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요시다 다이하치 / 출연 간노 미호, 에구치 요스케, 이케와키 지즈루 / 제작연도 2010년

나오코는 남편과 이혼한 후 어린 딸을 데리고 어머니 노바라가 운영하는 작은 미용실로 돌아온다. 염소 똥처럼 동글동글 탱탱한 펌(perm)이 특기인 ‘퍼머넌트 노바라’는 어머니가 평생 운영 중인 작은 미용실이자 동네 모든 여인들이 모여드는 안식처다. 어린이집에 가는 딸의 머리를 묶어주고, 엄마의 일을 돕고, 집 나간 의붓아버지를 종종 찾아가 돌아오라고 설득하는 나오코는 자신의 첫사랑이자 고교 시절 은사인 카지마와 둘만의 비밀 연애를 시작한다. 어느 날 카지마와 함께 온천여행을 떠났던 그녀는 행복한 시간을 보낸 뒤, 아무 말 없이 떠난 카지마를 기다리다 혼자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그에게 전화를 건다. “난 왜 이렇게 외로운거야. 왜 외롭고 외로워서 견딜 수가 없는 거야. 왜?”

<퍼머넌트 노바라>를 처음 볼 당시 이 공중전화 부스 장면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나오코를 연기한 배우 간노 미호의 일그러진 얼굴, 검게 일렁이는 잔잔한 바닷가의 풍경, 이 모든 것을 꿈결같이 낭만적으로 감싸안는 아이러니한 배경음악까지…. 모든 요소가 완벽하게 어우러져 내 가슴을 쿵쾅거리게 만들었다.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지만 다시 꺼내 볼 용기는 나지 않는다. “나는 왜 이렇게 늘 외로울까”라는 나오코의 물음은 분명 괜찮았고, 여전히 괜찮지만, 사실은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는 것을 어느 순간 자각하게 될 때의 당혹감, 그리고 사무치게 밀려오는 외로움의 실체를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잘 살고 있지만 가끔씩 ‘아무 의미 없다’고 느껴질 때, 지금 사라져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질 때가 있다. 이유 없이 외로운 순간들이 불쑥불쑥 찾아든다. 그것은 그 사람이 실제 외톨이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질과도 같은 것이라고 영화는 이야기한다.

2010년, 잠시 기자 생활을 하던 중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만난 <퍼머넌트 노바라>는 당시 내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대학 졸업 후 스스로 흥미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갈지 아무런 확신이 없던 시절, 1년 가까이 어느 매체에서 그저 버텨냈던 시간들은 단 한순간도 스스로 가치 있다고 여긴 적이 없었다. 오랜 기간 만난 연인과의 관계도 사실상 끝이라는 걸 자각하면서도 겨우 붙들고 있던 시기였다. 이제 막 취업한 자랑스러운 딸,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는 내 모습을 지켜내고 싶다는 욕심으로 스스로를 가장 힘들고 외롭게 했고, 어찌할 바를 몰랐던 때였다. 바로 그때 만난 이 작품을 통해 나를 스스로 더이상 외롭고 쓸쓸하게 만들지 말자라는 결심과 함께 비로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 선택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지금의 내 모습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전히 나는 때때로, 아니 자주 세상에 나 혼자인 것 같은 외로움을 느낀다. 그리고 앞으로도 평생 반복될 것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 나는 이 외로움을 껴안고 그것을 채워가며 더 나은 삶을 살아갈 것이며, 세상 모든 이들 역시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갈 것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게도 외로운 삶을 버텨내는 데 가장 큰 위로가 된다.

● 김은주 영화홍보사 홀리가든 대표. <하나레이 베이> <철벽선생> <은혼2: 규칙은 깨라고 있는 것>, 애니메이션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 등의 영화홍보를 맡았다.