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부산영화제 뉴 커런츠 부문 상영작인 <69세>는 성폭행 피해자인 노인 여성이 진실을 밝히는 과정을 그린다. “노년의 여성은 사회적으로 가장 낮고 소외된 존재다. 이런 이야기에 덤벼든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궁금해서, 대본을 받자마자 감독을 만나야겠다고 결심했다.” <69세>에서 간병인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품위 있는 차림새에 신경 쓰는 여성 효정을 연기한 배우 예수정. 그는 중년 여성주인공의 활약이 돋보이는 올해 부산의 한국영화들 사이에서 단연 날 선 파장을 안겨주고 있다. 영화는 효정이 물리치료 도중 젊은 간호조무사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동거 중인 시인 동인(기주봉)에게 피해 사실을 고백하고 직접 경찰서를 찾아가면서 시작된다. 피해자의 부주의를 탓하고 대질신문을 요구하는 전형적인 2차 가해와 더불어,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해 치매 검사를 권하는 등 효정은 여성이자 노인으로서 이중의 폭력을 경험한다. 마른 몸과 세련된 패션을 번번이 지적받는 그녀는 ‘노인답지 않은 노인’으로서 자주 성적 대상화에 처하기도 한다. ‘미투 시대’의 관심이 대개 젊은 여성을 향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효정의 사례는 복잡다단한 차별이 얽힌 새로운 사각지대를 밝힌다. “임선애 감독과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눴다”는 배우 예수정의 고민은 <69세>를 사회적 함의에서 몇 걸음 더 진전시켜 효정 캐릭터에 실존적인 깊이를 더했다. 극중 성폭행 설정을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해치는 행위 중 가장 비극적인 예”로 바라본 그는, “효정은 부당함을 참지 않고 직접 대면하는 인물. 노인으로서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은 맞지만, 사유를 멈춘 사람은 아니”라고 말한다. 연기할 때, 성폭행 피해자의 정체성 너머로 “자기 인생의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를 되새긴 이유다. 여기에 <69세>는 타인과의 공존을 중시하고 조용한 움직임을 추구하는 효정의 성향으로부터 피해자의 저항 방식에 대한 유의미한 논의를 이끌어낸다. “어떻게 싸울 것인가 하는 질문엔 정답이 없다. 핵심은, 아무리 나이 든 노인도 가시에 찔리면 아파하는 한명의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감각, 그리고 자신을 아프게 하는 가시를 뽑으려는 움직임, 그 자체가 중요하다.”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사람들⑤] <69세> 배우 예수정 -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