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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석, 주성치를 만나다
2002-05-03

“주성치씨, 다음 작품에 내 투자 받아줄래요?”

10년 전, <심사관>으로 아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기 위해 한국을 찾았던 배우 주성치가 10년 만에 다시 한국에 왔다. 이번에는 그가 감독, 각본, 주연을 맡은 자기 영화 <소림축구>를 홍보하기 위해서였다. 원래 그가 타기로 돼 있던 비행기는 4월22일 서울 도착 2시 반 비행기. 그러나 주성치가 인천공항에 내린 것은 예정돼 있던 기자회견 시간이 훌쩍 넘은 저녁 5시 반이었다. 홍보사쪽은 “전날 있었던 제32회 금마장영화제에서 <소림축구>가 감독상, 남우주연상, 작품상, 남우조연상 등 7개 부문의 상을 휩쓴 후유증”이라고 밝혔고, 그 후유증이란 다름 아닌 ‘축하주 과음’이었음이 알려졌다. 기자들에게 점심까지 사며 “일생에 그렇게 많은 상을 한꺼번에 받기는 처음이었다. 한번 있는 일이니 봐달라”라고 다음날 오전 새로 마련된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를 한 주성치에게 사람들은 모두 미소를 보냈다. 그날 오후, 일찍이 <소림축구>를 본 뒤 주성치와 만나고 싶은 의사를 홍보사 관계자에게 피력했던 시네마서비스(<소림축구>의 한국 배급사) 대표 강우석 감독과 주성치와의 만남이 마련됐다. 주성치가 묵고 있는 호텔의 객실에서 1시간 반 동안 마련된 이 자리는, 동석한 기자가 무색하게 격의없었고 화기애애했다. 처음 조금 서먹하던 이들은 금세 악수를 하고 차기작의 투자를 약속하고 명함을 교환했으며, 사진을 찍을 때는 선뜻 어깨동무를 했다. 이소룡과 찰리 채플린을 같이 좋아하며, 코미디는 웃기지만 슬프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두 감독은, 감독과 배급자로 사업이야기를 하다가 어느새 배우와 감독으로 연기를 논했고, 영화라는 같은 길을 가는 친구가 되어 1시간 반이 짧다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은 그 기록이다.

최수임 sooeem@hani.co.kr

강우석: 인터뷰 많이 해서 피곤하지 않나요?

주성치: 아니오, 괜찮습니다.

강우석: 나는 주성치씨 과거 영화들을 많이 봤거든요. 그때는 재밌다, 연기를 참 재밌게 한다, 하고 주성치씨를 연기자로만 봤어요. 그런데 <소림축구>는 감독까지 했잖아요? 연출도 아주 잘하시네요. 정말 너무 재밌게 봤어요.

주성치: 아, 언제 보셨나요?

강우석: 한두달 됐나요. 미라맥스에 처음 들어왔을 때, 테이프로.

주성치: 감사합니다. 감독님이 보시기에 좀 바꾸면 더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부분은 없었나요?

강우석: 그런 건 없고, 조금 더 들어갔으면 좋겠는데, 짧아서 아쉬웠어요.

주성치: 본래는 102분짜리가 있고, 그보다 더 긴 걸로 112분짜리가 있어요. 그런데 미국에서 상영을 하려다 보니까 87분으로 바뀌었습니다.

강우석: 제작자로서는 나쁠 게 없는데, 감독 입장에서는 단축하는 게 상당히 아쉬웠을 것 같아요.

주성치: 별로 그렇게 아쉽다거나 그런 느낌보다는, 영화제작자 입장에서는 짧으면 여러 번 틀 수 있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한 거고요, 그런데 누군가가 진짜로 더 긴 버전을 보기 원한다면 보여주고 싶어요.

강우석: 저는 극장용은 87분짜리로 하더라도, 비디오로라도 주성치씨의 자기 편집본을 보여주는 게, 감독 겸 주인공으로서는 훨씬 좋은 게 아닌가 합니다. 긴 것도 무리가 없다면 한국에서 비디오 나갈 때는 긴 걸로 하려고 그래요.

주성치: 그래도 좋은데요, 112분은 제가 생각하기에도 너무 길고, 87분은 너무 짧고, 102분짜리가 적당할 것 같네요.

강우석: 아, 그런가요.

주성치: 홍콩에서는 102분짜리로 상영을 했거든요. 한국 관객 기호는 어떤지 모르겠네요. 더 긴 것을 좋아할까요, 한국 관객이?

강우석: 괜찮을 것 같아요. 나는 보면서, 뭔가 좀 부족하다기보다는 시간적으로 짧은 게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주성치: 먼저 강우석 감독님께 의견을 듣고 지도를 받고 싶은데요, 제 희극영화에 대해 어떤 충고를 해주고 싶으신지.

강우석: 아니 뭐, 충고는, 나하고 색깔이 다르니까…. 나는 의도적으로 내 영화에서 사회 부조리를 보여주면서 그걸 희극화시키려 하거든요.다 보고 웃고 그러고 나갔지만 뭔가 여운이 남게 말이죠. 다만 나는 그 여운을 사회성에서 찾는 거고, 주성치씨는 사랑에서 찾는 것 같아요. <소림축구>도 보면 굉장히 짠한 사랑이 있잖아요. 그게, 내가 볼 때는 주성치씨가 여자를 굉장히 좋아하고, 밝히고, 그래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웃음), 그에 비하면 나는 여자를 별로 안 좋아하고. 그렇다고 남자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그거에서 코미디를 풀어가는 차이가 생기는 게 아닌가 싶어요.

주성치: 굉장히 잘 이해하셨군요. (웃음)

강우석: 원래 우리가 주성치씨에 대해 알고 있는 상식은, 이소룡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거잖아요. 나도 그사람 때문에 감독 되는 데 굉장히 큰 영향을 받았는데. 주성치씨는 원래 감독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던 건지, 아니면 연기자로서 나는 더이상 할 게 없다, 영화를 내가 찍을 수 있겠다, 이런 자신감으로 감독이 된 건지 궁금해요.

주성치: 연기는 말씀하신 대로 이소룡의 영향으로 했고요, 감독은, 연기생활을 계속 하다가 감독이 된 케이스죠. 그냥 감독을 해도 되지 않을까, 해서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연기를 하는 중에도, ‘이 영화는 감독이 주성치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기도 했어요. 연기자들한테 코치가 될 만한 이런저런 말들을 너무 많이 하니까, 감독님들이 그냥 ‘네가 감독해라’라고 했었죠. (웃음)

강우석: 나는 영화는 재미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이른바 예술영화 찍는 감독들이나 영화를 산업으로 이해하지 않는 순수예술가들이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로부터 굉장히 비난을 받는데, 나는 무조건 영화는 관객을 위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재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재미라는 게 웃음이든, 울음이든, 어떤 감동이든 말이죠. 주성치씨 생각도 비슷하지 않나요?

주성치: 정말 비슷합니다. 제 생각에도 영화는 대중오락입니다. 영화는 재미있어야 하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야 합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안 좋은 일이 많은데 영화까지 암울할 필요는 없죠. 그래서 코미디를 하고 있고, 지금 제 목표는 홍콩 사람들뿐만 아니라 여러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보고 좋아하는 그런 영화를 만드는 거예요.

강우석: 다른 나라 사람들이 재밌게 본다는 것은, <소림축구>처럼 소재 자체가 공감이 가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한 것 아닌가요.

주성치: 맞습니다. 소재가 중요해요. <소림축구>의 축구도 그렇고, 예전에 <식신>에서처럼 음식, 요리도 공감대가 잘 형성되는 소재지요.강우석: 지금까지의 주성치 영화들은 그 코미디가 우리 정서에 확 와닿는 것은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마니아들이 있었죠. 성룡이라든지 이소룡이라든지 이렇게 일반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게 아니고, 팬클럽처럼 있었어요. 그런데 <소림축구>는 소재 선택이 다수가 좋아하는 걸로 잘돼서, 모두가 다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주성치: 감사합니다. 저도 앞으로 더 소재선택에 신중하려고 해요.

“홍콩에는 오는 사람이 없다?”

주성치: 한국영화가 너무 발전을 빨리 해서, 이제는 홍콩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한국영화가 좋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정말 새롭고 놀라운 일은, 언제 한국영화계에 이렇게 좋은 인재들이 많이 생겨났나, 하는 겁니다. 좋은 감독들이 많고, 좋은 배우들이 많고, 좋은 아이디어들이 많고. 어떤 원리로 갑자기 이렇게 발전을 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강우석: 한국 관객의 힘인 것 같아요. 제가 감독 데뷔할 때만 해도, 관객이 한국영화는 재미없다고 했어요. 외국영화를 봐야지 괜히 지식인인 것 같은 풍조였죠. 그런데 언제부턴가 한국영화가 할리우드영화에 비해 재미가 안 떨어진다는 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과거에는 감독이 되는 과정이 도제형식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게 아니라 영화를 전공하고, 유학도 갔다 오고 이런 사람들이 90년대 초부터 영화계에 나타나기 시작했죠. 이렇게 새로운 세대들이 등장한 게 한국영화가 이만큼 온 이유가 아닌가 싶어요.

주성치: 강 감독님 말씀에 공감을 하는 게, 홍콩에는 지금 새로운 인재가 없어서 영화계가 침체돼 있거든요. 10년 전에도 저였는데, 10년이 지난 지금도 제 영화를 사람들이 보고 있으니까요. 스탭이라든지 연기자라든지 감독들이 새로운 사람이 없다는 얘기죠.

강우석: 그게 인재들이 너무 할리우드에 진출한 때문은 아닐까요?

주성치: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왜냐하면 가는 사람은 항상 가게 돼 있으니까요. 가는 사람은 가고 오는 사람이 있어야 되는데, 지금 홍콩에는 오는 사람이 없는 게 문제죠.

강우석: 주성치씨가 너무 혼자 다 해먹어서 그런 거 아닌가요?

주성치: (웃음)

강우석: 주성치씨가 홍콩영화계 대부잖아요. 파워로 말하자면 파워1인자다, 맞나요?

주성치: 일반적으로 대부라고는 말해지죠. 하지만 영화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서 제 개인의 파워가 세다고 할 수는 없고, 저는 그저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강우석: 파워원이 아니면 내가 잘못 온 것 같은데. 한국의 파워원과 홍콩의 파워원이 만나는 거라 해서 내가 온 건데. (웃음)

주성치: 저는 만약에 홍콩이나 중국에서 인재를 찾을 수 없다면, 외국에서 인재를 찾아 같이 일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강 감독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강우석: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근데 더 중요한 것은 사실은 두 나라 영화가 같이 발전하는 거예. 한국 사람이 중국 사람 데려다 인재를 키우는 거 힘들고, 거꾸로도 마찬가지잖아요. 그러니까 우선은 홍콩영화에 우리가 투자를 하고, 우리 영화에 또 홍콩이 투자를 하고 이렇게 하는 게 훨씬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제가 다음에 찍는 영화가 콜럼비아에서 자본을 대는 거거든요. 이렇게 자본교류를 하는 게 먼저 선행이 되면 훨씬 발전적으로 가지 않을까 싶어요.

주성치: 다음 작품이 어떤 건데, 콜럼비아에서 투자를 하나요?

강우석: <실미도>라고, 역사적인 사건에 관한 거예요.

주성치: 얼마 전 얘기죠?

강우석: 1971년 이야기예요.

주성치: 코미디?

강우석: 아니, 아주 진지한 영화예요.

주성치: 아, 그래요? 제 차기작은 1950년대가 배경이고,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거예요.

강우석: 코미디?

주성치: 액션코미디.

강우석: 주성치씨, 여기서 그냥 얘기할게요. 그 작품, 내가 투자 들어갈 테니까 받아줄래요? 농담 아니에요.

주성치: (놀라는 표정) 아, 그런데 스토리나 시놉시스가 필요하지 않으신가요?

강우석: (말없이 <소림축구> 포스터를 가리킴)

(일동 웃음) (주성치, 강우석과 악수)

주성치: 너무 자신있게 하겠다고 말씀하시니까, 어쩔 줄 모르겠네요. 강우석: 왜 자신이 있냐면, 차기작이 만약에 망하면, <소림축구> 2탄이 있잖아요. (웃음)

주성치: 선뜻 ‘네’라고 하기는 좀 그렇고요, 감독님과 사적인 자리를 만들어서 얘기를 해보고 싶네요. <소림축구> 2편이 굉장히 재밌을 거거든요. 그것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여기는 너무 공개적이라서. (웃음)

강우석: 그렇죠, 그렇죠. 제가 한번 홍콩엘 가죠.

주성치: 저기 명함이나…. (강 감독, 주성치에게 명함을 건넴) 제 개인연락처는 조금 있다 드리겠습니다.

“전지현씨, 기회가 닿으면 만나보고 싶어요”

주성치: (명함을 보다가) 시네마서비스가 <엽기적인 그녀> 한 데 아닌가요?

강우석: 그거, 우리가 배급했죠.

주성치: 굉장히 재밌었어요.

강우석: 전지현 때문에 재밌었던 것 아닌가요?

주성치: (웃음) 전지현씨가 예쁜 여자인 것은 사실이죠. 그러나 그것보다는 그녀의 영화 속 캐릭터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어요. 기회가 있으면 한번 만나보고 싶어요.

강우석: 전지현이 싸이더스라는 회사 소속인데, 시네마서비스랑 본사가 같은 회사거든요. 만약에 주성치씨 영화에 괜찮은 역할이 있다고 하면 전지현이 출연을 해서 그렇게 합작을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주성치: 아아. (다시 한번 악수)

강우석: 엇, 아까 투자한다고 할 때보다 더 감동하네요. (웃음)

주성치: <엽기적인 그녀>는 최근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였어요. 그쪽에 계신 분 누군가와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여기서 만나게 되는군요. 홍콩에는 자주 오시나요?

강우석: 자주는 아니고, 가끔 가죠. 우리 회사에 투자한, 미국자본회사의 홍콩지사에 가끔 가요.

주성치: 홍콩에 정말로 시간돼 연락해서 오시면 편안하게 얘기를 좀 했으면 좋겠네요.

강우석: 저는 홍콩에서 홍콩 감독들하고 과거에 많이 만났어요. 서극, 임영동, 홍금보. 여배우는 관지림이라는 여배우 한번 인터뷰해봤었고요.

주성치: 관지림, 예쁘던가요?

강우석: 굉장히 예뻤죠. 그때 느낌이, 주성치씨가 지금 전지현 생각하는 거랑 비슷했던 것 같아요. (웃음)

강우석: 주성치씨, 여태까지 영화 중에 <소림축구>가 제일 해외수출이 잘되는 영화 아닌가요?

주성치: 가장 멀리까지 가서 홍보하는 영화예요. 미국, 일본, 한국.강우석: 해외수출이 안 되는 영화도 만들었을 텐데, 홍콩, 대만 이런 쪽만 트는 영화의 경우 제작비는 보통 얼마 정도 들이나요?

주성치: 홍콩달러로 대략 2천만달러거든요. 그러니까 300만달러 정도.

강우석: 많지도 않네요. 그럼 그게 홍콩, 대만에서 다 거둬들여지나요?

주성치: 저는 말하자면 흥행메이커이기 때문에, 그 정도는 다 뽑아낼 수 있습니다. <소림축구> 같은 경우는 정말로 흥행에 성공했고요.

강우석: <소림축구>는 제작비가 얼마나 들었나요?

주성치: 400만달러 정도. 그게 많이 든 건가요, 아님 많이 안 든 건가요?

강우석: 우리나라도 지금, 일반적인 영화가 20억원에서 25억원 정도 되고, 조금 돈 들인다 그러면 400만달러 정도죠. 내 차기작 경우는 대충 잡힌 예산이 1천만달러예요.

주성치: 제 다음 작품은 1950년대 배경이고요, 꼬마 시절 이소룡도 나옵니다. 쿵후계의 실화인데, 약간 바꿔서 하는 거예요. 그때 사람들의 후손들도 있고 해서, 이름 같은 건 많이 바꿀 겁니다.

“나는 홍콩의 송강호”

강우석: <소림축구> 시나리오는 어느 분이 쓰신 건가요? 정말 아이디어가 좋아요.

주성치: 저랑, 다른 친구 한명이랑.

강우석: (침실에 있는 두 남자 중 서 있는 사람을 가리키며) 어디, 지금 저기 전화 받으시는 분이오?

주성치: 아니, 그 옆에 침대에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이오. (창 밖을 바라보며 앉아 있던 시나리오 작가 거실쪽으로 와서 동석한다.)

강우석: (통역에게) 제가 한국의 주성치라고 소개해주세요.

주성치: 잠깐, 한국의 주성치는 송강호씨 아닌가요?

강우석: (잠시 생각하다가) 송강호는 돈이 별로 없잖아요. 송강호는 <소림축구> 2탄에 투자 못해요. (웃음)

주성치: 그래서, 한국의 주성치는 송강호씨가 맞아요. 저도 돈이 없거든요.

(주성치는 송강호의 팬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반칙왕>이 홍콩에서 개봉했을 때 송강호의 목소리를 더빙하기도 했다. 당시 송강호는 홍콩에 ‘한국의 주성치’로 홍보됐고, 주성치는 그에게 “같은 코미디를 하는 사람으로서 호감을 느꼈다”라고 기자간담회에서 말했다. -편집자주)

강우석: 나는 <소림축구> 보면서 울지는 않았지만, 찡한 적이 많았어요. 주성치씨도 찰리 채플린을 좋아한다는데, 나는 코미디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감동이라고 생각해요. 감동이라는 게 무슨 눈물을 짜내고 그런 게 아니고, 사회적인 현상에 관한 것이든 남녀간의 사랑에 관한 것이든 뭉클한 게 있어야 된다는 거거든요. 감동이 없는 코미디는 웃고 나면 끝이에요. 관객이 실컷 웃고 보고 나와서 비웃는 영화들이 있어요, <재밌는 영화>처럼. 그런데 <소림축구>는 보고 나면, 분명히 보는 동안 그냥 웃기는 웃었는데 그냥 웃은 것 같지가 않은, 그런 영화예요. 웃었지만, 그 속에 숨어 있는 사랑 얘기가 있어서 그렇죠. 인간이, 들어 있는 거죠. 코미디가 그런 걸 녹여내지 못하면 실패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주성치: 어떤 장면이 마음에 와 닿으셨나요?

강우석: 음, 주성치씨가 조미 데리고 밤에 백화점 들어가서 옷 구경 시켜줄 때. 그때도 그랬고, 또 조미가 이티처럼 하고 나타나서 결승전하는 축구경기장에 들어올 때. 우스꽝스러운 것은 있지만, 웃음보다는 나한테는 뭉클함이 컸어요.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 느끼는 거죠. 그리고 저는 이 영화의 아이디어 중 백미는 에필로그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에,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쿵후를 하는 모습. 그게 아주….

주성치: 저도 그 장면이 가장 맘에 듭니다. 처음의 희망사항이 다 실현되는 장면이죠.

강우석: 맞아요. 주차도 손으로 한번에 팍 끝내고, 바나나 껍질 밟아도 안 넘어지고, 정원사도 나무를 가위손처럼 후닥닥 다듬고…. (웃음)

“이렇게 큰 한국 시장을 왜 그냥 두었나…”

강우석: 배우로서 주성치씨를 얘기하자면, 나는 주성치씨가 이소룡 이후에 가장 연기 잘하는 배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내가 이 자리를 만들어달라고 한 거예요. 원래 쿵후 연기하는 배우들 보면 몸으로 때우는 게 많고 억지스러운 연기가 많은데, 주성치씨는 표정연기가 압권이에요. <정무문> 이후 이소룡의 연기를 계승하는 유일한 배우가 주성치씨 아닌가 싶어요.

주성치: 그런데 저는 액션연기를 더 많이 하고 싶어요. 나이가 들어가니까, 지금 아니면 이제 많이 못할 것 같거든요.

강우석: 물론, 액션 좋은데, 액션이 갖고 있는 외적인 것들이 뒷받침이 되니까 더 좋죠.

(강우석 감독이 이 말을 하는 동안, 주성치, 어느새 시나리오 작가와 얘기를 하고 있다. 강우석 감독, 조금 쳐다보다가, ‘그냥 얘기하라고 해요’라고 통역에게 말한다. 잠시 뒤)

주성치: 아, 지금 이 친구하고 다음 작품 시놉시스를 감독님한테 어떻게 보내드릴까 얘기하고 있었어요. (웃음) 어쩌면 조금 있다가 써드릴지도 몰라요.

(일동 웃음)

강우석: <소림축구>는 처음에 어떻게 구상한 건가요?

시나리오 작가 창켄청: 그게요, 원래 주성치씨가 사람을 발로 잘 차요. 거기서 처음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웃음) 진짜예요. 자꾸 발로 차니까, 그러면 차라리 축구를 해라, 이렇게 된 거죠. (웃음) 저는 원래 일상생활 속에서 주성치씨가 이상한 행동을 하면 자꾸만 해보라고 시키거든요.

강우석: 그래도 주성치씨가 손님을 차지는 않죠? (웃음)

주성치: 그럼요. 쿵후는 혼자 하는 거예요. 혼자 연습을 한다고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혼자 쿵후를 독학으로 배웠어요.

강우석: 이소룡 보고서요?

주성치: 네. 혹시 쿵후 하시나요? 아님 태권도?

강우석: (조금 당황하며) 아니, 태권도는 우리 형이 선수였는데, 보면서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웃음)

주성치: 저도 축구는 못해요.

강우석: 그럼 어떻게 이걸 찍은 거죠?

주성치: 컴퓨터그래픽으로 했죠. (웃음) 2가지 희망이 있는데요, <소림축구>가 흥행에 성공했으면 좋겠고, 한국이 축구를 잘했으면 좋겠습니다.

강우석: <소림축구>는 흥행에 확실히 성공할 거예요.

주성치: 정말로, 한국에서 이 영화가 어떨 것 같나요?

강우석: 올해 우리나라에서 개봉하는 모든 외화들 중 베스트 5에 들 것 같은데요.

주성치: 지금까지 한국 최고 흥행외화는 <타이타닉>인가요?

강우석: 네.

주성치: 올해는요?

강우석: <반지의 제왕>. 그거 우리가 수입한 영화인데, 2편이 겨울에 들어오거든요. 혹시 <소림축구>가 6위할 것 같으면, 그걸 내년으로 넘겨버릴게요. (웃음)

강우석: 이 자리를 다음주에 마련할 걸 그랬나봐요.

주성치: 왜요?

강우석: 다음주에 내가 파워원으로 <씨네21>에 나오니까. (웃음)

주성치: 다음주에 한국에 다시 와서 그 잡지를 보지요. (웃음) 한국은 이제 자주 오고 싶어요. 10년 동안 못 오다가 와 보니까, 10년 전이랑 너무 달라요. 이 큰 시장을 그냥 두었나, 하는 생각이 들고, 열심히 해서 그동안 못한 것을 보충하고 싶습니다.

강우석: <소림축구>는 마니아뿐만이 아니라 한국의 일반인들에게 주성치를 알리는 좋은 작품이 될 것 같아요.

주성치: 이렇게 최선을 다해주셔서 감사하고요, 제 영화로 돈 많이 버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제 역량도 커지는 거니까요.

“버는 돈은 인력양성에 쓴다”

강우석: 나는 이제는 내가 영화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재 개발하는 데 관심이 많아요. 인재에 돈을 쏟아붓겠다, 하는 생각이에요. 버는 돈의 재투자를 저는 다른 데가 아니라 인력양성에 쓸 거예요.

주성치: 마찬가지입니다. 홍콩에는 인재가 없다는 게 큰 문제거든요. 제 영화에서 저는 신인들에게 기회를 주려고 해요. 제가 앞장서서 연기나 감독을 하고 신인들이 저를 따라올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지금처럼 일할 거예요. 지금 홍콩은 영화산업이 침체돼 있어서 영화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또 사람이 줄어드니 침체되고, 하는 악순환 속에 있습니다. 이런 것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좋아질 거라 봐요. 제 희망입니다. <소림축구>는 역경을 딛고 일어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침체된 홍콩영화계가 소림축구단처럼 다시 활력을 되찾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어요.

강우석: 얘기하면서 놀라는 게, 정말 생각하는 게 나랑 여러 가지로 비슷한 것 같아요. 영화를 만드는 짜임새를 보면서, 나랑 통할 거라는 예감은 했지만. 사람 발로 차는 것만 빼면 나랑 다 똑같은 것 같아요. (웃음) 오늘 밤에 김상진 감독 등등 코미디 감독들 많이 <소림축구> 보러 올 건데, 내가 그랬어요. “와서 봐라, 이게 바로 코미디다.” 내가 만들 수 있는 영화는 아닌데, 후배들한테 이런 영화 좀 만들어보라고 보여주고 싶었어요.

강우석: 마지막으로 이건 내 추측인데, <소림축구> 영화 만들 때, 아저씨들의 비애보다 주인공과 만두 빚는 여자의 사랑을 그려내는 게 더 어렵지 않았나요? 내가 보기엔, 아저씨들은 양념이고 사랑이 메인스토리였어요.

주성치: 글쎄요, 무엇이 더 어렵고 더 쉽다고 말할 수는 없군요. 아무래도 제일 어려운 건 이 모든 이야기를 처음 생각해내는 거 같아요.강우석: 하나만 더. 맥주병 머리에 맞는 것은 위험하지 않았나요?

주성치: 저랑 같이 맥주병 맞던 노인 분(대사형 역 황일비-편집자 주)은 위험했죠, 나이가 있으시니까. 다행히 그분, 남우조연상 타셨어요. 저요? 저는 괜찮았어요. (웃음)

<씨네21> 대담을 포함, 일련의 언론매체들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주성치는 그날 밤 명보극장에서 열린 일반시사회 무대에 올라 팬들에게 인사했다. 강우석 감독은 후배 감독들과 그 극장 객석에 앉아 있었고, 객석에 앉아 있는 강우석 감독이 사회자에 의해 소개되자, 주성치와 그의 친구들은, 마치 또래 친구라도 발견한 양 손을 높이 흔들어 인사하고, 전화하라는 손모양을 귓가에 가져다 대며 장난스러운 포즈를 취했다. 조명을 받으며 강우석 감독은 조금 얼굴을 붉혔고, 곧 그는 <씨네21>의 한 기자와의 통화에서 <소림축구> 2탄 투자를 확정지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진행 김현정 parady@hani.co.kr 정리 최수임 sooeem@hani.co.kr 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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