와 손을 잡기도 하고, 소비자는 각자의 필요에 따라 서비스를 선택하게 된다. 웨이브에서는 <순풍 산부인과>와 같은 옛날 시트콤을 틀어주는 ‘레전드 시트콤’을 비롯해 하루 종일 KBS <1박2일>, MBC <무한도전>만 틀어주는 채널이 인기를 끈다. 미국 드라마 마니아들은 넷플릭스와 왓챠플레이를 찾는다. tvN과 JTBC 방송을 좋아한다면 당연히 티빙에 가입해야 하는데, 이곳이 CJ E&M과 JTBC의 합작 OTT로 재출범한 후 어떤 콘텐츠를 제공하느냐에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때문에 지난해 CJ E&M과 JTBC가 넷플릭스와 3년간 공급계약 체결을 맺은 것을 의아하게 여기는 시선도 없지 않다. 이희주 콘텐츠웨이브 정책기획실장은 “그 소식을 듣고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했다”는 입장이다. “CJ E&M이나 JTBC가 합작 OTT 플랫폼을 만든다면 넷플릭스는 분명히 경쟁자가 된다. 플랫폼은 각자의 콘텐츠를 담을 필요가 있다. 지상파는 웨이브에서 봐야 하는 것처럼 CJ E&M이나 JTBC의 콘텐츠는 그들의 플랫폼에서 봐야 한다는 공식이 있어야 경쟁력이 생기지 않을까. 3년간 콘텐츠를 공급한다는 계약은 사실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넷플릭스가 해외판권을 독점으로 가져간다면 사실 해외 전략은 없는 거다. 그런 부분에 아쉬움이 남았다.” <플랫폼 전쟁> 의 저자인 IT 칼럼니스트 김조한 NEW ID 이사는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CJ E&M과 JTBC 입장에서는 방송의 리스크를 넷플릭스로 줄이는 것이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의 제작비는 방송만으로 커버할 수 없다. JTBC와 CJ E&M의 파트너십은 국내 매출 증대를 의미하는 것이고, 대규모 콘텐츠를 만들 때는 넷플릭스가 필요하다. 또한 글로벌 유통을 고려하면 자막 제작부터 마케팅 비용까지 만만치 않기 때문에 넷플릭스와 함께 갈 이유가 충분하다. 한편으로는 넷플릭스에 풀리지 않는 콘텐츠가 유통할 자체적인 창구가 또 필요하다. 그런 측면에서는 잘한 것 같다.” 최근 넷플릭스는 ‘오늘의 TOP10’ 콘텐츠를 보여주는 서비스를 신설했는데, 순위권에 있는 대부분의 작품이 지상파·tvN·JTBC 드라마다. 또한 시청자 수를 공개하지 않고 대세 인기와 상관없이 각자 취향별로 콘텐츠를 골라보는 것을 장려하던 과거 넷플릭스의 방향성과도 대비된다. 넷플릭스의 홍보대행사 케첨코리아에 따르면 “오늘의 TOP10 기능은 지난 6개월가량 영국과 멕시코에서 선공개를 진행했는데, 해당 국가의 회원들이 보다 쉽고 빠르게 자신이 시청하고 싶은 콘텐츠를 발견했다. 그래서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 대부분 국가로 해당 기능을 확대 적용했다”며 이번 업데이트의 취지를 설명했다. 인기 있는 콘텐츠에 끌리는 소비자 심리 특성상 한국 드라마의 높은 순위는 넷플릭스에서 로컬 콘텐츠의 중요성을 보다 키울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국내 OTT 업체는 로컬 콘텐츠가 인기 있는 넷플릭스에 대항할 전략으로 한국 작품 편성에 보다 집중할 수 있고, 넷플릭스는 <킹덤> 이상의 대형 프로젝트를 기획하거나 <미스터 선샤인> <사랑의 불시착>과 같은 경우를 더 만들 것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아이 엠 낫 오케이>.

웨이브에서 볼 수 있는 <NBC>의 <매니페스트>.

승자독식 시장이 아니다

누구도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누구 하나만이 살아남을 거라 비관하는 플레이어는 없다. OTT 시장이 먼저 자리 잡은 북미에서 2019년 가구당 평균 4.5개의 서비스를 구독한다는 통계 수치를 감안했을 때 한국 역시 각자 취향에 맞게 다수의 OTT 서비스를 선택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박태훈 왓챠 대표는 “승자독식이 될 수밖에 없는 IT 시장과 OTT 업계는 다르다”고 말한다. “IT는 우리 동네에 이마트가 없으니 롯데마트에 가면 된다는 식으로 대체할 수 없고 모두가 1등 서비스를 이용하게 된다. 그런데 OTT는 미디어의 특성을 더 많이 갖고 있다. OTT마다 볼 수 있는 콘텐츠가 다르기 때문에 여러 개가 동시에 살아남아서 그중에 각자의 취향 에 맞는 것을 조합해 구독하게 되는 형태가 자리 잡지 않을까.” 김조한 NEW ID 이사는 “웨이브만으로는 ‘반쪽’이라는 느낌이 있다. 지상파와 일부 종편 콘텐츠는 커버하지만 JTBC와 CJ E&M이 빠져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넷플릭스의 <감기>, 왓챠플레이의 <컨테이젼>이 주목받은 것처럼 어떤 콘텐츠가 특정 플랫폼에 있다고 하면 찾아갈 수밖에 없다”며 공생의 가능성을 언급했다. “별개로 유튜브는 계속 잘될 것이다. 모든 콘텐츠를 돈 주고 볼 수는 없으니 말이다.” 광고 수익을 유튜브 시장에게 뺏긴 방송국도 오히려 유튜브에 재편집 영상을 올리거나 디지털 콘텐츠의 플랫폼으로 활용하고 있고, KBS는 한국 지상파 최초로 월정액을 내는 유튜브 멤버십 서비스를 도입했다. <용의 눈물> <토지> <불멸의 이순신> <추노> 등 과거 드라마부터 <태양의 후예> <구르미 그린 달빛> <쌈, 마이웨이> 등 최근 화제작까지 70여편의 풀 VOD를 먼저 제공한다. “웨이브, 넷플릭스 등 신작 위주의 플랫폼과 다른 ‘탑골공원’ 콘텐츠로 틈새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것이 KBS 콘텐츠프로모션부의 설명이다. 여러 플랫폼이 살아남을 수 있다면 방송사 및 제작사는 콘텐츠 성격에 따라 플랫폼을 달리하는 다각화 전략을 쓸 수 있다. 사람들은 취미에 돈을 쓴다. 종종 취미라기에는 많은 돈을 쓴다. 웹툰과 음악, 게임에도 돈을 쓰고 한국 관객은 1년에 4.37회 극장에 간 다(영화진흥위원회, <2019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다만 어디에 어느 정도의 비용을 기꺼이 지불할 의사가 있느냐가 시장을 좌우한다. 한달에 10만원 정도 요금이 통장에서 빠져나가도 수긍할 만큼 재미있는 게 넘쳐난다면 더 많은 플랫폼이 살아남을 수 있겠지만, 유튜브만으로 충분하다면 다 같이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 결국 정답은 콘텐츠에 있다.

왓챠플레이에서 볼 수 있는 <BBC 아메리카>의 <킬링 이브>.

플랫폼 전쟁의 또 다른 격전지, 중국과 인도

중국 시장은 단위부터가 다르다. 유료 회원수가 넷플릭스와 비등한 아이치이, 5억명 이상의 회원을 자랑하는 텐센트 같은 기업이 넷플릭스 진출이 막힌 중국 OTT 시장을 장악한 후 동남아시아 지역 진출도 꾀하고 있다. 이들은 아시아 지역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는 웨이브, 왓챠플레이 등의 한국 OTT 플랫폼이 넘어야 할 거대한 산이다. 박태훈 왓챠 대표는 “중국의 아이치이, 홍콩의 뷰 등 같은 거대 기업과 현지에서 자본으로 경쟁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에서 넷플릭스와 경쟁하는 것과 똑같다. 그런데 우리가 자본 없이도 잘해왔듯 다른 나라에서도 잘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 한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것도 나름의 강점이 될 수 있다. 적어도 아시아에서는 한국 콘텐츠가 꽤 잘 먹히고 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이들이 한국에 진출할 가능성은 없을까? 김조한 NEW ID 이사는 “아이치이나 텐센트 같은 기업도 아시아 시장을 공략할 때 한국 콘텐츠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그들이 한국 진출을 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한국에서 자신들의 콘텐츠를 판매할 수 있는 파트너를 찾는 쪽에 가까울 것”이라고 점쳤다. 인도는 전세계 미디어 업계가 주목하는 격전지다. 중국이 거대 공룡 미디어 기업의 자국 진출을 막으면서 인구수가 두 번째로 많은 인도가 가장 뜨거운 시장이 됐다. 리서치 그룹 미디어 파트너스 아시아는 인도가 2023년까지 180억달러의 가치가 있는 시장이라고 분석한다. 넷플릭스와 디즈니, 아마존이 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사활을 거는 동안 인도의 최대 TV방송국이 설립한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 Zee5는 국내 콘텐츠 공급에 힘쓰고 있다. <이코노믹 타임스>에서 Zee5의 CEO 타룬 카티알은 “글로벌 OTT는 유산도 라이브러리도 없다. Zee5는 인도어로 100개 이상의 오리지널 쇼를 만들어왔고 이는 경쟁사보다 최소 10배 많은 양이다. 우리는 콘텐츠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며 자신감을 표했다. Zee5는 2020년에는 70~80편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고 2021년에는 15편의 영화를 제작할 예정이다.

* 이번 특집에서는 OTT 플랫폼의 현황과 미래를 짚었다. 이어지는 1247호에서는 스튜디오드래곤, 제이콘텐트리, 카카오M 등 거대 제작사의 등장으로 변화 중인 콘텐츠 시장을 진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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