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해외여행을 갔을 때 나에게는 실현하고픈 로망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숱하게 보았던 영화 속 한 장면 재현하기. 푸른 잔디밭의 큰 나무 그늘 아래 누워 책을 읽고 싶었다. 그런데 그 지역에 살지 않는 여행자가 그 장면을 구현하는 데는 수많은 난관이 존재했다. 일단 머무는 동안 날씨가 좋아야 했고(전날 비라도 오면 잔디가 젖어 누울 수 없다), 걷다가 언제 공원이 나올지 모르니 읽고 싶은 책을 내내 배낭에 넣어 다녀야 하고, 잔디에 사람이 누워도 괜찮은 공원인지 주변 분위기도 살펴야 한다. 맨발에 벌러덩 누워야 하니 옷차림도 자유로워야 하고 등에 뭐가 묻을 수 있으니 담요도 있어야 한다. 일단 날씨가 너무 덥거나 추워도 낭만과는 멀어지니 일기가 도와줘야 한다. 아, 이렇게 눈치 보고 챙길 게 많은 것부터가 이미 동경했던 ‘자유로운 무드’와는 멀어지고 만다. 야외에 누워 책을 읽다가는 뙤약볕에서 열사병으로 사망하기 좋은 대한민국의 8월 한복판 <씨네21> 책꽂이에는 여행책, 사회인문서, 산문집과 작가들의 연애담을 묶은 책이 꽂혔다.
이렇게 보이는 것과 실제 해보는 것, 동경하는 것과 구현하는 것 사이에는 드넓은 강이 흐른다. 당대에는 가십으로 소비되었던 유명 작가들의 일화들을 소개한 <미친 사랑의 서>도 상상과 실체의 차이가 큰 작가의 사생활을 보여준다. 글은 위대하나 사생활의 행실은 좋게 봐줄 수 없는 작가들의 일면을 보면 실망도 뒤따른다. 책 제목이 ‘사랑의 서’가 아닌 ‘미친 사랑의 서’인 이유가 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일상에서 쉽게 지워지는 차별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룬다.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논쟁의 의미와 역차별이라는 말이 어떻게 쓰이기 시작했는지, 한국 사회의 구체적인 사건들을 소개하는 한편 차별과 관련된 사회학 용어들도 쉽게 정리했다. ‘문지 에크리’는 문학과지성사의 산문 시리즈로 첫 번째로 출간되는 4권의 책은 김현, 김혜순, 김소연, 이광호의 산문집이다. 에세이란 영역을 한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펼쳐놓는 것임을 상기할 때 ‘문지 에크리’ 시리즈의 산문들은 작가들의 다양성, 개성을 엿볼 수 있는 기회다. <스물다섯, 서른, 세계여행>은 스물다섯 동생과 서른의 언니, 두 자매가 215일 동안 전세계를 여행한 여정을 정리한 여행기다. 정보보다 감상에 충실해 누군가의 여행기를 블로그를 통해 실시간으로 읽는 느낌을 준다. 독서보다는 여행이 더 고픈 계절이지만, 시원한 실내에서 천천히 책 속으로 빠져드는 것만큼 좋은 피서법은 없다. 이 더위가 무던히 지나가길 책을 읽으며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