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본명으로 오해하곤 하는 ‘김겨울’이라는 이름은 사실 필명이면서 예명이다. 음악을 하겠다고 곡을 쓰고 공연을 하러 돌아다니던 시절 지었다. 본명이 너무 평범해서 기억에 남을 만한 이름을 하나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기에는 어릴 때부터 내 이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탓도 있다. 이름을 부르면 한반에서 4명이 손을 들곤 했으니까. 뭔가 멋진 이름을 새로 짓기로 결심하자마자 곧바로 ‘김겨울’이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누가 쓰고 있는 이름일 것 같아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보니 뮤지션 중에는 같은 이름을 쓰는 사람이 없었다. 인스타그램에 검색했을 때는 수많은 집의 귀여운 반려동물을 보게 되긴 했지만. 겨울, 하고 발음하면 ‘ㄱ’과 ‘ㅕ’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고, ‘ㅇ’과 ‘ㅁ’에서 따뜻한 울림이 돈다. 나는 그게 내 이름이 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그래서 내 이름은 ‘김겨울’이 됐다. 그 이름으로 몇년 동안 음악도 하고 유튜브도 하고 책도 냈다. 나는 간헐적으로 아예 개명을 할지 고민하는 6년차 김겨울이다.
두개의 이름을 가지게 되면서 나는 두 그룹의 사람들을 조금 귀여워하게 되었다. 나와 원래 친했던 친구들은 사람들(주로 구독자들)이 오해하는 걸 막기 위해, 혹은 내가 ‘김겨울’이라는 이름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나를 ‘겨울’이라고 부른다. 짧게는 수년간, 길게는 십수년간 나를 ‘지혜’라고 부르던 친구들이 사람들 앞에서 나를 ‘겨울’이라고 부르는 걸 들을 때면 왠지 미소가 씰룩 비어져나온다. 내가 지은 이름을 아껴주는 나의 친구들. 다른 한쪽에는 내가 ‘김겨울’일 때 나를 처음 만난 사람들이 있다.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그중 친해진 누군가가 나를 ‘지혜’라고 부를 때, 나의 얼굴에는 또 한번 미소가 비집고 나온다. 그 낯선 어감, 그 친밀감, 그 반가움. 이제 너는 나의 본명을 부르는 사람이 되었구나. 내가 살아온 이름을 불러주는 나의 친구들.
얼마 전 나온 김애란 작가의 첫 산문집 제목은 <잊기 좋은 이름>이다. 여기엔 단어가 몇개 생략되어 있다. 책의 마지막에 수록된 글 <잊기 좋은 이름>의 마지막 문장에 그 생략된 단어들이 있다. “세상에 ‘잊기 좋은’ 이름은 없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를 때 우리는 그 사람 전체를 부르는 것이다. 그 사람이 살아온 삶과 그의 몸 전체를 호출하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을 담아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을 우리는 사랑하게 되고 마는 것일까. 그런 의미에서 개명에 대한 고민은 보류해두기로 했다. 두 이름 모두에 나의 몸과 삶이 있다. 너무 흔해 마음에 들지 않던 본명은 이름 뒤에 숨기 좋다는 이유로 좋아하게 됐다. 무엇보다 내 두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들의 마음을, 두 이름 사이를 오가는 긴장을, 그 사람들이 불러주는 내 삶의 어떤 단면을, 아직은 소중히 가지고 있고 싶다. 그것은 이름을 두개 가진 사람의 특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