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유세계문학전집 100번째 책은 <전쟁과 평화>다. 세계문학전집을 펴내는 출판사마다의 개성 혹은 주관이라면 첫 작품, (다른 출판사에 없는) 작품, 그리고 특별한 번호가 매겨지는 작품들에 있으리라. 토마스 만의 <마의 산>으로 1, 2권을 시작한 을유문화사 시리즈에서 돋보이는 선택이라면 로베르토 볼라뇨의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 W. G. 제발트의 <아우스터리츠>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100번째 책은 ‘고전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답하듯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세권이다. 아득할 정도로 묵직한(상권 860쪽, 중권 864쪽, 하권 852쪽) 세권의 책은 새해 계획으로 ‘고전소설읽기’에 도전한 이들을 위한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책을 펴자마자, (500쪽을 넘기는) 러시아 장편소설이라면 꽤 유용하게 쓰이는 ‘등장인물’ 소개가 두 페이지에 걸쳐 등장한다. 그리고 바실리 공작을 향한 말로 소설이 시작되니, “공작, 제노바와 루카는 부오나파르트 가문의 소유지예요”.
유학을 중단하고 러시아로 돌아온 피에르는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는다. 프랑스와의 전쟁 중 전투에서 참패한 부대 소속인 안드레이는 고향으로 돌아와 나타샤를 만난다. 나폴레옹군은 모스크바를 점령하는 데는 성공하지만 혹독한 겨울을 마주한다. <전쟁과 평화>는 이런 이야기는 아니다. 이런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기실 톨스토이가 알았던 ‘세계’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 속 시간의 흐름은 역사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과정에 다름 아니며, 그러니 소설이 짧기도 어려운 노릇이다. 헨리 제임스는 <전쟁과 평화>에 대해 “톨스토이는 호수만큼 넓은 반사체이며, 인간의 모든 삶이라는 위대한 주제를 다룬 괴물이다”라고 말한 적 있는데, <전쟁과 평화>가 바로 그런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기나긴 에필로그는 반드시 읽어볼 것. “역사라는 바다의 표면은 움직이지 않는 듯 보였으나 인류는 시간이 움직이는 것처럼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마리야와 나타샤
두 사람은 따로 있을 때보다 함께 있을 때 더더욱 일치된 감정을 느꼈다. 그들 사이에는 우정보다 더 강한 감정이 확립되었다. 그것은 서로가 존재할 때에만 삶이 가능하다는 특별한 감정이었다.(3권, 51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