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민정은 <너의 거기는 작고 나의 여기는 커서 우리들은 헤어지는 중입니다>라는 알쏭달쏭 묘한 웃음을 자아내는 제목의 네 번째 시집으로 돌아왔다. 시마다 넘치는 현란한 말장난이 압도적이다. 삽 사는 얘기는 삽질로 넘어가고 엄살은 몸살과 나란히, 미국에서 온 시인 제이크가 감삼역은 감을 산다는 뜻이냐 묻자 이어지는 말은 달 감 단 감. 마는 “잘린 마 아니고 흰색 깐 마 아니고 안 잘린 마 맞고 흙색 마 맞는 다섯개의 장마”가 되니 그야말로 이런 시를 “마, 들어는 봤나 마”라고 묻는 것 같다.
기쁨 혹은 쓸쓸함과 고단함이 깃든 일상이 언어유희를 통해 혼잣말하듯, 대화하듯 술술 풀린다. 동료들이 나눠준 감자와 양파는 너무 반갑고 바지락 까서 파는 단골 할머니 가게가 문을 닫으니 줄자가 돌돌 풀리듯 과거의 진득한 상념들이 술술 풀려나 “삶에 더 삶아져봐야” 하나 생각한다. “유치원 아이”만 한 강아지를 간절히 찾는 전단지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나를 못 쓰게 하는 남의 이야기’가 되고, 대 이을 아들이 없으니 입양을 하라고 권한 종친에 대한 분노가 몰아쳐 숨가쁜 리듬의 긴 시가 되기도 한다.
읽다보면 최근 몇년 동안 작고한 시인들의 이름이 눈에 밟히지 않을 수 없다. 고 허수경 시인을 언니라고 부르며 슬픔과 술에 취해 휘청거리는 시가 있다. 고 황현산 평론가를 기억하는 독자라면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그가 동치미와 아욱국을 쳐다만 보다 “다… 먹었다…”는 말을 남겼다는 시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 같다. 시마다 ‘곡두’라고 화두가 붙어 있는데, 곡두란 ‘환영’이나 ‘허상’과 같은 뜻이거나 꼭두각시와 통하는 단어. 이미 세상에 없는 무언가를 붙잡거나 애써 떠나보내는 간절함이 떠오른다. 이미 다가온 2020년이란 시간을 채 맞이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사람을 생각하며 “사는 일의 사나움이여 사는 일의 사사로움이여” 같은 구절을 중얼거려본다.
나의 마음
다 만나려고 이별하고 또 이별하려고 만나는 것을 끝끝내 알아버린 나의 마음. 이 마음의 쓰기는 끝끝내 말로는 끝이 안 나서 있는 연필두고 자꾸만 새 연필 사러 가게 만드는 나의 마음.(3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