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의 주 내용과 관련된 것은 이른바 총칭대명사인 he 부분의 he를 문맥, 소리, 기분에 따라 they, she, one, I, you, we로 수정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정치적인 변경입니다. 애초에는 강한 저항감이 들어 좀처럼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지만, 최종적으로 he가 의미하는 것은 he 외에는 아니라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인정한 저로서는 에세이에 나오는 총칭대명사를 he로 그대로 둘 수는 없었습니다.” 소설가 어슐러 르 귄의 강연과 에세이를 모은 평론집 <밤의 언어> 서문은 글의 윤리에서 가장 ‘달라진 요구’를 보여준다. 이른바 ‘정치적으로 올바른’이라는 표현 아래 묶이는, 인간 전체를 대표하는 존재로서 ‘일반적으로’ 남성을 내세우는 관습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한국어에서는 ‘그’ 혹은 ‘남자’라는 말 대신 ‘사람’이나 ‘인간’이라는 말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데, 이 경우도 영어에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몇년간 여성단체가 지적한 것처럼, 한국어에서는 여성일 때만 여성을 강조하며, 부정적이거나 대상화할 때 더욱 그런 양상을 띤다. 남자 교사가 여자 제자를 성추행하는 기사에서 주어는 ‘교사’라고만 되어 있고, 피해 학생은 ‘여학생’이라고 불린다. 남학생이 여학생을 폭행한 기사에서 가해자는 ‘학생’으로, 피해자는 ‘여학생’으로 표기된다. 어슐러 르 귄은 <어둠의 왼손>을 논한 1976년의 에세이 <젠더는 필요한가?>에서 페미니스트에게는 질타를 받고 남성 우월주의자들에게 옹호받은 비참한 경험을 언급한다. 여기에 대해 어슐러 르 귄은 텍스트를 그대로 싣고, 주석과 해설, 그리고 자기비판을 덧붙였다. 이 책은 1979년에 초판이 발간되었고 1992년에 개정판이 나왔다. 세상이 바뀌고, 과거의 세상에 충실했던 글은 더이상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 그리고 과오를 인정하는 사람만이 새로운 독자들에게 읽힐 기회를 얻는다.
<밤의 언어>는 어슐러 르 귄을 읽어온 사람, 혹은 소설창작의 작동원리(?)를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매력적인 글 모음집이다. 그의 소설 속 세계인 ‘어스시’에 대해 창조해낸 것이 아니라 “발견한 것이다”라고 말하는 르 귄의 어조는 얼마나 단호한지. 이 책에 실린 글 중 <SF와 브라운 부인>을 특히 추천하고 싶다. “내 생각에 소설의 아름다움은 항상 번민을 동반하는 듯하다. 소설은 시와 음악과는 달리 초월이나 이해를 넘어선 평화를 가져다줄 수 없다.” 왜냐고? 소설은 혼탁하고, 유연하며, 창조적이고, 적응력을 갖춘 예술이기 때문에. <밤의 언어>라는 제목으로 묶인, 소설에 대한 거장의 애정고백을 읽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