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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영화] 황효진 칼럼니스트의 <땐뽀걸즈>

그곳에도 삶은 있으니까

감독 이승문 / 출연 이규호, 김현빈, 박혜영, 박시영, 심예진, 김효인, 이현희, 배은정, 박지현 / 제작연도 2016년

부산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과 함께 서울로 옮겨온 사람으로서 서울과 그외 지역에 관한 이야기를 떠올릴 때면 늘 복잡한 심경이 된다. 서울 중심의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 그런데도 여전히 서울 안에 머물고 싶은 개인의 욕망 사이에서 언제나 갈팡질팡하고 있기 때문이다. 2년 전 회사를 그만두고 당장 다음달 월세 걱정을 해야 할 때조차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는 것은 선택지에서 가장 먼저 제외했을 만큼 부산에서 나고 자랐으면서도 서울이 아닌 지역에는 삶다운 삶이 없는 것처럼 여긴 때도 있었다. 실제 세상도 영화처럼 주인공과 주인공이 아닌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면 당연히 서울은 전자, 나머지 지역은 후자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땐뽀걸즈>는 서울이 아닌 거제, 인문계가 아닌 상업고등학교, 취직이나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과정이 아니라 댄스스포츠 동아리 속 여자아이들을 담는다. 미디어에서 한번도 주인공으로 다뤄지지 않았으며 늘 간편하게, 또 납작하게 분류되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이다. 아이들이 사는 거제에는 조선업의 쇠락으로 구조조정 바람이 불어닥친다. 부모들은 새로운 밥벌이를 찾아나서야 할 상황에 놓이고, 아이들 역시 각자 취업을 준비하거나 지금 당장 손에 돈을 쥘 방법을 고민한다. 쇠락해가는 거제 경제는 당연히 큰일이고 그런 변화는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끼치지만, <땐뽀걸즈>가 비추는 것은 바깥의 비극에 압도당하지 않고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고 버텨내려는 개개인의 삶이다.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공부 잘하는 10대 청소년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다고 해서 미성숙하거나 미완성의 존재가 아니라 이미 각자 다른 무게의 삶을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 다큐멘터리를 보며 새삼 깨달았다. 그 와중에도 이규호 선생님과 아이들은 댄스스포츠, 즉 ‘땐뽀’를 포기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왜 그런 걸 진지하게 하느냐’고 말할지 모르는 ‘땐뽀’야말로 이 영화 속 모두를 살아가게 만든다. 사실 나는 마음 따뜻해지는 이야기나 사람들의 선한 이야기에 선뜻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그런 것에 감동하는 자신의 모습이 어쩐지 멋쩍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땐뽀걸즈>만큼은 도저히 무덤덤하게 볼 수가 없었다. 이 영화가 말하는 ‘착한 이야기’라거나,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완전무결하게 선하다는 뜻은 아니다(그런 게 있을 리가!).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매번 맛있는 것을 사주고 차비를 쥐여주는 마음, ‘땐뽀’만큼은 잘해내고 싶은 아이들의 마음, 그런 부분들을 조심스럽게 채집해 세상에 내놓고 싶은 마음 같은 것들에 대해 냉소적으로 굴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는 얘기다. 나쁜 게 너무 많은 세상이지만, 거기서도 잘 살아가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니까. 스포트라이트가 비추지 않는 곳이라고 해서 인생이 없는 것은 아니니까.

● 황효진 칼럼니스트. 전 <ize> 기자로 <아무튼, 잡지>를 썼다. 밀레니얼 여성을 위한 커뮤니티 서비스 ‘빌라선샤인’의 콘텐츠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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