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은 주인공 카티아 세케르지(다이앤 크루거)가 어떤 중요한 선택을 하면서 끝이 난다.
백인 카티아는 터키 이주민 출신 누리(누만 아차르)와 결혼해 6살 난 아들 로코(라파엘 산타나)를 두고 독일에 살고 있다. 카티아의 삶은 의문의 폭탄테러로 남편과 아들이 희생된 후 하루아침에 무너져버린다. 폭탄테러를 수사하는 경찰들은, 마약 거래로 수감 생활을 했던 누리가 마약 밀매조직과 관계를 맺고 있었고, 원한 관계인 터키계 마피아가 폭탄테러를 저질렸을 것이라고 의심한다. 가족을 잃은 처참한 고통 속에서 카티아는 이주민에 대한 편견과도 마주하게 된다.
신나치주의를 신봉하는 폭탄테러 용의자 부부가 드러난 후, 카티아는 폭탄테러사건이 일어나기 바로 전 남편의 사무실 앞에서 마주친 여자가 용의자 중 한명임을 확신한다. 삶을 포기하려 했던 카티아는 법정에서 이들을 단죄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하나로 자신을 일으켜 세운다. 그러나 용의자들의 알리바이가 한 그리스 신나치주의자에 의해 만들어지면서 재판은 어렵게 전개된다. 재판 과정에서 의외의 상황은 이 용의자들을 신고한 것이 용의자 부부 중 남자의 아버지라는 사실이다.
도시에서 자연으로 이동하다
재판에서 진 카티아는 홀로 그리스를 찾아온다. 용의자 부부를 따라온 것이다. 캠핑카를 끌고 그리스에 온 용의자 부부를 어렵게 찾아낸 후, 카티아는 남편과 아들이 죽임을 당한 똑같은 방법, 사제폭탄을 만들어 복수를 시도한다. 그러나 사제폭탄이 담긴 가방을 캠핑카 아래 숨겨놓았던 카티아는 마음을 바꿔 가방을 되찾아온다. 그리고 얼마 후, 카티아는 자신의 마지막 선택을 실행한다.
영화의 줄거리를 먼저 설명한 이유는 <심판>의 이야기 전개가 비교적 단순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심판>이 단순하게만 느껴지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심판>이 이중의 구조를 가졌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심판>은 카티아의 마지막 선택을 두 가지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다.
첫 번째는, <심판>을 ‘복수’라는 영화의 오래된 주제로 바라보는 것이다. 복수라는 주제로 카티아의 마지막 선택을 해석하는 것이다. 카티아 가족에 대한 폭탄테러는 터키계 이주민에 대한 테러다. 개인의 원한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폭탄테러의 용의자가 잡힌 후 사법체계는 이 신나치주의자 테러범을 심판하는 데 실패한다. 공적인 방법이 좌절된 후에 카티아는 사적 복수를 시도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그녀의 마지막 선택은 복수를 완결시켜버리는 구조라는 점이다. <심판>의 감독은 이 구조가 ‘복수 서사’에 새로운 형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두 번째는, <심판>이 남겨진 카티아 자신의 ‘고통’에 관한 영화라는 것이다. 폭탄테러 후 카티아는 심리적으로, 공간적으로 점점 고립된다. 남편과 아들의 시신을 터키에 안장하겠다는 시부모와의 불화, 그녀의 죽은 남편을 험담하는 그녀의 엄마, 아기 보는 것이 두려워 밀어내는 여동생 등의 장면들은, 카티아가 겪고 있는 고통이 더욱더 강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재판에 진 후 카티아의 첫 번째 복수 시도는 용의자에 대한 그녀의 분노로 설명될 수 있다. 하지만 분노만으로는 그녀의 마지막 선택을 설명하는 것은 충분해 보이지 않는다. 영화에서 카티아의 마지막 선택을 설명하는 것은 그녀가 다시 생리를 시작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카티아가 자신의 ‘고통’이 점점 무뎌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나는, 어쩌면 카티아에게 고통에 무뎌진다는 사실은, 고통 자체보다 더 두려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판>은 1장 ‘엄마’, 2장 ‘정의’, 그리고 3장 ‘바다’ 세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제목이 의미하는 것처럼 폭탄테러 후 카티아가 겪게 되는 고통, 재판 그리고 그리스에서의 복수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챕터는 집, 재판정, 관광지라는 자신만의 공간적 성격을 갖고 있다. 하지만 챕터를 무시하고 본다면 영화에서 주요한 공간의 진행은, 폭탄테러가 발생한 길거리 사무실, 카티아의 교외 단독주택, 법정, 그리스의 펜션, 캠핑카 순서이고, 그리고 이것들은 확립된 공간에서 임시적인 공간으로, 혹은 도시에서 자연으로 같은 어떤 방향성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방향성은 카티아가 마지막 선택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영화의 구조와도 일치하고 있다. 특히 마지막 장면의 캠핑카는 건물과 같이 확립된 것, 체계 속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특징을 갖는다. 건물이 아니라는 이 특징은 재판정 같은 공적 체계에서의 심판이 아닌, 카티아의 사적 복수와 어울리고 있다. 이러한 방향성의 측면으로만 본다면 다소 의문이 드는 선택은 카티아의 단독주택이다. 독일의 주거방식은 크게는 길에 면하면서 블록을 형성하는 도시의 공동주택과 중심부에서 벗어난 단독주택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물론 ‘고립되는 카티아’라는 두 번째 해석을 위해서는 단독주택이 더 어울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도시에서 뒤로 갈수록 자연에 가까워지는 공간의 방향성에는 도시의 공동주택이 더 부합할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무엇보다 파티 아킨 감독에게 중요한 것은 카티아의 고통이다.
마지막 선택의 의미는
<심판>을 볼 때 제일 의외의 장면은, 신나치주의 테러범을 신고한 것이 테러범의 아버지라는 사실이다. 처음에 나는 신고하는 아버지의 존재를 통해 독일인의 시민의식, 혹은 나치의 집단적 감시 같은 것을 말하려고 하는가, 라고 생각했다. 나중에야 이것이 어쩌면 카티아의 마지막 선택과 연관되어 복선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재판정에서 자신의 아들에게 반하는 증언을 한 후, 용의자의 아버지는 카티아와 잠시 대화를 나눈다. 자신의 집 근처에 올 기회가 되면 잠시 들러도 좋다는 제안에, 카티아는 폭탄테러를 준비하는 것 같아서 신고하는 것이 아니라 아들이 폭탄테러로 살인을 이미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신고할 수 있었겠냐고 반문한다. 용의자 아버지의 대답은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신고는 단죄하는 행위에 자신을 포함하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캠핑카 아래 설치했던 사제폭탄을 빼왔던 카티아는 다시 캠핑카를 찾아간다. 수풀 뒤에 숨어서 용의자 부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카티아는 용의자 부부가 캠핑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후, 사제폭탄 가방을 들고 조심스럽게 캠핑카로 다가간다. 문 앞에 다다른 카티아는 가방을 앞으로 돌려 메고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카티아는 그녀의 마지막 선택을 실행한다.
나는 앞에서 카티아의 마지막 선택의 이유를 고통이 무뎌지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썼다. 아니, 이 해석은 관념적이다. 그녀는 점점 무뎌지는 고통에서조차 벗어나는 선택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