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인터뷰를 하러 찾아간 망원동의 음악 작업실에서 펑크 록밴드 빌리카터의 주축이 되는 둘을 만났다. 탈색한 금발이 잘 어울리는 김지원은 굵게, 마음 깊은 곳으로 호소하는 음색을 악기처럼 조율하며 노래를 부른다. 소녀 같은 웃음과 날카로운 카리스마를 동시에 지닌 듯한 김진아는 누구보다 신나고 진지하게 기타를 친다. 2015년 《The Red》라는 EP앨범으로 데뷔한 이들은 곧 척박한 한국 펑크 신의 새로운 얼굴이 되었다. 《The Yellow》 《The Green》 《The Orange》로 이어지는 EP 시리즈는 각각 다른 주제로 그들이 바라본 세상을 이야기하는 연작이다. 어떤 이야기에는 조용한 새벽의 심상같은 우울한 정서가 저변에 깔려 있고, 어떤 이야기에는 세상을 향한 분노가 날것처럼 느껴진다. 2016년 발매한 《Here I Am》은 밴드 초기의 다양한 면모를 13곡 안에 가득 채운 첫 번째 정규음반이다. 펑크뿐만 아니라 하드록이나 블루스처럼 그들이 영향을 받은 음악과 멜로디에 ‘빌리카터’라는 프리즘을 투영하여 떠나는 로드무비 같은 음반이다.
겨울비가 콘크리트바닥을 적시던 12월 어느 금요일 밤, 실로 오랜만에 들른 홍대의 클럽 FF에서 빌리카터의 공연을 보았다. 음반을 듣고, 공연을 본다. 공연장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때만큼은 친구가 된다. 내게는 조금 비일상 같은 하루였으나, 사실 음악이란 이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