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집의 맨 마지막 두 문장을 당신은 사랑하게 될 것이다. “사랑 같은 것은 그냥 아무에게나 줘버리면 된다. 이 시집을 묶으며 자주 한 생각이었다.” 이 시집의 1부 제목은 ‘이것은 영화가 아니지만’인데, 2019년 5월부터 11월까지 메일링 서비스로 발행된 ‘앨리바바와 30인의 친구친구’에 발표한 연재물의 제목이었다. 투병하는 친구의 병원비를 모으기 위해 30명의 창작자(뮤지션, 일러스트레이터, 포토그래퍼, 시인 등)들이 돌아가며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렸다. 그것 말고도 이 시집의 탄생에 얽힌 사랑의 사연은 여럿 있는데, 그 하나하나의 사람이, 이야기가 책 말미 ‘시인의 말’에 실렸다. ‘아무에게나’라고 하지만, 사랑할 무언가를(혹은 누군가를) 찾는다는 일은 노력만으로 되는 일도 아니며 운에만 맡길 일도 아니다. 잘 사랑하는 사람이 잘 사랑받는 것 아닐까. 아, 이건 창작자들에만 해당되는 말일지도. 황인찬의 이번 시집이 좋다는 말이다. “그 여름과 그 바다가 완전히 끝나버렸는데도 아무것도 끝난 것이 없었다는 것에 대한 것이고/ 영원히 반복되는 비슷한 주말의 이미지들에 대한 것이고/ 내 옆에 누워 조용히 잠들어 있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느끼는 소박한 기쁨과 부끄러움에 대한 것뿐”(<이것이 나의 최악, 그것이 나의 최선>), “폐업한 온천에/ 몰래 들어간 적이 있어// 물은 끊기고/ 불은 꺼지고// 요괴들이 살 것 같은 곳이었어/ 센과 치히로에서 본 것처럼// 너는 그렇게 말하고 눈을 감았다”(<부곡>), “하얗고 작은 잔에서/ 김이 피어오릅니다// 기억나는 것은/ 인간을 그만두기로 마음먹던 때의/ 서늘한 공기와 말차의 씁쓸함// 눈떴을 때 옆에 누운 것은/ 죽은 사랑의 얼굴”(<아무 해도 끼치지 않는 말차>). 유달리 문장의 단위로 눈에 들어오고 기억에 남는 시들이 많은 <사랑을 위한 되풀이>는 물의 이미지, 습하고 설운 기운이 여기저기 고여 있다. 누군가는 물속에서 눈을 뜬다. 매운탕은 물로 끓인다. 눈물도 수분이다. 사랑을 아무에게나, 라는 말에도 습기가 있다. 이 시집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이 시에는 기쁨이 솟아올라 남은 것이 없다면 좋겠다/ 기쁨은 놀라움과 안심이 겹쳐질 때 만들어지고// 그것이 손쉽게 사랑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어렵게도 이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나의 바람이지만//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이 방에는 사랑이 흘러가고 관념만 남아서/ 그저 기뻐하기만 있으면 좋겠다(<그것은 가벼운 절망이다 지루함의 하느님이다> 중, 14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