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김형규와 김지영 아나드론 대표, 강창봉 항공안전기술원 본부장이 참여한 드론 토크 현장(왼쪽부터).
제주도에서 열린 ‘제주국제드론필름페스티벌’에 다녀왔다. 올해로 2회째를 맞이한 행사는 관광지와 삶의 터전이 맞닿아 있는 제주의 지형적 특색과 드론이라는 기술이 만나는 이색적인 영화제였다. 이제 막 걸음마를 디딘 영화제지만 드론이라는 촬영장비를 통한 영화적 탐구뿐만 아니라 기술의 미래까지 짚어보는 성격도 지녀 영화와 과학에 대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한데 모을 수 있는 독특한 행사다. 영화제 출품작 전반에 대한 소개에 이어 한국을 찾은 야생동물 사진작가이자 드론 전문가인 플로리앙 르두 감독을 만나 나눈 드론 노하우 이야기도 덧붙인다. 참고로 올해 본선에 진출한 모든 작품은 영화제 홈페이지(https://jejudronefilmfestival.com/officialfinal)에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드론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당연히 가능하다. 질문을 좀 바꿔보면 드론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선뜻 답하기가 어렵다. 사람이 탑승하지 않고도 무선으로 조종할 수 있는 무인비행기를 지칭하는 드론을 촬영에 한정지어 생각해보자면, 드론은 하늘에 떠 있는 카메라, 즉 부감숏이다. 그런 드론을 이용하면 당연히 광활한 자연을 전지적 시점에서 혹은 더욱 스펙터클한 액션을 입체적으로 담아내는 앵글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오직 항공촬영만으로 한편의 영화가 완성될 수 있을까. 지난 11월 1일에서 2일까지 제주도 제주항공우주박물관에서 개최된 제2회 제주국제드론필름페스티벌은 바로 이런 의문과 질문을 품은 사람들에게 드론의 비전과 미래를 제시해주는 행사였다. JIBS 제주방송이 주최한 이번 행사는 지난해 열렸던 첫회 당시에는 영화제명에 ‘국제’라는 단어를 넣지 않았다가 올해부터 내실을 다지고 외연을 확장하자는 의미로 ‘제주국제드론필름페스티벌’으로 거듭났다. 영화제가 열리는 제주도 서귀포시에 위치한 제주항공우주박물관 주변은 바다로부터 좀 떨어져 있고 건물 주변이 녹차밭 등으로 둘러싸여 있어 드론을 띄우기에 무척 좋은 입지를 갖추고 있는 곳이다. 전세계 상공을 날아다니며 촬영한 영상들을 모아 상영관에서 상영하는 것과 더불어 야외로 나가 각종 최신 드론을 날려보며 경험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이 영화제의 매력이다. 올해 개막식을 알리는 깜짝 행사로 150여대의 드론이 제주의 밤하늘을 별들과 함께 상공을 떠다니며 펼쳐 보였던 드론 라이트쇼는 앞으로 이 행사가 ‘온 스크린’을 넘어 ‘아웃도어’와 접목할 수 있을 거라는 가능성도 보여주었다.
드론 토크 행사에서 드론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발표하는 강왕구 항공우주연구원 단장.
드론, 기교를 넘어 예술이 되다
올해 영화제는 동북아 지역만을 대상으로 했던 첫회와 달리 전세계 지역을 대상으로 외연을 넓혔고 그와 동시에 ‘평화로 가는 길’이란 주제로 국제초청부문과 9개 카테고리로 세분화된 국제경쟁부문으로 나누어 구성했다. 전세계 56개국 참여, 전체 출품작인 총 615편(영상 445편, 사진 170편) 가운데 엄선된 55편이 본선에 올랐다. 앞서 소개한 국제경쟁부문의 9개 카테고리는 그 자체로 영화제가 강조하는 드론의 비전, 미래의 활용 방안이기도 하다. 전세계의 광활한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담은 ‘랜드스케이프’, 제주 지역의 풍경을 색다른 시각으로 표현한 ‘포트레이트 오브 제주’, 드론으로 찍은 셀프 카메라 영상인 ‘드로니’, FPV 레이싱 드론으로 촬영된 ‘프리스타일 FPV’, 드론으로 촬영된 뉴스와 다큐멘터리 작품 혹은 드론을 소재나 주제로 한 ‘뉴스&다큐멘터리’, 드론으로 촬영된 극영화를 모은 ‘내러티브’, 드론과 촬영 영상의 미래를 보여줄 ‘이노베이션’, 창작자가 그간의 자신의 활동을 소개, 홍보하기 위해 만든 영상 푸티지인 ‘쇼릴’, 드론으로 촬영된 ‘사진’ 분야가 그것. 출품작 상금은 부문별 파트마다 다르나 200만원에서 500만원 선의 상금이 주어졌다.
올해 본선에 진출해 수상의 영광을 안은 많은 작품은 땅에 발 딛고 선 인간의 영역에서 결코 바라볼 수 없는 시점에서의 스펙터클한 자연에 주목한다. 사실 대부분의 출품작이 같은 비전과 문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 보아도 무방하지만 그중 랜드스케이프 부문 수상작인 올리버 호프먼 감독의 <라인 네카르를 느껴보세요>는 자연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 또한 주목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부감숏으로 찍힌 장면은 특유의 항공촬영숏과 지상에서의 일상을 담은 숏을 CG 등 다양한 기법을 이용해 연결함으로써 자연과 삶을 연결한다. 포트레이트 오브 제주 부문에서 수상한 김슬기 감독의 <제주의 불가사의한 자연>은 심사위원들로부터 “간결하고 절제된 표현방식이 돋보이며 느린 템포가 되레 장점이 되어 때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제주로 안내한다”는 평을 받은 작품. 자연의 아름다움을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 것인지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작품이다. 한편 항공촬영으로 얻어낼 수 있는 시점숏의 깊이에 관한 고민은 경쟁부문 카테고리에서 수상한 해외 작품에서도 드러나는 경향 같다. 이제 드론은 법적 절차만 밟으면 누구나 하늘에 띄울 수 있기 때문에 항공촬영 특유의 앵글 자체가 장점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른바 드론 영상은 현란한 기교 외에도 철학적으로 혹은 미학적으로 더욱 그 깊이를 고민해야 하는 때에 이르렀다. 다큐멘터리의 기능적 측면을 강조하는 저널리즘 형태의 드론 작품도 마찬가지 고민을 하고 있다. 그중 미학적으로 발전된 형태를 고민한 작품은 내러티브 부문에서 수상한 에티엔느 페론 감독의 <글룸/블룸>이다. 심사위원들로부터 “반박 불가의 작품”이란 평을 받은 이 작품은 SF영화에나 나올 법한 대자연의 광활하고 기괴한 자연과 현대의 도시 혹은 폐허가 된 건축물들을 리드미컬하게 보여주는데 그 시선에서 미스터리한 장르적 기운이 느껴진다. 흡사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자브리스키 포인트>(1970)에서 볼 법한 미스터리한 사막의 풍광에 담긴 물질 만능주의에 대한 비판, 테렌스 맬릭 영화들에서 자연경관을 다루는 양식미의 탐구를 드론을 이용해 시도하는 듯하다.
제주항공우주박물관 잔디광장에서 열린 드론 라이트쇼 현장.
인간을 이롭게 할 드론 활용법
올해 영화제가 중요하게 내세운 초청 부문에는 모두 9편의 영화가 엄선되었다. <CNN>과 독일 공영방송사 <ARD>에서 활동하는 탐사기자이며 독립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소니아 케네백 감독의 <내셔널 버드>, 야생동물 사진작가인 플로리앙 르두 감독의 <나는 연약하다>, 존 후앙 감독의 <인버젼 홍콩>, 세바스티앙 펭 감독의 첫 단편영화 <나의 숲>, 드론 제작사인 DJI에서 출품한 <하늘에서 케냐 코끼리 보호하기> <드론으로 낚시줄에 걸린 고래 구하기>, 캐나다에서 상업 드론 부문을 개척한 회사 ‘디지 필름’의 창업자이기도 한 다비드 에티엔 뒤흐바쥐 감독의 <생 로헝 강(LEFLEUVE ST-LAURENT)>, 프랑스 출신 기욤 르 베르 감독의 <바다를 일구다>, 티에리 에이호 감독의 <모두를 위한 평화> 등 9편의 초청작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메시지는 쉽게 말하면 인간을 이롭게 할 드론의 활용법에 관한 탐구다. 대표적으로 <내셔널 버드>(넷플릭스 공개명 <살상의 새 드론>(2016))는 3명의 전직 미군들이 해외민간인 희생자를 발생시킨 드론 공격의 불편한 진실을 폭로한 다큐멘터리다. 드론의 잘못된 사용을 통해 기술 발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작품이다. 영화제가 올해 내세운 기치인 ‘평화로 가는 하늘길’이란 주제와도 일맥상통한다.
이처럼 드론은 항공촬영 용도뿐만 아니라 기록 방식으로서의 새로운 저널리즘, 새로운 무기 활용 방도를 고민하는 군사, 의료, 스포츠, 운송 등 일상생활을 이롭게 하는 여러 분야에서 활용 가능하다. 올해 영화제는 촬영장비 이상의 활용 방안을 다각적으로 모색해 경쟁부문 섹션의 카테고리 구분에도 신경 쓰는 한편, 여러 부대행사도 함께 마련해 이에 관한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눴다. 강창봉 항공안전기술원 본부장, 강왕구 항공우주연구원 단장, 이병석 경남창원서부경찰서 경정 등이 참여해 관객과 만난 토크 행사는 미래 4차 산업혁명을 이끌 드론의 비전에 대해 여러 화두를 던지는 자리였다. 특히 올해 초청된 작품 가운데 북극의 자연환경과 야생동물 생태계를 카메라에 담아낸 <나는 연약하다>의 플로리앙 르두 감독의 강연은 나이 어린 꼬마 관객도 집중해서 들었던 행사다. 그는 이 자리에서 자신의 기술적인 촬영 노하우에서부터 인생을 뒤바꿔놓은 야생동물 사진을 관객과 공유하며 드론을 이용한 작업의 의미에 대해 곱씹어봤다. 드론에 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있는 감독이나 관객이 있다면 내년 공식 출품에 도전해봐도 좋을 것 같다. 러닝타임 5분을 넘지 않는 선에서 전체 촬영분량의 50% 이상을 드론으로 촬영해야 한다는 조건만 충족하면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다.
●강태선 드론국제필름페스티벌 조직위원장, "4차 산업혁명의 중추적인 역할 할 것"
블랙야크 회장직을 맡고 있는 강태선 드론국제필름페스티벌 조직위원장은 엄홍길 대장을 중학생 시절부터 후원해왔던 산악인들의 맏형이다. 그런데 그가 왜 드론에 관심을 갖고 영화제 조직위원장까지 맡게 됐을까. 그 이유가 궁금했다.
-드론의 어떤 점에 주목하게 됐나.
=무궁무진한 드론의 잠재력 때문이다. 군사무기로 활용될 때의 피해도 경각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지만 산업적으로 경제적으로 농업, 의료, 운송 등 쓰이지 않는 분야가 없을 정도로 깊숙하게 자리잡을 것이다. 드론으로 촬영할 수 없는 곳이 없기에 4차 산업혁명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봤고 국제행사로 나아갈 잠재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제주도의 지역적 특색과 영화제가 어떻게 어울릴 것이라고 보나.
=제주도는 자연경관만을 관광상품으로 내세우는 하와이나 발리와 달리 주민들의 삶 자체가 관광 자원이다. 드론을 통해서 제주의 역사적인 삶과 자연을 조명할 수 있다면 바랄 나위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앞으로 협의가 필요한 부분이지만 드론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자연적인 환경도 영화제에 큰 이점이다. 산악인으로서 에베레스트 등반도 여러 차례 했는데 드론을 실제 써본 경험이 있나. 올해 4월에 에베레스트의 베이스캠프를 청소하러 갔는데 드론으로 촬영해 보이지 않는 곳까지 분석할 수 있었다. 산악인들에게도 드론은 의료, 인명구조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어떤 영화제로 자리잡길 원하나.
=나이, 경력에 상관없이 초중고생들도 출품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제는 1인 미디어 시대이고 기획, 연출, 편집을 직접 할 수 있지 않나. 미래의 감독들이 영화제를 많이 찾아주길 바란다.
●<나는 연약하다> 플로리앙 르두 감독 - 드론의 시점으로 북극의 매력을 포착하다
야생동물을 카메라에 담는 플로리앙 르두 감독은 군 시절부터 독학으로 사진에 입문했고 북극의 야생동물을 더욱 생생하게 담아내고자 드론을 띄우기 시작했다. 자연과의 소통 수단으로 드론을 사용하는 그는 영화제를 찾아 자신의 노하우를 공유했다.
-북극곰, 바다코끼리, 흰돌고래 등 야생동물을 주로 찍기 시작한 계기가 있나.
=어릴 때부터 자연을 좋아했고 그와 관련한 일을 하며 살고 싶었다. 동물들은 자연과 인간을 연결해준다고 생각한다. 사람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또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며 사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빠져들었다.
-드론에 매력을 느낀 이유는.
=자연을 새로운 시점숏으로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드론이 제공하는 시점숏이 나의 메시지 전달에 힘을 실어준다고 여겼다.
-초청작 <나는 연약하다>를 연출하게 된 계기는.
=사진보다 영상이 더욱 감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걸 느꼈다. 특별한 컨셉 없이 무작정 찍기 시작했다. 드론 기술이 정착되지 않은 초창기부터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지금은 매우 안정적으로 촬영할 수 있는 여건도 갖춰졌다. 스크립트 없이 1년 넘게 촬영한 영상을 토대로 내레이션을 입히고 편집을 했다. 북극에서 드론을 띄울 때는 전자파에 영향을 끼치는 태양광까지도 신경 써야 해서 어려움이 많았는데 결과물은 만족스럽다.
-쉽게 볼 수 없는 광활한 대자연 앞에서 어떤 생각을 하나.
=볼 때마다 매번 놀랍다. 자연의 일정한 패턴, 선의 아름다움 같은 것들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가슴이 뛴다. 지상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것들을 드론은 보게 해준다. 다음 작업은 여러 야생동물 중 한종을 택해 과학적인 메시지를 담는 방식으로 접근해볼 것이다. 그 작품도 기대해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