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음악은 사치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FM에서 클래식만 듣는 언니를 우아떠는 속물이라고 은근히 경멸했고, 이어폰 귀하던
시절, 귀벽에 금 가게 팝송 틀어놓는 남동생과 레코드장 내던져가며 싸우기도 했다.
니체니 키에르케고르니 전집 붙들고 앉아서, 속 시커먼 활자가 무슨 말을 그렇게 빽빽 지껄이고 있는지 몰라 끙끙대는 지 자신이 얼마나 우스운지는
돌아볼 겨를도 없었다. 그렇게 지 꾀에 지가 넘어가 까막귀가 된 아줌마가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을 보고 나서는, 박스오피스에서 파는
CD를 샀다. 집에 오는 길에 고물자동차의 고물 플레이어로 그 음악을 들으면서 두번이나 사고를 낼 뻔했다. 극장에서는 눈물이 앞을 가렸는데,
차 속에서는 상념이 눈을 흐렸던 것이다.
낡아빠져서 평소에도 물이 잘 새는 아줌마의 눈물샘을 가장 크게 건드린 건, 노래 부르는 그들의 표정이었다. 갑자기 서구 엘리트의 손에 재발굴되고
재포장되고 대박터져서 그런 게 아니라, 노래 부르는 게 진짜 행복해서 행복해하는 그들의 표정이, 문득 아줌마가 전혀 행복하지 않게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던 것이다. 평소 같으면 닭살 돋았을 미국 귀족들의 기립박수조차, 그들의 행복에 매혹된 나머지 야기된 조건반사적 반응
아니겠냐 싶어 용서해줄 마음이 생겼는데, 화면 속 저 쭈글거리는 얼굴들의 그 큰 행복이 ‘지금, 여기, 아줌마의 삶’이라는 비극과 교차편집되면서,
‘난 그만 울고 말았네’가 된 거였다. 행복하기란 그렇게 간단한데, 좋아하는 일을 하면 되는데, 좋아하는 일을 하는 데 거치적거리는 잡동사니
욕심은 접어버리면 그만인데.
도대체 아줌마의 평생은 무엇에 바쳐지고 있다는 말일까. 지금 아줌마는 무엇이 되려고 하는 걸까. 아줌마는 말년에 지 인생극장의 카네기홀에서
무엇을 연주할 것인가. 글밥 먹고 살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글을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예인들이 자신들의 성대나 악기를 다루듯이 다룰
수 있게 된 것도 아니어서, 저들 나이에 아줌마는 얼마나 쓸쓸할까. 저들은 늙지 않는 목소리와 늙지 않는 끼를 가졌건만, 아줌마는 늙지
않는 글을 엄두나 낼 수 있단 말인가.
영화 보면서, 차라리 음악을 했더라면, 생각했다. 음악과는 악연이야, 스스로 단정해놓고 살았는데도, 지난 세월을 검색해보면, 음악과 연루됐던
기억이 적지 않은 목록으로 떠올라온다. 중고등학교 때 음대를 가겠다며 소질도 없는 피아노 뚱땅거렸고, 지 손가락이 얼마나 둔한가 하는 사실만
배우고 끝났지만, 남들 입시준비에 바쁜 고3 때 기타학원에 다니기도 했었다. 더 깊이 생각해보면, 모친이 자신을 김희선만큼 예쁘게 낳아주지
않은 걸 원망한 적은 없어도, 소풍이나 장기자랑이나 회식 때마다 분위기 깨는 음치로 낳아준 것은 두고두고 원망스러웠다. 그 잘난 대학 가서
그 잘난 공부하느니보다, 소질 없더라도 기타를 계속 둥당거렸다면 지금보다는 행복했을 텐데.
에고, 말 돌릴 때 됐다. 말 돌리자. 근데, 사실은 우는 틈틈이 졸기도 했다. 이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 워낙 입이 싼 아줌마라 또
털어놓게 된다. 왜 졸았느냐를 따져볼 때, 아줌마가 매혹된 것은 영화 속의 그들이었지, 영화 자체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던 거 같다. 영화보다
더한 클라이맥스를 갖춘 이 쿠바 예인들의 인간 다큐를 보면서, 아줌마는 카메라의 조명이 가져다주는 저 갑작스런 생의 반전에 매혹되다가 질리다가를
번갈아 하는, 모호한 심사가 되었던 것이다. 전두환 시절의 <인간시대>에 대해 느꼈던 그런 양가적인 감정 말이다. 저게 도대체 좋은 프로야
나쁜 프로야 싶은 어리둥절함. 거기다가 만약에 라이 쿠더가 빔 벤더스를 꼬셔서 그들을 찾아내고 그들의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았더라면
그들에게 지금의 행복이 없었을 거라는 건, 현실적으로는 맞는 말일지라도, 왠지 부정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갑자기 모든 게 삭막해지고
진부해져버리니 말이다.
카메라가 그대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면 그대는 아무것도 될 수 없다는 요즘 시대의 진리를, 이런 위대한 음악과 이런 위대한 행복 앞에서
6.25마냥 상기하고 싶지는 않았달까. 하긴 라이 쿠더와 빔 벤더스가 아니면 우물 안 아줌마가 어느 천년에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음악을
감상할 수 있었을까마는, 치유불능의 시대정신 부적응증에 기반한 이런 비틀린 감상을 말하는 것 또한 아줌마 맘이지 뭐. (그런데 아직 이
영화 안 보신 분, 극장으로 재빨리 달려간다, 실시!)
최보은 / 아줌마 choib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