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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영화] 김요한 왓챠 이사의 <아무도 모른다>

초딩에서 어른으로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야기라 유야, 기타우라 아유 제작연도 2004년

나는 배경음악이 없는 영화를 못 본다. 어려서부터 그랬다. 카메라 움직임이 느리거나, 장면이 오래 머무는 작품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꼬맹이 시절 할리우드영화에 흠뻑 젖었던 탓일까. 모름지기 영화란 스토리와 구성이 빡빡하고, 인물과 사건은 무조건 개연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촘촘한 스토리보다 감정이나 정서가 중시되는 영화는 늘 우선순위에서 밀어두었다. 이런 나의 영화 취향이 깊이 없고 천박하다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어쩌겠나, 어느덧 그게 내 취향이 된 것을. 영화의 여백미를 즐기는 사람이 미식가라면, 나는 분명 초딩 입맛이다. 자극적인 맛을 가진 음식이 건강에도 좋은 경우는 별로 없다. 설탕과 소금, 조미료와 향신료를 듬뿍 넣은 음식은 맛이야 끝내주지만, 내내 그것만 먹으면 탈이 나게 마련이니까. 밋밋하고 슴슴한 밥과 반찬을 오래 먹을 수 있는 이유가 그 때문이겠지. 어떤 면에서는 영화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그런 기준에서 보자면 나는 꽤 오랫동안 편식을 해온 셈이다. 그게 편식인지도 모른 채로.

30대에 접어들어서야 불균형한 내 영화 입맛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어른이 된 것일까? 뚜렷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이 영화를 본 이후 서서히 그렇게 됐던 것 같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 <아무도 모른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전국을 휩쓸던 때로 기억한다. 최민식의 연기가 압권이라고 모두가 떠들던 그때, 이름 모를 14살 소년이 칸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그것도 역대 최연소로. 중간고사 때문에 시상식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시상이 이뤄질 때는 자고 있었다는 아이. 도대체 어떤 영화기에 그러나 싶어서 영화관을 찾았다가 먹먹함을 한껏 짊어지고 극장 문을 나섰던 기억이 난다.

영화는 실화를 모티브로 제작되었다. 실화를 다룬 작품에는 잘 짜여진 이야기가 담아낼 수 없는 깊이와 감동이 있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정교한 구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던 내가, 영화를 보는 시각을 바꾸게 된 계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그렇다고 초딩 입맛이 단번에 어른 입맛이 되었을 리 없지만. 나는 그 후로 차근차근 영화를 보는 입맛의 다양함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실화를 그대로 옮기기보다, 아이들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인터뷰. 이 영화는 많은 사람들을 성장시켰다. 연기하는 배우도, 배우가 연기한 극중 인물도, 스크린 너머 그들을 바라보는 관객도. 아마 영화를 만든 본인들도 이 영화로 꽤나 성장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많은 이의 성장을 이끌어낸 이 영화에는 O.S.T가 거의 없다. 현란한 음악이, 촘촘한 스토리가, 착착 맞물리는 구성이 영화의 전부가아님을 증명한 셈이다.

영화를 반복해서 볼 자신은 없다. 다루는 이야기가 너무 무거워서. 특히나 내게 아이들이 생긴 후로는 더더욱. 하지만 언제든 꼭 한번은 꺼내 볼 요량으로 고이 간직하고 있다. 언젠가 내 아이들이 “촘촘한 영화가 짱이야”라고 내게 허풍을 떨기 시작할 때쯤.

●김요한 왓챠 마케팅 이사. 젊은 시절 10년을 기자로 살았다. 영화 팟캐스트 <김프로쇼>를 시작으로, 인생 2막은 영화에 매진하려고 애쓰고 있다. 성장영화를 좋아한다. 세상에 좋은 이야기를 남기고 떠나는 것이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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