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태어난 뒤 웬만해선 저녁 약속을 안 잡기까지 시행착오가 수차례 있었다. 여느 기자들이 그렇듯이 ‘술 마시고 집에 들어가는 삶’을 열렬히 실천하다가 육아를 시작한 3년 전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집에 제때 들어가지 않으면 아내는 독박육아를 해야 한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퇴근한 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이에게 저녁밥을 먹이고, 기저귀를 수시로 갈며, 안 씻으려고 도망치는 아이를 붙잡아 온갖 감언이설로 회유해 씻기고 ‘치카치카’(양치질)까지 시킨 뒤 우유를 먹이고 책을 읽어주며 재우고 나면 녹초가 된다. 밖에서 내가 술을 마시면 아내 입에서 단내가 난다는 불공평한 사실을 깨달은 뒤에야 많은 죄책감이 들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육아를 하면서부터 당연하게 생각했던 한국 사회의 일상이 여성에게 얼마나 기울어진 운동장인지 뒤늦게 실감했다.
시인 서한영교가 쓴 <두 번째 페미니스트>를 읽고 또 부끄러워졌다. 이 책은 페미니스트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딱딱한 개론서가 아니다. 남성이 페미니스트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처세술 책도 아니다. 어릴 때부터 시집을 죽도록 읽던 문학 청년이 한쪽 눈이 멀어가는 여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100일 동안 육아를 하면서 ‘남성아내’가 되어가는 과정을 잊지 않기 위해 생생하게 기록한 이야기다. 아내가 산후조리하는 동안 모든 집안일을 도맡아하고, 마음을 다해서 아이와 아내를 돌보기 위해 육아휴직을 썼으며, 매일 미역국을 끓여 미역국 장인이 됐다는 그의 기록들을 보고 어딘가로 숨고 싶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초보 육아 시절에는 마감날이라는 이유로 예민하게 행동하고, 아이가 아픈 날에도 취재 때문에 늦게 들어왔으며, 잠을 자던 아이가 깰 때 제때 일어나지 못해 아내에게 혼난 기억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똑같은 육아를 하는 처지인데도 서한영교가 자신 안에 있던 여성성을 발견해 키워가는 사연들을 보면서 존경스러워했고, 그만큼 반성도 많이 했다.
육아를 성실하게 하는 남자들에게는 살림과 아이를 돌보는 일 하나하나가 페미니즘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럼에도 태어나자마자 남성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사회적 혜택을 받았기에 페미니스트보다는 ‘두 번째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모두가 동등하게 사는 방법은 멀리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