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비평가, 학자, 논픽션 작가 매기 넬슨의 <블루엣>은 파란색에 대한 사적 기록이다. 북포럼이 이 책을 ‘지난 20년간 출간된 최고의 책 10권’으로 꼽았다는데, 매기 넬슨의 경험과 생각을 파란색에 대한 세상의 시각과 맞닿게 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블루엣>은 정말 읽어봐야 뭔지 알 수 있다. 파란색에 대한 이것저것을 논하는 짧은 240꼭지의 연작 에세이를 담은 파란 책이라고밖에 설명할 수가 없으니.
파란 표지에 파란 본문 글씨. 32번 글. “내가 말하는 ‘희망’은 특별한 지향점이 있는 희망이 아니다. 그저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볼 가치가 있다는 의미 정도다. ‘저 밖에 있는/ 흐릿한 것들은 다 무엇이지?/ 나무? 글쎄, 나는 지겹구나,/ 저것들이.’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영국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한편 이 책은 너무 지겨울 정도로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다. 무언가 다른 이야기로 흘러가나 싶으면 자꾸 헤어진 남자 이야기라든가 사랑한 남자 이야기로 돌아와 푸른 웅덩이를 만든다. 45번 글.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사랑이 아니라면, 정말로 나는 사랑을 모르거나, 혹은 더 간단하게 말하면, 내가 나쁜 남자를 사랑했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고. 그 모든 공식들이 사랑이란 감정에서 블루의 색을 싹 빼내버리면, 결국 부엌 도마 위에서 펄떡거리는 추하고 핏기 없는 생선 한 마리에 불과하지 않겠느냐고.” 한편 58번 글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인용한다. “사랑은 추악하기 짝이 없기에 연인들이 자신들이 하는 짓의 실체에 눈을 뜨는 순간 인류는 멸망할 것이다.” 매기 넬슨은 질릴 정도로 섹스와 사랑이라는 화두로 돌아가곤 하는데, 아마도 그런 점이 어떤 독자들을 가까이 끌어당기리라.
파란색 속에서 파란색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심상. 파란 유리병을 관통하는 빛이 좋아 일부러 해가 잘 드는 선반에 파란 수집품들을 올려둔 글이 있다. 파란색을 관통한 빛은 아름답지만, 빛 때문에 파란색은 바래기 시작한다. 물건을 위해서, 파란색을 위해서는 어둡고 서늘한 곳으로 옮겨야 하지만 그러지 않는다. “게으름, 호기심, 잔인함- 사물한테 잔인하게 대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것들 탓에 나는 그것들이 퇴락해가도록 그냥 방치한다.” 어떤 것들은 망가뜨리고 나서야 그 의미를 알게 된다. 의미를 알게 될 즈음엔 원래의 형태를 잃어버린 뒤다. <블루엣>은 파란색에 대한 통념을 답습하는 대신, 그저 파란색이 연루된 세상 모든 것을 빌려 자기 자신을 말한다. 삶이라는 이름의 펄떡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