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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로니모> 전후석 감독 - 한국인의 정체성, 디아스포라적인 삶을 재정의하는 작업이었다
송경원 사진 백종헌 2019-11-28

때로 영화는 운명처럼 맺어진다. 변호사였던 전후석 감독이 <헤로니모>를 연출하게 된 과정은 다른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미국에서 태어나 3살 때 한국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미국에서 법대를 졸업한 후 변호사가 된 그는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늘 품고 있었다. 그러던 중 쿠바로 배낭여행을 떠났다가 쿠바혁명에 동참했던 코레아노 헤로니모의 후손을 우연히 만났고, 이 놀라운 사연에 완전히 매료되어 결국 생업을 중단한 채 다큐멘터리까지 만들고야 말았다. 헤로니모(한국명 임은조)가 누구인지 따라가던 이야기는 쿠바 이민자 3, 4세대의 삶으로 연결되고 결국엔 ‘한국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대중적으로 크게 흥행할 만한 작품도 아니고 예술적인 야심을 품고 기획한 것도 아니다. 아니, 어쩌면 그렇기에 <헤로니모>는 우리가 잊고 있던 사실을 조명해 끝내 잊지 못할 다큐멘터리로 완성될 수 있었다. 전후석 감독에게 그 운명 같은 여정에 대해 물었다.

-변호사를 하다가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변신했다. 시작하게 된 과정이 운명 같다.

=감독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건 아니다. 원래 대학교에서 영화이론을 공부했다. 무전공으로 대학에 입학했다가 장 피에르 고랭(장 뤽 고다르와 함께 작업하며 누벨바그를 이끌었던 프랑스의 감독.-편집자)의 ‘영화의 역사’ 수업을 듣고 반해서 영화 공부를 했다. 하지만 전문 영화인으로서의 길을 걷진 않았다. 그러다가 쿠바로 여행을 가 그곳의 한인들을 만나면서 이 이야기를 다뤄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초기엔 20, 30분 정도의 유튜브 영상으로 나의 경험과 한인 사회를 조명하고 싶었는데 하다보니 점점 일이 커졌고 나도 제대로 알리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다큐멘터리의 주제가 뭐냐고 묻는 건 대개 구태의연하다. 하지만 어떤 작품은 그걸 굳이 입 밖으로 꺼내서 확인하는 게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헤로니모>는 후자에 속하는 것 같다. 영화는 헤로니모의 일대기에서 출발해서 디아스포라에 대한 조망으로 끝난다.

=헤로니모의 삶을 통해서 한국 밖에서 사는 한인들, 그들의 디아스포라적인 삶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해외에서 사는 한국인들의 존재 자체를 알리는 것도 중요했지만 그들이 어떤 이유로 자신의 한인 정체성을 지키려고 하는지 그 배경을 알고 싶었다. 영화 말미에 쿠바의 한인들이 해안 부둣가에서 손을 잡고 <아리랑>과 <고향의 봄>을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2002년 월드컵을 막 시작하기 전이라 한국은 축제 분위기였는데, 그때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는 기념비를 세우고 자신들이 한인들의 후손임을 되새기는 행사를 열고 있었다는 것이 의미 있게 다가왔다. 한국인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디아스포라가 무엇인지 다시 묻고 재정의하는 작업이기도 했다.

-다큐멘터리는 언제 시작하고 어떻게 끝낼지가 항상 어렵다. 시작점은 분명한데, 반대로 언제 이야기를 마무리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는지.

=본업이 있는데 잠시 멈추고 진행한 것이기 때문에 금전적인 이유로 빨리 끝내야 했다. 아무리 길어도 1년 반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3년이 지났다. 방향성을 잡지 못해서 예상보다 오래 걸렸다. 지난해 4월부터 올해 6월까지 포스트 프로덕션을 했고 그 과정에서 가닥이 잡혔다. 헤로니모가 중심이고 출발이었지만 후손들의 삶에도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인물들을 취재했다. 쿠바 한인 4세 중에는 한국에 실망하고 영국으로 떠난 분도 있었고, K팝 스타가 되고 싶어서 SM엔터테인먼트에 오디션을 본 친구도 있었다. 마이애미에 살면서 미국과 한국 사이에서 갈등하는 쿠바 한인 4세도 있었고, 헤로니모의 손자가 현충원에서 참배하는 것도 찍었다. 추가 촬영도 많이 했지만 옴니버스 형식으로 흩어질 것 같아서 최종적으로는 과감하게 자르는 작업을 주로 했다.

-영화 전반부는 헤로니모의 할아버지인 독립운동가 임천택 선생의 활동을 비롯해서 헤로니모의 쿠바혁명 참여 등 다양한 자료를 조사하고 꼼꼼하게 기록했다.

=1세대 이민자들의 삶을 보면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내용이 훨씬 많은데 눈물샘을 쉽게 자극하는 내용들은 최대한 걸러냈다. 자제한 게 그 정도다. 그게 그 분들의 삶이었으니까. 간혹 헤로니모가 쿠바혁명의 주역 중 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빨갱이 이야기를 또 찍었다’는 공격을 받기도 하는데, 영화를 보고 나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헤로니모는 하나의 나라나 기관에 대해 충성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사상가가 아니라 자신의 한인 정체성을 통해 삶의 의미를 질문하고 찾아나간 분이다. 사람들이 어떻게 행복하고 평등하게 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 그게 헤로니모의 동력이었다. 초기에는 그게 쿠바인이었고 나중에는 쿠바 내 한인들을 향한다. 그는 한국인이자 쿠바인이었고 세계 시민이자 인본주의자였다.

-헤로니모가 중심이 되는 영화지만 헤로니모로 대표되는 쿠바 한인들의 삶을 알아가는 사람, 그러니까 당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헤로니모에 대한 조명과 그의 행적을 복원하는 건 방송국의 전문 다큐멘터리 제작진이 훨씬 잘 만들 것이다. 나는 스스로 화자가 되어서 질문을 넓혀가고 스스로 깨달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여정에 관객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내가 등장하는 장면 역시 편집 과정에서 상당히 덜어냈는데 더 나왔어도 좋을 뻔했다. (웃음) 내가 헤로니모의 삶에 호기심을 느낀 것도 이방인, 그러니까 디아스포라적인 삶 때문이었다. 이번 작품을 통해 추상화되어 있는 디아스포라의 삶을 구체화하고 싶었다.

-전반부가 헤로니모의 일대기 정리였다면 영화의 후반부는 쿠바 한인들의 목소리를 모아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키고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조망한다.

=한인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한반도 밖에 있으면 필연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 원하든 원치 않든 타국에선 남들이 나를 한국인으로 규정한다. 그때부터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답을 내야 한다. 헤로니모를 만나는 순간 그의 삶이 한인 정체성의 상징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유대인의 랍비 중 한 사람이 “디아스포라의 뿌리는 고통”이라고 말했다. 나라가 침략당하는 고통, 거기서 떠날 수 밖에 없는 고통, 다른 나라에 들어가서 차별을 받을 수밖에 없는 고통. 그 고통 끝에 나오는 것은 혁신성이다.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 수 있는 창조성이라고 할 수도 있다. 중국에 정착하면 중국 한인, 미국에 정착하면 미국 한인, 쿠바에 정착하면 쿠바 한인이 되는 거다. 한국인이란 정체성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좋겠다. 불행히도 아직 한국 사회에서 재외동포를 바라보는 시각은 낯설고 거리감이 있다. 이들에게서 차이를 발견하고 배척하는 쪽으로 작동하면 안된다. 한민족, 한국인의 정의와 범주를 확장하고 포용해야 한다. 다가올 남북통일 시대를 위해서도 말이다.

-차기작은 계획 중인 게 있나.

=다시 말하지만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고 싶었던 게 아니다.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내 인생의 화두이기도 했기에 헤로니모가 내게 다가왔을 때 책임을 져야만 했다. 제작하면서 내 삶도 여러 가지로 바뀌었다. 일단 경제적으로 궁핍해졌다. (웃음) 못다 한 이야기들을 단편형식으로 만들 수는 있겠지만 이게 정리되고 나면 우선은 본업으로 복귀할 생각이다. 나중에 다시금 이야기가 나를 찾아온다면 다시 카메라를 들 수도 있겠지만 내가 먼저 소재를 찾아다니진 않을 것 같다. 뒤돌아보면 무모한 여정이었지만 무사히 끝나서 감사하다. 재외동포들의 고민과 질문이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가닿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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