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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동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질문하는 영화’를 위한 플랫폼"
임수연 사진 최성열 2020-03-12

이준동 나우필름·파인하우스필름 대표가 전주국제영화제(이하 전주영화제)의 새 집행위원장으로 위촉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영화계에서는 이상할 게 없다는 반응과 의아하다는 반응이 함께 나왔다. 영화진흥위원회 부위원장, 영화나눔협동조합 이사장 등을 거쳤던 그가 영화제에서 공직을 맡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보이나, 지금 시점에서 전주영화제의 수장이 되는 건 너무 많은 리스크를 짊어져야 하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김영진 전 수석프로그래머, 이상용·장병원 전 프로그래머가 7년간 몸담았던 전주영화제를 떠나면서 영화제의 자율성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진 바 있고, 새로 부임한 집행위원장은 이들의 빈자리를 메울 새 인력을 찾는 것은 물론 명확한 비전까지 보여줘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려운 결정을 내린 이준동 전주영화제 신임 집행위원장을 만나 왜 이 자리를 수락했는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영화 제작자로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도 여러 편인 그에게, 이창동 감독의 신작을 비롯한 차기작에 대해서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상생을 위해 늘 목소리를 내는 선배 영화인이자 평단에서 가장 사랑하는 제작자, 더불어 영화제의 신임 집행위원장이 된 그와의 인터뷰는 자연스레 다양한 이슈를 관통했다.

-전주영화제 회식 자리에서 어떤 언론과도 인터뷰하지 않겠다고 했다고 들었다. 마음이 바뀐 이유는.

=정확히는 가급적 안 하겠다고 한 거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건 내가 아니지 않나. 집행위원장은 살림꾼이고, 영화제 내용을 만들어가는 프로그래머쪽에 눈길이 더 가겠지. 나한테 궁금할 게 뭐가 있다고. (웃음)

-제작자로서 지금 기획·개발 중인 작품이 많은 걸로 아는데, 왜 집행위원장 자리를 수락했나. 세 프로그래머가 나가는 과정이 원만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담도 됐을 텐데.

=부담 이전에 의외였다. 나는 영화제로부터 전화를 받기 전까지 집행위원장 자리를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키드도 시네필도 아니고, 영화에 박식하거나 독특한 취향이 있는 사람도 아니다. 난 좋아하는 영화만 좋아하고 영화 제작에 필요한 한정된 것에만 관심이 있다. 전주영화제로서는 김영진 전 수석 프로그래머가 집행위원장이 되는 게 가장 좋은 카드였는데 그걸 놓쳤다. 그가 집행위원장이 됐다면 이충직 전 집행위원장과 김영진 전 수석 프로그래머가 만들어온 영화제의 정체성이 가속을 밟아 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브레이크가 밟힌 거다. 엔진 에너지에 굉장한 손실이다. 어찌됐건 전주영화제는 한국 사회에 굉장히 중요한 공적 자산이니, 누군가는 그 손실을 최소화하고 다시 영화제를 잘 운영해야 한다. 나는 일종의 공익근무를 하게 된 거다. 비상근이기 때문에 원래 하던 영화 제작과 병행도 가능하다. 아니면 할 수가 없다.

-형인 이창동 감독은 뭐라고 하던가.

=원래는 이런 공적 업무를 맡는 것을 말리는 쪽이었다. 이번에는 구체적인 상황을 전해 듣더니 안말리더라. 구체적인 이유를 말하지 않았지만, 비상근이어서 그런 것 같다. 자기 영화 제작하는 데 큰 문제가 없으니까. (웃음)

-어떤 점이 집행위원장 일을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될거라고 봤나.

=알다시피 전주영화제는 독특한 정체성을 가지고 잘 운영되어왔다. 그들이 추구하는 정체성이 대중적이지도 않고,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보다 예산이 훨씬 적은데도 불구하고 아주 잘해왔다. 내가 대단한 비전이 있어서 집행위원장을 맡은 게 아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지금까지 전주영화제를 이끌었던 사람들에 대한 모독일 수 있다. 프로그래머들이 7년, 이충직 집행위원장이 4년 영화제에 있으면서 잘 이끌어온 것과의 격차를 줄이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영화제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관객과의 접점을 어떻게 넓혀갈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어찌됐건 나는 상업영화 제작을 해 온 사람이니까 관객과의 접점을 찾기 위해 애쓴 경험이 있다.

-전주영화제는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는 실험영화를 소개해왔다. 최근에는 매체 확장의 경향에 따라 팔복예술공장으로 장소를 확대해 비(非)극장 설치 프로그램을 진행한 바 있다.

=그런 정체성을 100% 지켜줘야 한다. 지금 영화계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 디즈니가 만드는 소위 게임처럼 체험하는 영화가 있고, 넷플릭스 등 OTT 플랫폼에서 독립영화가 해온 영역을 가져갔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 극장용 영화가 설 자리는 애매해졌다. 멀티플렉스 상영관은 대부분 디즈니 영화가 차지하고, 다른 영화들끼리 남은 좌석을 나눠 가진다. 그럼 ‘질문하는 영화’는 어디에서 볼 것인가, 그런 지점에서 영화제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난 20년간 한국영화는 영화제의 덕을 많이봤다. 봉준호, 박찬욱, 이창동, 김기덕, 홍상수 모두 세계영화제에서 주목받고 성장했다. 의미 있는 감독들이 전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곳은 영화제밖에 없다.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감독들에게 전주영화제가 좋은 플랫폼이 됐으면 좋겠다.

-전주영화제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과 관객과의 접점을 넓히는 것이 서로 상충할 수도 있지 않나.

=그럴 수 있지만, 사실 모든 건 결국 상충된다. 굳이 따지자면 서로 부딪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접점을 찾아낼 수는 있을 거라고 본다. 전주영화제만 해도 영화제의 정체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관객이 영화제를 찾고, 조금씩 더 좋아하게 되고 지지하게 되는 과정이 점차 확산됐다. 2019년 젊은 영화제 관객이 많이 찾았던 팔복예술공장에서도 뭔가 해볼 여지가 많다.

-세 프로그래머가 나가게 된 주요 원인이 이사회 내 전주 유지들과의 갈등이었다는 말이 있던데.

=그건 아니다. 다른 영화제처럼 정치적인 문제가 있던 게 아니다. 전주영화제는 부산이나 부천과 달리 사단법인이 아닌 재단법인이기 때문에 모든 결정을 이사회에서 한다. 그중 몇명이 김영진 전 수석 프로그래머는 집행위원장보다는 수석 프로그래머의 역할이 더 맞다고 본 건데, 영화계에서는 동의하지 않을 내용이다. 다른 누군가를 밀기위해 지역 유지들이 그를 밀어낸 것이 아니다. 나는 지역에서 열리는 국제행사에 대해 현지인들이 느끼는 불편한 심경을 기본적으로 받아들인다. 서울에서 온 누군가가 전주에서 열리는 행사를 죄지우지하는 방식이 불편할 수 있다. 그래서 소통이 중요하다. 생각이 다 같을 수 없으니 잘 설명하고 토론이 필요하다면 하면 된다. 지금 이사회가 영화제를 운영하는 데 방해가 될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장기적으로는 전주영화제가 전주시 발전과 전주 문화예술에 기여하는 방향성도 분명히 가져가야 한다. 시간이 필요하다. 영화는 서울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고, 부산으로 여러 영화 기구를 내려보냈지만 아직 갈 길이 먼 것처럼.

-부산영화제 사태 당시 영화제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앞장서서 직접 목소리를 낸 사람 중 하나다. 집행위원장으로서 전주영화제의 자율성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나.

=전주영화제에서 세 프로그래머가 나간 것은 부산영화제의 <다이빙벨> 사태와 같은 정치적인 공격을 받아서가 아니다. 본인들도 분명히 그렇게 얘기했다. 조직위원장인 김승수 전주시장이나 다른 이사들도 그렇게 간섭할 생각은 전혀 없다. 시장이 조직위원장을 하는 것은 선도 악도 아니라고 본다. 시장이 조직위원장으로 있기 때문에 영화제에 더 힘을 실을 수 있는 순기능도 있을 수 있다. 물론 영화제에 정치적 압력을 가하는 순간 역기능이 될 수 있지만 지금 영화제의 독립성을 위협할만큼 어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김승수 전주시장은 영화제 지지 의사가 강하다. 나에게 팔복예술공장도 반드시 가달라고 전했고, 주변 폐공장을 좀더 사들여 팔복예술공단을 만들고 싶다는 말도 했다. 조직위원장이 그런 역할을 해주면 우리는 영화에만 집중하면 된다.

-영화 전문가가 아닌 시장이 조직위원장을 맡는 데 대한 우려의 시선도 있다.

=부산영화제는 한나라당의 문정수 시장이 있을 당시 시작됐다. 서병수 시장 이전까지 한나라당 출신들이 부산시장을 지냈지만, <다이빙벨> 같은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누군가 불순한 개입을 하려고 할 때 문제가 생기는 거지 그전에는 선도 악도 아니라고 본다. 문제가 발생했던 부산영화제나 시장이 직접 나서서 체제를 바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민간에서 조직위원장이 나오게 됐지만, 전주는 아직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니 조직위원장을 누가 맡느냐를 기준으로 영화제의 독립성을 판단할 수는 없다.

-전주가 관광도시로 부상하며 지역 상인들과의 소통도 중요한 이슈가 됐다.

=상인회장이 조직위원회에 들어와 있다. 의사소통 채널은 열려 있다. 영화제가 잘되고 지역 시민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방식은 무엇일까 고민 중이다. 전주 시민 중에는 영화제가 열린다는 건 알아도 그 안에서 어떤 영화를 상영하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골목이나 공터 벽에 영화를 상영하는 이벤트를 생각 중이다. 직접 표를 끊고 극장에서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를 보는 건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어도, 야외에서 상영하는 영화는 좀더 편하게 접근할 수 있다. 그렇게 전주시의 특성도 살리고 시민들과의 접점도 만들어내는 거다. 의자를 갖다놓거나 화단 턱을 이용해 관객과의 대화(GV)도 할 수 있다.

-최근에 새 프로그래머들 임용 소식이 알려졌다. 어떤 기준으로 뽑았나.

=영화제의 정체성에 동의하고 이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프로그래머에 지원한 분들 중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게 큰 힘이 됐다. 아직 한국영화계가 전주영화제를 기대한다고 느꼈으니. 전진수 프로그래머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프로그래밍을 14년 동안 이끌어온 경험이 우리에게 필요했다. 문석 프로그래머는 <씨네21> 취재기자부터 편집장, 기획위원을 모두 거치고 영화수입사 ‘씨네룩스’와 MCP(Master Content Provider) 사업이었던 ‘씨네21i’에서도 일했다. 디지털 판권에 이르기까지 영화제 업무 전문을 다 경험한 거다.

-직접 제작한 <버닝>(2018), <생일>(2018)이 평단의 호평은 받았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제작자로서 고민이 많아졌을 것 같다. 그리고 그 고민이 영화제가 관객 저변을 넓히는 것과도 연결되지 않겠나.

=내 영화가 전주영화제와 직접적인 접점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이들도 질문하는 영화이긴하다. 특히 이창동 감독은 매 영화에서 질문을 던진다.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질문부터 ‘영화를 왜 만드는가’라는 태도에 대한 질문까지. <버닝>은 영화와 서사, 진실 그리고 장르까지 질문을 던진 작품이었는데 국내에서는 조금 다르게 받아들인 것 같다. 일종의 사회 담론을 담은 작품으로 이해하더라. 그래서 해외 평단에서는 <버닝>이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상대적으로 한국에서는 의아해하는 반응을 보였다. <생일>은 상업적 플롯 구조를 갖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관객이 들지 않았다. 영화 내적으로는 관객이 어려워하는 지점이 있었을 수 있고, 외적으로는 극단적 비수기에 개봉한 영향이 컸다. 16일 동안 박스오피스 1위를 했는데, 하루에 관객이 3만명 들더라. 세월호 사건을 극장에서 마주할 수 없을 것 같다고 겁이 난다고 걱정하던 사람들이 입소문을 듣고 극장을 찾으려 할 때쯤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개봉하면서 모든 상영관을 가져가버렸다. 이런 고민이 영화제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관객과 소통하고자 애쓴 경험을 바탕으로 노력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제작자로서 준비 중인 프로젝트가 있다고 들었는데.

=당연히 있지만, 말할 수는 없다. 아직은 안된다.

-얼마 전 <생일>의 이종언 감독을 만났는데, 언젠가 대표님과 작품을 하겠지만 차기작을 함께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

=이종언 감독은 언젠가 같이 작품을 할 거다. 그리고 우리가 이창동, 이종언 감독 말고 사람이 없는게 아니다. (웃음) 내가 관심 있는 건 자기 잘못이 아닌데 곤경에 빠진 인물들의 이야기다. 당연히 이창동 감독의 차기작도 준비하고 있다.

-어디까지 진행됐나.

=기다려야 한다. 제일 답답한 사람은 나 아니겠나.

-<>(2010)와 <버닝> 사이 공백만큼 기다리지는 않았으면 한다.

=절대 안된다. 그럼 내가 감독을 자를 거다. (웃음)

-오랜 구독자로서 <씨네21>에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앞으로의 행보를 100% 기대한다. <씨네21>은 창간 초기 영화잡지로서 새로운 담론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주간지 시장에 일대 변화를 일으켰다. 영화 담론의 깊이도 있되 대중과도 소통하는, 소위 ‘대중적 글쓰기’를 이끌었다. 지금 그게 <씨네21>에 있냐고 질문한다면, 난 아니라고 할거다. 창간 초기 담론을 이끌었던 조선희, 허문영, 김영진, 김소희 등이 당시에 모두 30대였다. 지금 한국 사회의 젊은이들은 나를 포함한 50~60대들이 아직 기세등등한 것 때문에 어쩌지도 못하고 있다. 그런데 <씨네21>은 젊어지지 않았나. 그 에너지가 영화판의 에너지로 확산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간절히, 정말.

-영화판, 더 나아가 한국 사회의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는 말로 들린다.

=세대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는데, 그건 위에서 알아서 비켜줘서 되는 게 아니라 밑에서부터 에너지를 갖고 무너뜨려야 한다. 위에서도 커튼의 틈은 좀 열어주는 등 양쪽 모두의 액션이 필요하다. 지금 한국영화계를 보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감독이 거의 20년째 정체다. 아직도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이 이창동, 봉준호다. 이들만큼 영화의 경계를 두드려보고 밀어붙이는 일을 아무도 안 하고 있다. 올해 주목받은 한국영화들도 좋은 작품이긴 하지만 너무 안전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고 느꼈다.

-맥주에 멸치 안주를 곁들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나. 전주에서도 취향을 고수할 것인가. (웃음)

=맥주에 멸치, 땅콩이 있어야 하루를 견디는 사람이다. 전주영화제쪽에도 오후 6시 넘어서는 회의를 하지 않겠다고 일찌감치 얘기했다. 전주가 맛집이 많긴 많더라고. 그래서 점심은 그런 곳을 다닐 수 있는데, 저녁은 여전히 맥주, 멸치, 땅콩이 될 것 같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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