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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엽 편집장] 14년 만의 여성 편집장, 그 이름의 무게
장영엽 2019-12-06

“혹시 <씨네21> 최초의 여성 편집장이신가요?” 편집장 임명 소식이 알려진 뒤, 지난 1주간 <씨네21> SNS 계정을 통해 적지않게 받은 질문이다. 정답부터 말하면 내가 처음이 아니다. 이전에도 <씨네21>에는 여성 편집장들이 있었다. 1995년 영화전문 주간지의 성공적인 창간을 이끈 조선희 초대 편집장부터 안정숙(2대), 김소희(4대) 편집장까지, 한국 영화산업이 눈부시게 성장하고 영화 전문지간의 경쟁이 가장 치열했던 시기의 <씨네21>을 여성들이 이끌었다. 14년 만에 임명된 여성 편집장이라는 이유로 이분들과 나란히 호명될 수 있다는 점을 기쁘고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지난 1주간 사적으로 또는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받았던 과분할 정도로 많은 축하와 응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앞으로도 곰곰이 생각해보려 한다.

이 자리를 빌려 고백하자면, 나는 언젠가 편집장이 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유능하고 글 잘 쓰는 선배들이 내 앞에 쟁쟁하게 포진하고 있었던 까닭이기도 하겠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꼭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2008년 <씨네21> 기자로 입사한 이래 나는 여자 선배가 편집장이 된 경우를 보지 못했다. 한번의 경우를 제외하면 취재팀장 역시 남자 선배들이 도맡았다. <씨네21> 취재팀의 일원으로 일하며 조직 내에서 여자이기에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한 적은 거의 없지만, 여자 선배가 취재팀의 수장으로 있는 풍경을 경험해보지 못한 나는 어느 순간 그 풍경 가운데 내가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차단해버린 듯했다. 이다혜 기자가 저서 <출근길의 주문>에서 말했듯 “누구 한 사람만 앞에 있어도, 한 명만 눈에 보여도, 그 길을 선택하는 일”에 도움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마음의 준비가 끝나기도 전에 덜컥 편집장이 되어버렸으니, 이제는 나와 같은 서른여섯의 나이에 <씨네21>을 창간하며 조선희 선배가 떠올렸다던 E. H. 카의 ‘역사의 일회성’ 문제를 주문처럼 되뇌며 마음을 다잡는 수밖에 없다. “역사에서 모든 일은 한번 일어나며 완벽하게 똑같은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

엄살이 길었지만 편집장으로서 해보고 싶은 건 많다. 우선 역동적으로 변화하며 유연하게 확장 중인 영화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않는 잡지를 만들고 싶다. 이번호에 송경원 기자가 쓴 시네마에 대한 장문의 영화비평은 앞으로의 <씨네21>이 추구하고자 하는 탐색의 방향에 대한 예고편이다. 더불어 시의성과 대중성을 명민하게 반영한 기획 기사도 선보일 예정이다. 취재기자들이 송년호, 신년호를 앞두고 모두가 반길 이들의 어디서도 보지 못한 이야기를 숨가쁘게 취재 중이니 기대해주시라. 장기적으로는 보다 폭넓은 독자층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5년 만의 개편을 준비 중인데, 2020년 상반기에는 <씨네21>의 새로운 비전을 반영한 변화들을 실감하실 수 있을 거다. 구구절절한 설명보다는 잡지를 통해, 플랫폼을 통해 달라진 모습을 직접 확인시켜드리고 싶다. 앞으로의 <씨네21>이, 편집장으로서의 내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 지켜보는 건 독자 여러분의 몫으로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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