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이하며 갖고 싶은 마음. 단단하면서도 둔감하지 않은 마음. 간호사 이라윤의 <무너지지 말고 무뎌지지도 말고>는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는 경험을 담은 에세이다. 중환자실은 사경을 헤매거나 인공호흡기를 달고 진정제를 투여한 사람, 알코올중독으로 환각에 시달리는 사람 등 의식이 명료하지 못한 환자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위독한 환자들의 바이탈 사인을 확인해서 승압제며 강심제 같은 약을 쓰고 피검사를 하고 대변 기저귀를 갈아주는 한편 이들이 침대를 뛰쳐나가거나 폭력을 휘두르지 않나 주의하며 말상대가 되어주고 식사를 챙겨주니 근무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간다. 마음 급한 보호자들이 퍼붓는 질문세례를 처리하면서 혹여 민원이 들어오지는 않을까도 신경 써야한다. 그러다 위급한 상황, 예를 들어 환자에게 심정지가 닥치면 동료 간호사와 함께 다급히 흉부 압박에 기관 내삽관 준비를 하고 코드블루 방송을 내보내며 주치의에게 전화로 보고를 하는데, 이 처치를 거의 1분 내에 끝내야 한다. 쏟아지는 업무에 화장실 갈 시간도 없는데 간호사 집단 특유의 괴롭힘 문화 ‘태움’까지, 순간순간이 서릿발처럼 매섭다.
가장 견디기 힘든 일은 매일같이 발아프게 뛰어다니면서도 죽음을 지속적으로 지켜봐야 한다는 점이리라. 음독자살을 시도해 입원한 할머니는 처음 꺼내는 말이 “나 좀 죽여줘”이고 학대당해 실려온 아기는 피를 쏟아내며 덧없이 세상을 떠난다. 감정이 무뎌지기기도 쉽고 자기 자신을 보듬기도 쉽지 않은 세계다. 저자는 현장에서 무시당하기 쉬운 의료인의 인권을 얘기하면서도 환자를 돌보는 자신에게 모자란 구석은 없는지 끊임없이 살핀다. 공사장에서 추락해 의식을 잃은 환자 곁에, 죽으려 했다가 겨우 의식을 되찾자 살아보겠다고 열심히 밥을 먹는 환자가 있는, 삶과 죽음이 아찔하게 교차하는 세계에서 환자에게 공감하는 간호사로서 버티고 싶으니까. 책을 읽다보면 표면이 매끄럽고 둥글지만 좀처럼 깨지지 않는 돌이 떠오른다. 그 돌 같은 마음으로 순간을 살아내는 것.
단단한 하루
죽어가는 사람에게 몇 시간이라도, 아니 보호자가 마음의 준비를 하고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는 단 몇분이라도 벌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다.(2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