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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수리수리 집수리>
김송희(자유기고가) 사진 백종헌 2019-09-17

<수리수리 집수리> 김재관 지음 / 문학동네 펴냄

지은 지 30년 된 빌라에 살고 있다. 옥상은 방수 처리가 미흡해 긴 장마 기간이면 금세 비 샌 자국이 누런 벽지 위로 올라오기 시작한다. 어느 날 문에 ‘같이 돈을 모아 노후화 빌라를 수리하자’는 어느 주민의 글이 포스트잇으로 붙어 있었다. 여덟 세대밖에 살지 않는 빌라지만 아무도 그 포스트잇에 답을 하지 않았고, 보수 공수는 흐지부지되었다. 빌라 여덟 세대 중 한 주민을 빼고는 전부 월세 세입자이고, 남의 집을 굳이 내 돈 내고 고쳐줄 의사가 없었던 것이다. 나 역시 이 집에 3년째 살고 있지만 내 명의가 아닌 집은 거쳐가는 집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오랜 시간 머무는 곳이지만 삶을 담는 공간보다는 부동산으로서 재산적 가치가 더 부각되는 것이 한국 사회의 집이다. 김재관 건축가의 <수리수리 집수리>는 오래된 집과 그 동네의 사람들, 그 집을 수리하는 기술자들의 현장을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생생하게 그려낸 책이다. 앞집, 옆집과 다닥다닥 좁은 간격으로 붙어서 햇빛도 잘 안 들어오던 80년대 지은 낡은 주택이 점차 실용적이고 사람 살기 좋은 공간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글과 사진으로 보는 재미도 크지만 무엇보다 이 책의 매력은 기술자들의 수다 한마당이다. 조적공(벽돌 쌓는 사람)과 목수, 미장 등 집 한채를 수리하는 데에는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필요하고, 20년 이상 전국을 떠돌며 집을 지어온 그들의 대화에는 삶이 녹아 있다. 이것은 단순한 수다가 아니라 노동요다. 세집 살림하던 아버지의 여섯째 아들로 태어난 어느 목수의 인생사, 공사 중 자재가 옆집 옥상으로 넘어가 주거침입죄로 고발당한 건축가의 이야기, 집수리를 하다보면 어김없이 마주치는 동네 민원과 주민들과의 입씨름도 흥미진진하다. 율리아네 집에서 시작해 다섯채의 집을 수리하는 과정을 따라가면 그 현장에서 같이 벽돌을 쌓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문장이 맛깔나는 건축 에세이다.

남향

'삼대가 공덕을 쌓아야 남향집에서 살 수 있다'는 남향집에 대한 신뢰는 옳을까? 남향집은 겨울이면 태양의 고도가 낮아져 빛이 깊이 들어오고 여름이면 그 반대가 되어 실내공간을 쾌적하게 만드는 합리적인 방위각이다. 그렇다고 볕이 골고루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거실, 안방이 남쪽을 차지하면 나머지 공간들은 다른 곳에 배치될 수밖에 없으므로 결국 어두운 계단실, 어두운 건넌방, 어두운 부엌, 어두운 창고가 만들어진다. 그것은 선택이라기보다 밝음으로부터 소외된 결과일 뿐이다. 남향의 미덕보다는 그로 인한 환경적 우열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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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수리수리 집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