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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천진 시절>
이다혜 사진 백종헌 2020-02-18

금희 지음 / 창비 펴냄

어떤 공간으로부터, 시간으로부터 떠나온다는 것은 많은 경우 그곳에 속한 사람들로부터 멀어진다는 뜻이다. 그렇게 장소와 주변의 사람이 바뀌면 ‘나’라는 존재도 바뀐다. 나는 나로서 살아가니까, 가끔 스스로의 변화를 잘 모른다. 그러다 그 장소, 그 사람을 만나면서 시간을 되돌리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금희의 <천진 시절>은 그런 소설이다. 주인공 이름은 상아다. 상아라는 이름은 중국 신화에서 온 이름이다. 상아는 명사수 후예의 아내로, 혼자 불사약을 먹고 남편을 떠나 영생을 얻었다. <천진 시절> 속 상아는 운명적 사랑의 주인공이 아니고, 불사약 같은 것은 얻지도 못한다. 상아는 그저 집에서, 고향에서 벗어날 기회를 잡기 위해 자신에게 호감을 가진, 어려서부터 알고 지낸 무군을 따라나선다. 부모님은 상아를 그냥 남자와 떠나게 두지 못해 약혼을 시키고, 약혼자와 함께 타지인 천진에 도착하니 일자리를 소개해준 무군의 누나는 둘을 위해 침대 하나짜리 방을 얻어놓았다. 말하자면 그것이 상아가 무군과 연인이라 불리는 관계가 된 방식이다.

<천진 시절>의 과거 무대가 되는 톈진을 포함해, 현재 이야기가 진행되는 상하이 등 이야기는 중국에서 진행된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낯설게 느껴지는 삶,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는데 작가 금화가 중국 길림성 출신이라고 한다. 한국으로 치면 과거에 속한 이야기를 만나는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관계와 사랑에 대해, 그리고 젊은 여성이 고향을 떠난다는 것에 대해 <천진 시절>이 그리는 방식은 담담하면서도 절절한 데가 있다. 관계가 늘 쌍방이라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행운을 얻기는 어렵고, 나를 아끼는 사람이라고 해서 내 안에서 애정이 솟아나지도, 애정이 있었다 해서 그것을 지속시키기도 쉽지만은 않다. 애초에 관계의 시작이 애정이 아니었다면 말할 것도 없겠지. 돌이키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저 그리워만 하고 싶어서 더듬는 과거의 시간이 있다. 아마도 이것이 애상(哀傷).

그 때 그 사람

한번도 사랑을 해본 적이 없었지만, 나는 이제 안다. 무군, 그만큼 사랑을 잘하는 사람은 사실 흔치 않다는 것을.(1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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