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사나이가 크리스마스를 위한 음악을 작곡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은 아직 여름이 한창일 때였다. 양 사나이도, 일을 맡기러 온 사내도 여름용 양털 옷 속에서 땀을 흠뻑 흘렸다. 한더위에 양 사나이로 살아가기란 매우 괴로운 노릇이다.” 에어컨을 살 형편도 되지 않는 양 사나이. 그에게 의뢰가 하나 들어온다. 크리스마스를 위해 성(聖) 양 어르신님을 추모하는 음악을 작곡해달라고. 심지어 양 어르신님이 돌아가신 지 2500년이 되는 해라는 것이다. 크리스마스까지는 넉달 반이 남았다. 양 사나이는 자신만만하게 의뢰에 응했다. 가난한 작곡가 양 사나이는 낮에 근처 도넛 가게에서 일하느라 바빴다. 밤에 피아노를 두드려보려고 하면 일층에 사는 하숙집 주인아주머니가 쫓아와 문을 콩콩콩 두들겼다. 그리고 어느덧 크리스마스가 나흘 뒤로 다가왔다. 약속한 음악은 한 소절도 만들지 못했다. 양 사나이를 도와주겠다고 나선 사람은 양 박사였다. 그는 양 사나이가 작곡을 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고 있다고 한다. “저주에 걸렸어.”
<양 사나이의 크리스마스>는 이우일의 그림이 함께 실렸다. 때로는 옆으로 날개처럼 펼쳐지고, 때로는 아래로 다리처럼 뻗는 독특한 페이지 구성이, 그림을 돋보이게 한다. ‘양 사나이’, ‘성 양 어르신’, ‘양 박사’가 무슨 뜻인지, 어떤 존재인지 궁금하다면 이우일의 그림을 볼 것. 약간은 참고가 될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양 사나이는 저주를 풀기 위해 나선다. 여기부터는 양 사나이의 모험담이 이어진다.
원하는 일이 있다. 잘되지 않는다. 저주가 그 원인임을 알게 된다. 이 단계에서 포기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고, 저주를 풀기 위해 나서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아, 이 경우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양 사나이가 되겠다. 타자를 믿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기꺼이 모험을 감수하는 존재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약간은, 평화롭다. 지나버린 크리스마스가 얼른 다시 돌아왔으면 싶을 정도로.
금기와 저주의 상관관계
“알 게 뭐야. 어쨌거나 무려 이천오백년 전 일인데 내가 알 리 없잖아. 하여튼 그렇게 정해져 있다니까. 그게 이른바 금기라는 걸세. 알고 그랬건 모르고 그랬건 금기를 깨면 저주에 걸리지. 저주에 걸리면 양 사나이는 이미 양 사나이가 아닌 거야.”(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