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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위기설②] SNS와 입소문, 전보다 쉽고도 어려운
임수연 2019-10-09

입소문은 완전히 사라진 걸까 - 영화를 알린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시대에

<완벽한 타인>

“요즘은 개봉 첫주 주말이 오기도 전에 결판난다. 개봉일 오후까지 발권량 추이만 봐도 흥행 감이 온다.” 홍보마케팅사 관계자 A씨는 부정적인 소문이 얼마나 빠르게 관객수에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했다. 실제로 올여름 송강호 주연의 <나랏말싸미>는 첫날 관객수 15만명(좌석점유율 37.1%, 좌석판매율 13.3%)을 기록한 뒤 첫주 주말 좌석점유율이 25%대로 하락했으며, 문화의 날이었던 개봉 8일차에는 2.4%까지 하락했다. 이같은 극장의 스크린 배정에 대해 조성진 CJ CGV 전략지원담당은 “모바일의 영향으로 안 좋은 얘기가 돌면 너무 빨리 흥행에 영향을 받는다. 좌석판매율이 10% 정도 나오는 영화에 계속 스크린 1천개를 줄 수는 없다. 극장에서 보기엔 과도한 스크린 배정이 되기 때문에 관을 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개봉 후 2~3주 동안 스크린 수를 보장하기에는 매주 새로 개봉하는 영화를 챙겨야 하고, 관객은 전보다 꼼꼼하게 영화의 퀄리티를 검증한다. 영화홍보마케팅사 호호호비치의 이채현 대표는 “시사회 경쟁률이 2008년 이후 최고”라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줬다. 10여년 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지금은 불경기가 ‘공짜표’를 찾는 이유다. “돈을 주고 영화를 보기에 금전적으로 부담이 커지니 시사회에 사람이 몰리는 의외의 결과를 가져온 거다. 요즘 관객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을 주고 볼만한가, 혹은 돈 주고 보기 아까운가’ 여부다.” 완성도 외에 지적 욕구 충족 혹은 소비 행위 전시도 티켓 구입에 영향을 준다. 가령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무조건 개봉하자마자 봐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던 <곡성>이나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어벤져스: 엔드게임> 같은 마블 영화, 영화를 보고 누가 더 창의적인 감상을 남길 수 있는지 SNS상에서 일종의 놀이가 됐던 <곤지암>, 재난 탈출 방법을 알려준다는 이야기가 돌았던 <엑시트>가 대표적인 예다. 영화를 본 행위가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이 없다면 그 영화를 보기 위해 굳이 돈을 내고 극장에 갈 이유가 없다. 2차적인 무언가가 수반되어야 흥행에 탄력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관계자들은 마케팅으로 영화를 흥행시키는 것이 불가능한 시대가 됐다고도 입을 모았다. 홍보마케팅사 관계자 A씨는 “마케팅은 사전 인지 선호도를 얼마나 올려서 첫날 관객수에 영향을 주느냐, 딱 그 정도의 역할만 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여름 시장에서 인지 선호도가 가장 처졌던 <엑시트>가 개봉 첫날부터 관객수 1위를 했던” 것을 언급하며 “일반 시사회로 영화를 본 관객의 SNS 입소문이 그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조성진 전략지원담당은 “영화를 알리는 것 자체가 어려운 시대”라는 점을 지적했다. “예전에는 홍보· 마케팅을 할 수 있는 채널이 케이블·영화잡지 등으로 집중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각각의 집중도가 낮다”는 것이다. 이채현 대표는 “예전처럼 마케팅 기간을 길게 가져갈 수 없다. 단기간에 인지 선호도를 높이기 위해 짧은 기간 안에 마케팅비를 많이 써야 하는 상황이다. 요즘의 마케팅은 컨설팅에 가깝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언론배급시사회 전 내지 개봉일 자정이 데드라인”이라고 말했다. 이 시점이 지나면 영화의 흥망은 관객의 입소문이 결정한다. 이는 역으로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계기도 된다. “한국영화는 아니지만 <알라딘>이나 <캡틴 마블>은 개봉 직전까지 부정적인 논란이 컸는데, 개봉 이후 반응이 역전됐다”(이채현 대표)는 사례에 더해, <걸캅스>도 개봉 전 심각한 악플에 시달렸지만 결국 손익분기점을 넘었다.

<곤지암>

‘ 역주행 ’ 가능할까

그렇다면 영화 자체의 힘으로, 개봉 첫날에는 미미했지만 점차 상영관 수를 늘려가며 흥행에 성공하는 사례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조성진 전략지원담당은 “<극한직업>이나 <완벽한 타인>은 첫날 관객수를 보고 예상한 스코어에 비해 훨씬 잘된 케이스”라며 입소문의 사례로 꼽았지만, 이들 영화의 1일차 관객수는 각각 36만, 27만명이었다. 최근 해외영화 중 <알라딘>과 <보헤미안 랩소디>가 ‘역주행’의 대표 주자로 꼽히지만, 디즈니와 이십세기폭스라는 대형 직배사가 배급을 맡았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과거 입소문 흥행의 사례로 꼽혔던 <워낭소리>(2009)(첫날 관객수 1천명, 최종 관객수 293만명), <과속스캔들>(2008)(첫날 관객수 4만명, 최종 관객수 822만명), <마당을 나온 암탉>(2011)(첫날 관객수 4만명, 최종 관객수 220만명)과는 상황이 다르다. 2019년에 <워낭소리>와 같은 영화가 흥행할 수 있겠냐는 질문에, 한 투자·배급사 관계자는 “불가능하다”고 딱 잘라 말했다. 한국영화산업 규모에 비해 너무 많은 영화가 제작되고 있고 첫주 성적이 저조할 경우 극장이 기다려줄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 역시 “지난해 흥행 성적을 보면 박스오피스 1~2위 영화 스코어가 전체의 70%를 차지한다. 2010년대 초반만 해도 박스오피스 5위 안에 꾸준히 들면 스테디셀러가 될 수 있었는데, 이제는 박스오피스 1~2위 안에 들지 못하면 손익분기점을 아예 넘길 수가 없다. 과연 <마당을 나온 암탉>이 지금 개봉했다면 관객 200만명을 넘길 수 있었을까 싶다”며 회의적으로 반응했다.

스테디셀러를 만들어야 한다

김동현 메리크리스마스 본부장은 극장과 투자·배급사가 서로의 업을 이해하며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월별 실적에 쫓기다보면 지금의 독과점적 프로그래밍을 지속할 수밖에 없다. 2~3년 계획을 세우며 서서히 조정해가야 그다음 7~8년을 안정적으로 갈 수 있다. 물에서 놀 수 있는 고기를 계속 만드는 법을 고민할 때다. 그러지 않으면 어느 순간 고기가 뚝 끊길 수 있다.” 가령 개봉 초기에 50%의 좌석점유율을 갖고 4주동안 극장에 걸리는 게 아니라, 25%의 좌석점유율로 시작해 8주 동안 달리는 것으로 균형을 맞추면 다른 영화에도 기회가 부여될 수 있다. 이것은 새로운 관객층의 유입을 이끌고, 제작자가 색다른 시도를 해볼 발판이 될 수있다. SNS가 영화를 망하게도 할 수 있지만, 구조적인 발판이 마련된다면 입소문으로 ‘반전’을 노리는 것 또한 전보다 수월한 시대다. 입소문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시스템의 변화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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