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며 지역이 봉쇄되는 일이 더이상 낯설지 않은 지금,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는 고전소설 목록에서 내려와 지금 이 시대를 말하는 소설이 된다. 194X년 알제리 해안에 있는 작은 도시 오랑에 중세를 뒤흔든 페스트가 돌아온다. 죽은 쥐 시체가 길바닥에 널리더니 이내 사람들이 피고름을 쏟아내고 구토와 고열에 시달리다 죽어간다.
“사실 재앙은 모두가 다 겪는 것인데도, 그것이 자기에게 닥치면 여간해서는 믿지 못하게 된다.” <페스트>에는 전염병으로 인해 일상 자체가 제자리걸음만 반복하는 세상의 풍경이 숨 막히도록 진득하게 펼쳐진다. 도시 전체가 격리되자 시민들은 마치 유배 생활을 하는 양 현재를 잃고 과거만을 반복적으로 회상하며 고독을 느낀다. 호텔은 텅텅 비고, 필름을 외부에서 받지 못하는 영화관은 같은 영화만 계속 틀어준다. 사람들은 출근을 할 때면 서로 등을 돌리고, 식당에 가면 식기를 꼼꼼히 소독하며, 여름이 와도 바다로 들어가지 않고, 감정이 메말라 마음이 텅 빈다. 미쳐서 방화를 저지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암거래를 통해 한몫 잡는 이들도 있다. 그리고 인간사에 중요한 의식, 종교와 장례. 신도로 꽉 찬 성당에서 신부는 믿음이 부족하다고 호되게 나무라지만 점차 미신이 유행하고 인쇄업자들은 노스트라다무스 예언서를 찍어낸다. 장례 인부들은 페스트에 자주 감염되지만, 실업자들이 너무 많아 인부를 구하기는 어렵지 않았다는 대목은 쉽게 잊지 못할 것 같다. 페스트는 질병인 동시에 비유다. 인간이 이 세계에서 실존하는 이상 겪을 수밖에 없는 부조리. 부조리를 이기기 위해서는 직접 몸을 움직여 제 의무를 다하는 “매일의 노동”이 필요하다. 언제고 재난 문자를 받으며 생계 걱정과 가족 걱정을 하는 우리에겐 다시금 비유가 현실이 된다. 직접 보건대를 조직해서 환자를 진단하고 격리하는 의사 리외와 동료들의 행적을 따라가며, 이 순간에도 코로나19 환자 방역과 치료에 애쓰는 현실의 수많은 의료진과 공무원들을 떠올린다.
그 병의 연대기
“마치 우리의 집들이 세워져 있는 바로 그 땅이 쌓여 있던 분비물을 배출하고, 지금까지 안에서 곪고 있던 종기와 피고름이 표면으로 올라오는 것 같았다.”(2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