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달 전, 넷플릭스 최고경영자인 리드 헤이스팅스가 <뉴욕타임스> 딜북 콘퍼런스에서 말했던 구절을 빌리면 넷플릭스의 경쟁상대는 ‘인간의 수면 시간’이라고 한다. 더 크게는 ‘거대 트렌드’ 자체를 경쟁상대로 꼽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서로 전혀 다른 서비스처럼 보이는 아마존(커머스), 넷플릭스(콘텐츠)와 유튜브(콘텐츠), 페이스북(소셜미디어)이 서로를 경쟁상대로 여긴다. 무엇을 두고? 인간의 시간을 두고.
환장할 노릇이다. 아직 못 읽은 책이 죽을 때까지 다 못 읽을 만큼 남아 있는데 2020년은 와버렸고, 이 거대 기업들은 전세계를 균질화하다 못해 그 파이를 나눠먹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인간의 잠을 줄여서라도 전체 파이를 늘리려 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인간 문명의 끝인가? 우리는 모두 ‘넷플릭스 증후군’(넷플릭스에서 콘텐츠를 보는 것보다 무엇을 볼지 고르는 데에 시간을 더 많이 쓰는 현상)을 겪다가 컴퓨터, 스마트폰, 내지는 태블릿컴퓨터를 앞에 두고 쓰러질 것인가? <월·Ⓔ>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선베드에 편안히 눕는 것이 우리의 미래인가?
물론 아닐 것이고, 이건 약간의 오버다. 하지만 도무지 따라가기가 벅찬 것만은 사실이다. 북튜브(책을 소재로 삼는 유튜브)를 업으로 삼고 있는 나조차도 유튜브와 책 양쪽을 따라가는 것이 쉽지 않음을 느낀다. 다른 업무를 할 때 유튜브를 틀어놓지 않으면 트렌드를 파악하기 힘들고, 책이라는 소재에 본령을 두고 있는 만큼 어떤 책이 나오고 사랑받는지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을 들여야 한다. 거기에 고전영화와 책, 잊을 만하면 돌아오는 외국 드라마까지. 유튜브,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 밀리의 서재, 마스터클래스, 쿠팡 로켓와우 멤버십까지 정기구독 리스트가 늘어만 가는 마당에 디즈니에서 론칭한다는 새로운 스트리밍 사이트는 이제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이걸 다 보(고 커머스로 생필품을 사고 집안일을 하고 일을 하고 소셜미디어도 관리하)려면 리드 헤이스팅스의 바람대로 잠을 줄여야 한다.
죽을 때까지 몇권의 책을 읽을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는 조바심이 든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는 건 인간의 유구한 고민이었던 모양인지 무려 서기 121년에 태어난 로마 황제도 일기장에 이런 이야기를 적어두었다. “너는 네 작은 비망록도, 고대 로마인들과 헬라스인들의 행적도, 노후에 읽겠다고 제쳐놓은 그들의 저술 발췌본도 읽을 시간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목표를 향하여 서둘러라. 헛된 희망을 버리고, 자신이 염려된다면 아직 그럴 수 있을 때 너 자신을 돕도록 하라.”(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천병희 옮김, 숲 펴냄, 3권 14장) 이건 단상집이었으니 다른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을 것이다. 지금 시간이 없다면 앞으로도 영원히 시간 같은 것은 없으리라는.
예나 지금이나, 시간이 없다. 당장 해야 한다. 당장 뭘? 잠을 줄이는 것은 좋은 결정이 아니다. 우리가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은 과감한 결단을 내리는 것뿐이다. 올해는 넷플릭스에서 고전영화만 잔뜩 보겠다거나, 유튜브를 끝까지 파보겠다거나, 책을 쌓아두고 읽겠다거나 하는. 그중 가장 취약한 매체가 책이니 책을 읽겠다면 결심의 강도는 조금 더 세야 할 것이다. 2020년이다. 며칠 지나면 2021년이 되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