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최제훈이 첫 소설집 <퀴르발 남작의 성> 이후 9년 만에 단편소설 여덟편을 한데 묶었다. 그사이 장편소설 <나비잠> <천사의 사슬> 등을 발표해왔지만 최제훈의 <위험한 비유>는 <퀴르발 남작의 성>으로 주목받은 그의 새로운 단편집이라 눈길을 끌었다. <철수와 영희와 바다> <2054년, 교통사고> <마네킹> <미루의 초상화> <유령들> <마계 터널> <현장부재증명> 등 총 8편의 이야기가 실렸다.
<철수와 영희와 바다>. 이름 때문인지, 그 이름에도 불구하고인지는 알 수 없으나 철수와 영희는 연인 사이다. 둘은 바다에 있다. 바닷속 해조류를 보며 매생이굴국밥을 떠올리는 보통의 상상력을 가진 두 사람은 함께 있으나 생각은 제각각이다. 영희는 아니나 다를까 제대로 다이어트를 하지 못한 데 대한 생각을 하고 있으며, ‘철수와 헤어지지 않는 이상 다른 남자와 단둘이 바다에 올 기회가 없을 거라는 뜻’이라는 생각을, 고작 스물다섯인데 하고 있다. 철수는 얼마 전 마주친 학교 선배 이야기를 꺼낸다. 철수의 말을 듣던 영희는 회사 근처에서 본 적 있다고 말하는데, 철수는 왜 진작 이야기하지 않았느냐고 따지고, 영희가 커피를 마셨다고 하자, 철수는 성주 말이 술을 마셨다고 했는데 혹시 그 이상의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기 시작한다. 그리고 철수는 원하는 대답(영희가 성주와 잤다는 자신의 의구심에 부합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자 바다 한복판에서 영희가 탄 튜브의 공기를 빼기 시작한다.
영화 <마네킨>처럼, 여자 마네킹과 사랑에 빠지는 남자 이야기도 있다. 제목도 <마네킹>인데, 마네킹의 이름은 로라로, 섹스돌이 논란을 빚는 시대에 아니나 다를까 섹스돌처럼 남자들의 눈길을 끈다. 주인공 준기는 로라와 사랑에 빠져 로라를 훔쳐, 고시원에 숨겨둔다. 그런데 누군가가 낮에 로라를 만진 것 같다. 아니면 로라에게 생명이 깃들고 있든가. 그런 이야기. <마계 터널>은 지하철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흥미를 가질 수도.
죽은 여자
“형씨.”
곤은 문손잡이를 잡은 채 뒤를 돌아보았다.
“이거 어디까지가 실제 있었던 일이오?”
형사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피살자 윤미나가 정말 2002년의 그 소매치기였소?”(<현장부재증명> 중, 24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