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친구가 연구실을 방문했다. 이 친구는 다소 괴짜로 알려져 있었는데, 특히 길에서 아무 물건이나 주워 그것들로 생활 소품과 예술 작품을 만드는 데 솜씨가 있었다. 그날은 품에 한 가득 나뭇가지들을 가지고 연구실에 들어왔다. 근방의 공터에서 주웠다며 나뭇가지들이 괜찮아 보이냐고 물었다. 나는 그 질문에 답은 않고 “그것들을 어떻게 집에 가져가려고?”라고 되물었다. 친구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그렇지. 이걸 다 들고 버스를 탈 수는 없지.” 친구는 떠날 때 가장 큰 나뭇가지 하나를 내 연구실에 놓고 가며 말했다. “이건 가져가기 힘들 것 같아.” 나는 별생각 없이 그 나뭇가지를 연구실에 놓아두었다.
그때부터 예상치 않은 일들이 전개되었다. 내 연구실을 방문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나뭇가지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뭇가지가 어떻게 내 연구실에 들어왔는지를 설명하는 일이 간단치 않았다. “저에게는 괴짜 친구가 하나 있습죠. 그 친구는 길에서 물건들을 줍는 취미가 있습니다. 뭐 그리 특별한 취미는 아니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어느 날은 나뭇가지에 마음이 꽂혔나 봅니다….”
나뭇가지를 어떻게 들이게 됐나를 자세히 설명하면 뭔가 어색해지고 그 어색함을 없애기 위해 부연설명을 하면 더 어색해질 것 같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나는 이야기를 지어내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제 친구가 선물로 줬습니다”였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도대체 왜 나뭇가지를 선물로?”라는 질문이 되돌아왔다. 두 번째는 “연구실 인테리어 소품으로 좋겠다 싶어 산책하다 집어 왔습니다. 나뭇가지가 잘생기지 않았나요?”였다. 실제로 나뭇가지는 짙은 갈색에 멋진 브이자를 그리며 두 갈래로 뻗어 있었다. 하지만 이 대답 또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돌아왔다. 그외의 다른 이야기들도 비슷한 반응을 이끌어냈다.
어느 날 연구실 문을 누가 노크했다. 연구실을 관리하는 미화 노동자분이었다. 그분은 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이 나뭇가지요. 버리는 건가요? 아니면 연구실에 두신 건가요? 치울까 말까 며칠 고민했거든요.” 내가 말했다. “그러게요. 그게 참 애매합니다.” 그분이 다시 물었다. “버릴까요?” 나는 잠시 뜸을 들이고는 답했다. “네, 버려주세요.”
드디어 나뭇가지의 운명이 결정됐구나 싶었다. 그런데 다른 질문이 이어졌다. “그리고 저 상자는 버릴까요? 그리고 저거는요?” 내가 물었다. “제 연구실에 버리는 건지 아닌지 애매한 물건이 많은가요?” 그분이 답했다. “가끔 있죠.”
우리는 그 자리에서 나뭇가지뿐만 아니라 몇개의 물건들의 운명을 함께 결정했다. 다른 합의도 이끌어냈다. 쓰레기통에 들어간 물건은 무조건 버리는 것이고 들어가지 못하는 크기의 물건 중에 버릴 것은 “버림”이라는 메모를 붙이기로. 나는 이 과정에서 알게 됐다. 따지고 보면 그 용도나 처분이 애매한 물건이 참 많다. 그 애매함이 나쁘지 않다. “이 뭣고?”라는 질문은 숱한 이야기와 대화와 만남을 가지친다.
한데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 이야기가 진짜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내가 앞서 사람들에게 지어내 들려준 것처럼, “나뭇가지에 관한 몇 가지 거짓말들” 중 하나라고 생각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