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은 잊히지 않는다. 다만 재해석될 뿐이다. 을유문화사 세계문학전집이 100권 출간을 기념해 5종의 책을 리커버해 선보였다. 워크룸의 디자인으로 갈아입은 표지가, 언제나 새롭게, 동시대성으로 읽히는 5종의 클래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5권의 책은, 을유세계문학전집에서만 볼 수 있는 오에 겐자부로의 <개인적인 체험>, 레이날도 아레나스의 <현란한 세상>, D. H. 로런스의 <사랑에 빠진 여인들>과, 오랫동안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안톤 체호프의 <체호프 희곡선>이다.
세계문학전집마다 개성이 있지만, 이번에 리커버로 선보인 책 중에서 오에 겐자부로의 <개인적인 체험>은 고뇌하면서도 책을 놓지 못하게 하는 절창. 오에 겐자부로의 큰아들 히카리가 뇌 이상으로 지적장애를 안고 태어났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 탓에 버드가 결혼한 나이와 아이를 갖게 된 나이, 갓 태어난 아들의 뇌 이상 등 이 소설에는 오에를 연상시키는 대목들이 꽤 있다. 오에는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첫아이가 머리에 기형을 갖고 태어난 뒤“얼마간의 교양이나 인간관계도, 그때까지 썼던 소설도 무엇 하나 의지할 수 없다고 느꼈다. 거기서부터 회복되어가는 이른바 작법 요법처럼 나는 <개인적인 체험>을 썼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D. H. 로런스의 <사랑에 빠진 여인들>은 <채털리 부인의 사랑>으로 잘 알려진 로런스가 여성의 욕망과 불안을 어슐라와 구드룬 자매를 통해 보여주는 소설이다. 페미니즘을 처음으로 경험하는 세대의 여성들에게, 여전한 현실은 어떤 식의 출구를 찾게 만드는지 생각하게 한다. <현란한 세상>은 쿠바에서 반체제적 글쓰기와 동성애로 쫓기는 삶을 살다 미국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레이날도 아레나스의 삶을 반영한 듯한 한 수사의 이야기. 멕시코에서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를 거쳐 미 대륙으로 이어지는 세르반도 테레사 데 미에르 수사의 여정은 실망을 거듭하는 삶을 지속하는 법에 대한 우화다.
거기와 여기
모스크바에서 레스토랑의 드넓은 홀 안에 앉아 있으면 말이야… 내가 아는 사람도 없고 나를 알아보는 사람도 없어. 그러면서도 낯선 곳에 있다는 느낌이 들질 않거든. 그런데 여기서는 모두가 아는 사람이고 모두가 나를 알아보지. 그런데도 낯설어… 낯설고 외로워.(<체호프 희곡선>, 24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