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살, 리사는 납치되어 감금당한다. “4일차 되는 날 나는 바닥에 누운 채 그를 죽일 계획을 짠다. 내가 가진 도구들을 머릿속에서 목록으로 정리하고 있으니 마음이 든든해진다.” <복수해 기억해>의 첫 두 문장은 낯설다. 감금되어 며칠이 지났는데, 그게 누구든 두려워할 만한데, 주인공은 납치범을 죽일 계획을 짜고는 ‘마음이 든든해진다’고 한다. 심지어 임신 중인 16살인데? 리사는 아동정신의학과에서 수많은 검사를 치른 뒤, 감정을 잘 느끼긴 하지만 딴생각이나 비생산적인 사고를 억제하는 데 특출나다는 말을 들었다. 소시오패스는 아니다. 감정을 이해할 수도 있고 느낄 수도 있는데, 느끼지 않기로 선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리사는 보통 때는 사랑을 꺼놓고 지낸다. 그리고 지금은 공포를 꺼놓고 탈출을 도모하려는 중이다.
법정 변호사인 어머니와 해군 특수부대 출신 물리학자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리사는 부유한 미국인 가정의 딸이고, 전도유망한 과학적 재능을 가진 우등생이다. 그리고 눈과 귀로 접하는 단서들을 모아 탈출에 필요한 도구들을 파악하고 손에 넣는다. 어떤 때는 표백제를, 어떤 때는 고무줄을. 그런데 알고 보니 납치범들의 목적은 오로지 뱃속의 아이였으며, 납치된 임신부는 리사만이 아니었다.
<복수해 기억해>를 읽어갈수록 리사의 치밀함과 냉정함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게 된다. 걱정해야 할 인물은 리사가 아니다. 그런 설정이지만, 중간에 리사가 물속에서 건져낸 무언가를 보고 감정을 느끼는 대목을 비롯해, 머리가 좋다고해서 살아날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근심하게 된다. 그것은 여성들에게는 익숙한 두려움이다. <미션 임파서블>을 본다고 에단 헌트가 되는 게 아닌 것처럼, 결말이 궁금해 책을 서둘러 읽은 뒤에도 공포와 불안은 가시지 않는다. 하지만 (10대) 여성이 주인공인 스릴러의 새로운 방향성을 보여주는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생존도구, 문학
도로시가 드디어 비명을 멈추고 내 옆으로 뛰어내리더니, 브래드의 머리를 향해 책을 한권씩 던졌다. <호밀밭의 파수꾼> <챔피온들의 아침식사> <백년의 고독> <무언가 사악한 것이 여기로 온다> 등 학교에서 흔히 가르치는 고전소설들이었다. J. D. 샐린저, 커트 보니것,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레이 브래드버리. 이 모든 작가들이 아군이 되어주었다. 39번 도구, 문학.(18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