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에밀 아돌리노 / 출연 패트릭 스웨이지, 제니퍼 그레이 / 제작연도 1987년
동화 같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범죄영화, 코미디, 사극,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관객으로서 ‘왕자와 공주는 행복하게 살았대요’ 같은 해피엔딩을 좋아한다. 주인공이 온갖 어려움을 극복한 뒤 마지막에 행복해지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내 인생의 영화를 꼽아달라니 기억을 대학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해서 난감하다. 예전에는 모든 게 명동에 몰려 있었다.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백화점들이 그곳에 있었다. 지금 롯데백화점 영플라자 자리에 있던 미도파백화점을 기억하는 <씨네21> 독자들이 있을까. 앙드레 김 숍을 포함해 유명한 뷰티숍들 모두 명동에 있었다. 당시 명동은 젊음이 넘쳤고 화려했다. 그곳에서 영화를 보고, 거리를 걸으며 사람을 구경하고, 군것질도 했었다. 명동성당 옆에 있었던 중앙극장, 유네스코 회관 안에 있던 코리아극장 등 극장들도 많았다. 모바일로 간단하게 예매한 뒤 시간 맞춰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 지금과 달리 그때는 영화 한편을 관람하기 위해 친구와 약속을 잡고 영화관을 찾아 매표소에서 티켓을 사는 게 특별한 일이었다. ‘겨우 이런 일로 행복합니다’라는 요즘 광고 카피처럼 그때는 영화를 보러 가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었다.
대학 시절이었나. 코리아극장에서 친구와 함께 설레는 마음으로 본 <더티 댄싱>이 떠오른다. ‘더티댄싱’이라니 제목부터 묘하다. 어린 시절 우리집 교육 환경에서 ‘더티’는 곧 나쁜 것이고, ‘댄스’도 절로 부끄러워지는 단어였다. 더러운 춤? 당시 내게 아주 파격적인 제목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런 편견도 잠시, 영화를 보는 내내 이야기는 눈과 귀를 즐겁게,행복하게, 흥분되게 만들었다. 심장은 계속 짜릿했고, 지금까지도 그때 그 기억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다. 잘생긴 댄스 교사 자니 캐슬을 연기한 패트릭 스웨이지는 섹시했고, ‘베이비’라는 애칭을 가진 17살 프란시스 역을 맡은 제니퍼 그레이는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특히 프란시스가 자니 위로 날아오르는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내 심장도 프란시스와 함께 날아오르는 것만 같았다. O.S.T는 또 어찌나 좋은지. 영화음악이 좋으면 영화를 두배 이상 좋아하게 되는데, <더티 댄싱>이 딱 그랬다.
춤에 대한 갈망이 큰 건 어쩌면 그때 그 기억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댄스스포츠도, 방송댄스도 배워봤지만… 더이상 긴 얘긴 하지 않겠다. 그럼에도 요즘도 춤을 추고 싶다. 자꾸만 움츠러드는 몸과 마음을 춤을 추면서 떨치고 싶다. 긴 말 하지 않고, 남이 하는 말을 듣고 싶지도 않다. 그저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추고 싶다. 가끔은 그렇게 살고 싶다. 빠른시일 안에 <더티 댄싱> 같은 나의 심장을 쫄깃하게 해줄 영화를 봐야겠다. <더티 댄싱>이 그렇듯이 오래도록 그 영화를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김성령 배우.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2013), <표적>(2014), <역린>(2014), <독전>(2017) 등과 드라마 <추적자 THE CHASER> <상속자들> 등에 출연했고, 영화 <콜> 개봉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