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당했다는 사람은 많은데 자기가 차별했다는 사람은 참 보기 어렵다. 높은 확률로 내가 차별을 당할 때가 있다면 내가 차별을 할 때도 있을 텐데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쓴 김지혜는 프롤로그에서 두 표현을 예로 든다. 이주민에게 하는 “한국인 다 되었네요”라는 말과 장애인에게 하는 “희망을 가지세요”라는 말. 말하는 사람은 격려한답시고 건넨 말이지만, 이주민은 한국인이 ‘다 되었다’는 말에 자신이 아무리 한국에서 오래 살아도 한국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깔려 있어서 모욕적으로 느낀다. 장애인의 삶에는 당연히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후자의 말도 모욕이 된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제목처럼, 일상의 특권 때문에 불평등을 보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설명부터, 차별이 어떻게 지워지는지, 나아가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논쟁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폭넓게 다룬다. ‘역차별’이라는 말이 어떤 맥락에서 등장했고 왜 문제인지, ‘공정한 차별’이라는 생각과 능력주의의 함정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널리 퍼졌는지, 이 책은 꾸준히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논란을 소개하는 한편 관련된 논의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사회학 용어들을 알기 쉽게 정리해 일러준다. ‘우리’와 ‘그들’을 가르는 경계는 국적을 비롯해 성별, 장애, 나이, 종교, 가족 상황, 학력, 지역,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등으로 다양하다. 또한 인간은 다면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차별에 일차원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으로는 문제가 충분히 해결되지 않는다. 예컨대 흑인이면서 이성애자 남성인 사람은 인종차별의 문제만 없다면 주류가 된다. 그렇다면 여성이고 흑인이면서 동성애자라면 어떻게 차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킴벌리 크렌쇼의 교차성의 문제는 2018년에 있었던 예멘 난민 수용과 관련한 논의와 더불어 설명된다.
중립성
인정은 단순히 사람이라는 보편성에 대한 인정이 아니라 사람이 다양하다는 것, 즉 차이에 대한 인정을 포함한다. 집단의 차이를 무시하는 ‘중립’적인 접근은 일부 집단에 대한 배제를 지속시킨다.(18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