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유명한 여성으로 죽었다 자신의 상처를/ 부인하면서/ 자신의 상처가 자신의 힘과 똑같은 근원으로부터 왔음을/ 부인하면서.” 에이드리언 리치가 1974년 발표한 시 <힘>의 마지막 행이다. 이 시는 마리 퀴리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또한 여성의 삶이 처한 문제를 뜻하는 것으로 읽힌다. 에이드리언 리치의 시집 <공통 언어를 향한 꿈>은 1974년부터 1977년까지 발표된 시를 묶은 것으로, 여성이라는 “생존자들”을 호명하는 작업이다. “나는 살면서 삶 이상을 원하며/ 굶주리는 다른 사람들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나의 의지, 나의 사랑 속으로,/ 정신의 폭력주의자들의 십자 포화를 고스란히 받고 있는/ 딸과 자매들, 연인들의 뇌 속으로, 뚫고 들어온 헐벗음에/ 이름 지어 주고 싶다.”(<굶주림(오드리 로드에게)>) 아주 오랫동안, 에이드리언 리치의 시는 페미니즘 그 자체로 이야기되고 있다. <공통 언어를 향한 꿈>은 특정 작품을 언급하기보다 시집 전체가 여성의 의식을 다룬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좋겠다. 리즈 위더스푼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진 셰릴 스트레이드의 논픽션 <와일드>는 26살에 어머니의 죽음과 배우자의 배신, 마약중독 등으로 점철되었던 삶의 고리를 끊기 위해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이라고 불리는 미국 서부를 관통하는 4285km의 숲길을 걸어 통과한 내용을 담았는데, 스트레이드가 그 여행을 떠나며 챙긴 책 중 하나가 바로 <공통 언어를 향한 꿈>이었다.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제1권이 내 성경책이라면 <공통 언어를 향한 꿈>은 사실상 나의 종교나 마찬가지였다.” 감히 그렇게 말할 만한 책이다. 세상에서 추앙받는 수많은 남성들의 시선과 목소리로 쓰인 책들이 있고, 그 선반들 뒤에는 쓰이지 않은 수 세기 동안의 책들이 있음을 당신이 알고 있다면 더더욱. “그리고 아이를 낳다 죽어 간 예술가들의 혼령들을-/ -수백 년간 움켜쥐었던 그들의 주먹을,/ 화형대에서 까맣게 탄 똑똑한 여자들을,/ 이 선반들 뒤에 쌓인 쓰이지 않은 수 세기 동안의 책들을./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들여다봐야 해/ 우리의 삶을 향해, 남자들이 말하려 하지 않는,/ 말할 수 없는 여자들의 부재를-문명이라 불리는/ 아직 발굴되지 않은 이 구명, 이 번역 행위, 이 반쪽 세상.”(2부 ‘스물한 편의 사랑 시’ 중에서 <책으로 가득한 이 아파트는>) 리치의 언어는 칼과 같고, 그것이 가장 먼저 찌르는 사람은 독자로 존재하는 여성이다. 그렇게 죽고 나면 다시 태어날 수 있으리니. 다시 태어나면 세상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